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무던 Jul 27. 2023

너를 만나려고 이토록 오래

11월과 12월 사이, 하나.


유독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모르겠는 연애를 시작했다는 소식. 광안리 여행을 갔을 때, 연애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었고 매우 짧은 시간에 비교적 많은 사람을 만났다. 잠시나마 연인이었던 사람도 있었고 친구이지도 않은 채 스쳐 지나간 사람도 있었다.


연애를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리스크가 매우 큰 쪽이었는데 덤덤하게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덤덤하지 못했던 건지 지쳐가고 있을 때, 마지막이라고 여기며 만났던 이 사람. 그가 아직 내 옆에 있다. 얼마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서 최대한 오랜 기간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몽글몽글한 그 마음이 가만히 있지를 못해서 여기에라도 속닥속닥 오랜만인 그 마음을 적어가고 싶어졌다.









1. 처음


연희교차로에서 너는…

7612 버스에서 내리는 그를 보며 한 손을 번쩍 들었다. 안녀엉-! 평소답지 않은 높은 목소리를 냈다. 꽤나 반가웠나, 그 반가움이 여전히 가시지 않은 채로 오늘도 그를 기다리고 있지만 어쨌거나 그때의 그는 생각보다 훨씬 반가웠다. 신기하게도 너무 추운 날들의 연속 중 잊을 수 없도록 춥지 않은 날이었다. 실제로 최고 온도가 22도였으니 그는 가볍게 가죽 재킷에 헐렁한 슬랙스를 입고 연두색 버스에서 내렸는데 그 모습이 괜히 반갑고 예뻤다.


그저 반가울 만큼 평탄한 하루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는 약속시간에 15분을 늦었고 그 연락을 늦게 받은 나는 이미 택시를 타고 일찍 도착해 버렸고 그 택시 안에서 맥북이 굴러 떨어졌고 설상가상으로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해야 했지만 이 모든 걸 감하더라도.


나의 맥북을 받아 들고 재킷 안으로 숨겨주는 자상함이 그랬을까, 비가 온다는 걸 온 세상에서 본인만 모른다는 듯이 우산도 없이 내려버린 무심함이 좋았을까, 그런 무심한 사람이 인사 다음으로 뱉은 말이 ‘노트북 줘.’여서였을까.


여전히 명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카페에 도착해서 봤던 빗물이 줄줄 흘러내렸던 왼쪽 어깨가 지독하게도 좋았던 걸까.




선뜻 메모지 그득과 연필을  손에 쥐는 너를… 

연희동, 프로토콜에 가자고 했다. "혹시 여기 가까워?" 정확히는 그렇게 물었다.


한참 전 블로그에도 남겨놨던 그곳이었다. 연희동에서 어떤 카페가 제일 좋아?라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할 프로토콜을 일면식도 없는 그는 어떠냐고 물었다. 반길 수밖에 없잖아. 원래부터 마음에 들어와 있는 공간을 넌지시 같이 가자고 청하면 설렐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도 기꺼이 심장이 뛸 수밖에는 없는 일이었다. "같이 갈래?" 그런 청유조차 보이지도 않는 솜털처럼 마음을 간지럽혀서 당연히 같이 가자고. 응 같이 가아. 여기 라테 맛있어. 둘 다 아닌 척 그런 척은 못하는 사람인지 정말 스몰라테 두 잔을 주문하고 카드를 내밀었다.


기필코 내 카드를 내밀어야지 다짐했었는데 사실은 그것보단 그에게 맛있는 라테 한 잔을 줄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다. 그 정도로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었지만, 아마도 아니겠지만(...) 만나기 전에 아주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 저녁에 하루를 당겨 만나는 건 어떠냐는 메시지. 거절을 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 복직을 한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때라 몸도 마음도 정상 범주는 아니었던 그때.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물론 평소처럼 무감하고 사무적인 말투는 아니었다. 이상하게 익숙할 리가 없는 상냥함이 발동되었던 그때. 거절도 너무 귀엽게 하는 거 아니야라고 하던 그때의 그이기에 맛있음 말고는 생각할 수 없는 프로토콜의 스몰라테를 꼭 사주고 싶었어. 정말로. 그리고 여전히 감사해.



웨이팅까지는 하지 않아도 됐었지만 샷을 내리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바 자리에 어정쩡하게 앉아있으면서 꽤 여러 질문을 받았다. 남자친구 왜 없어? 신기하네, 귀걸이도 목걸이도 반지도 하나도 안 했네. 뭐 이런 질문들. 그러게 남자친구는 왜 없을까? 뻔뻔하게 받아쳤고 귀걸이나 목걸이, 반지는 잘 챙겨서 할 수 있는 성격이 못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해 볼 건 다 해봤어. 피어싱 한참 많이 했을 땐 귀에 구멍이 열한 개나 있었는데?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 넓은 테이블에 자리가 생겨 옮겨 앉았다. 공간이 조금 넓어지고 눈앞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줄었을 뿐인데 마음에도 공간감이라는 것이 생긴 건지 눈앞의 그에게 경계가 사라져 갈 때쯤 한창 귓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받았던 질문을 '드디어' 들었다.



이상형이 어떻게 돼?


별로 보여주고 싶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풉 하고 올라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 얼굴로 뻔하디 뻔한 질문을 한다는 사실이 웃음이 났다. 어쩌면 그때 나는 그도 평범한 사람임을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그와 눈을 맞추고 있으면 전혀 냉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데 첫날엔 유독 냉소적인 분위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태껏 내가 만나온 사람들과는 결이 다르구나라고 여겼던 순간에 조금씩 금이 가던 때의 시작.


이상형, 나 몇 가지 정해놓은 기준이 있어.라는 말을 했을 때 나를 바라보던 눈동자가 조금 더 멀리의 무언가를 향해 고정되더니 아- 재밌겠다. 하고는 기다란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워 나를 지나쳐 어딘가로 향했다. 무엇 때문일까, 아주 찰나에도 그의 움직임이 궁금해서 눈을 뗄 수 없었는데 이후에 하는 행동들 때문에 나는 정말로 그에게서 호감의 무언가를 거두어낼 수 없었다.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프로토콜은 커피가 매우 훌륭한 곳이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작업을 위한 공간이 아주 적합하게 마련되어 있는 카페다. 해서, 테이블 드문드문 메모지와 몇 자루의 연필들이 놓여 있다. 여전히 사각사각 필담을 좋아하는 내게 그가 그것들에게 기꺼이 다가가 꽤 두꺼울 만큼의 메모지와 연필 한 자루를 쥐고 다시 내 앞으로 돌아온 건 절대 반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아직도 사이드 테이블 앞에 서 있던 그의 옆태가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걸 보면 순간은 그때였다. '반함'이라는 것이 나와 그 사이에 일어났다면, 그때가 분명 비읍의 첫 시작점이었다.


그는 내 입에서 방사적으로 쏟아지는 단어들을 백색 메모지에 차곡차곡 써 내렸다. 의외로 글씨가 예쁘네, 생각했고 왜 나만 이상형을 줄줄 읊고 있나 싶어 뻔하디 뻔한 그 질문을 나도 내뱉었다. 그래, 이게 공정 거래지.


결국엔 서로의 이상형이 서로와는 조금씩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한 편으로는 어쩌면 그는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유사한 결의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설레발에 가까운 직감을 맞이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우리,

비행기와 숙소만 예약하면 여행 준비가 다 됐다고 여기는 우리,

연애가 하고 싶은 우리.

연애가 하고 싶었나, 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