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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던 Jan 31. 2021

03. 잘츠부르크로부터

그곳의 다정에 눈물이 겹다.


 


 인기 있는 여행지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공항으로 떠나기 전 꾸준히 들었던 말이 '오스트리아는 좀 심심하다던데.', '프라하가 제일 좋을 거야.'이었다. 감상은 개인 취향에 온전히 기대어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저런 말을 끊임없이 쏟아냈다. 속으로 생각했지, 나는 아닐 것 같은데. 몇 번은 입으로도 뱉어냈던 것 같다. 어! 그래? 나는 오스트리아가 제일 기대되는데.


 잘츠부르크 숙소 앞에 발을 내디뎠을 때 막연히 한국에서부터 간직해왔던 예감이 정확히 맞아 들어갔다는 걸 온몸으로 알았다. 그래서 나는 이제 잘츠부르크를 정말이지 너무너무너무 좋아해.


목적지 없이 걷다가 만난 잘츠부르크의 거리


 

 작은 호텔이었다. 조용한 동네에 있던 적당히 깔끔한 곳. 로비는 반층 지하였는데 연두색으로 칠해진 벽이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오스트리아 답다. 방에 캐리어를 풀고 무작정 숙소 뒷 편의 동네 마트를 찾았다. 이상한 버릇 중 하나인데 새로운 곳에 도착하면 꼭 마트를 찾아 요거트랑 군것질 거리를 사모은다. 분명 다 먹지도 못할 텐데.


 그렇지만 잘츠부르크에서는 유독 의미가 있었다.

낯선 곳, 낯선 이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첫 번째 다정에 눈물겨웠던 찰나는 마트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일어났으니까.


숙소 뒷 편의 깔끔한 거리

 

 과자나 빵류에 섞여 가공된 레몬 맛을 좋아한다. 마트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손에 넣었던 건 마너 레몬맛. 어여쁜 분홍색 포장지에 레몬이 그려져 있었는데 정말 그 날의 모든 기쁨이라도 해도 될 만큼 반가웠다.(물론, 과장이다.) 그리고 또 뭘 샀더라, 적당한 요거트에 평범한 맛의 마너 하나를 더 품에 안고 마트를 나왔다.


 아, 생각해보니 잘츠부르크에서도 나는 길을 잃었다. - 02. 프라하로부터( https://brunch.co.kr/@edamdame/2)참조 - 이 글을 쓰기 전부터 잘츠부르크의 다정에만 집중해 있어서인지 지금에서야 알아차렸다는 것에 웃음이 난다. 어쨌든 그래서 다정을 알았지. 언제나 시련이 있어야 기쁨이 있는 건 역시 불변의 진리다.


 프라하에서는 여전히 볼 줄 몰랐던 구글 맵을 잘츠부르크에 와서는 어쩐지 단숨에 깨닫게 되었는데 생각지 못한 난관은 불신이었다. 군것질 꾸러미에 구글 맵까지 끌어안고 지도에 표기된 대로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봉착한 수상해 보이는 작은 길. ' 여기로 가라고? 저 골목 앞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면서부터는 더욱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서 인지 잔뜩 경계심이 올라와 있을 때 꽤 가까이에서 낯선 목소리, 낯선 언어가 들렸다.


 돌아본 곳에는 수상해 보이는 작은 길 앞에 모여있는 사람들과 별 다르지 않은 사람이 삐죽 서 있었다. 독일어였나, 영어였나. 첫마디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아마 어디를 찾냐고 했던 것 같다. 지도를 보여주면 데려다주겠다고. 이때까지만 해도 경계심이 사그라들지 않아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주고 나보다 삐죽한 낯선 이에게 조심스레 구글 맵을 보여줬다. 그는 자신이 아는 곳이라며 팔로우 미를 외쳤고 결국 수상해 보이던 작은 길을 겁에 질려지나고 나서야 숙소에 다시 도착했다.


 나는 그에게 짧은 시간, 꽤 많은 질문을 받았다. 어디에서 왔는지, 어느 도시를 여행했는지, 빈에는 갈 건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빠질 수 없는 BTS이야기가 나왔고 유럽은 처음인데 프라하를 들렀다 왔고 며칠 후에 빈에 갈 거라고 했더니 빈은 정말 즐거울 거라고.


 잘츠부르크에서는 내일 떠날 거라는 말에 나보다 더 아쉬워했던 낯선 이.


 아직도 그 얼굴이 또렷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온몸과 마음에 빗장을 걸어두고 있던 내게 걱정 말라, 진심으로 친절을 베풀어 준 다정이 무척이나 고마웠는데 낯선 언어로 그 고마움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헤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 거 없는 잘츠부르크가 너무도 특별한 잘츠부르크가 되어버린 것 까지 충분히 고마워하지 못했다.


 절대 닿을 리 없겠지만, 주황색 머리에 주황색 턱수염, 거기에 초록빛 눈이 낯설었던 당신이 흔쾌히 나의 두려움을 내쫓아주어서 우리의 마지막 인사처럼 진심을 다해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고마웠어, 당근이 생각났던 당신.




 두 번째 다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오스트리아에 왔으니 슈니첼을 먹어야지 하면서 인스타그램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멀지 않은 곳에 적당한 식당이 있는 걸 발견했고 주섬주섬 일어나 느슨한 일행과 함께 식당을 향했다. 중년 남성 두 분이 운영하시는 곳이었는데 주인 분의 '마담~' 한 마디에 나는 싱긋 웃어버렸다. 보통은 알지 않나, 나를 향하는 소리에 호의가 담겨 있는지 아닌지. 낯선 이를 안정시켜주는 낯선 이의 온기였다. 적절히 존중하지만 마치 소중한 사람인 듯 충분히 바라봐주고 기다려주는 마음.


정말로 Danke Schon!

 

 덕분에 그 날 나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감바스를 먹었고 조용하지만 따뜻한 환대에 이 여행에서 처음으로 두둑한 팁을 올려두고 식당을 나왔다. 감사를 표현할 다른 길이 있었다면 기꺼이 그 무엇이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하나 익숙하지 않은 여행객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Danke Schon! 그리고 팁 정도가 아닌가.


슈니첼도 있었지만 이 중의 최고는 감바스


 연이은 다정과 맛있는 음식 그리고 맥주 2잔에 노곤노곤 긴장이 풀린 채로 잘츠부르크 여행을 이어갔다. 하루라곤 하지만 여행할 시간은 반나절 정도뿐이라 아쉽고도 빠듯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는데 막상 걷기 시작하니 그 어떤 조급함도 통하지 않았다. 도시가 흘러가는 속도가 그러했고 적당히 허전한 길목들이 서두를 것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했다. 거추장스러운 것 하나 없이 심플하게 정리된 길목이 꽤나 취향이어서 이리저리 눈을 돌리다 늦어진 걸음으로 도착한 곳은 딱히 염두에 두지 않았던 미라벨 정원이었다. 여행에서 계획은 딱히 필요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달은 순간.


소담한 즐거움이 있었던 곳

 

 미라벨 정원에서도 소박하게 즐거운 일들이 있었는데 한국인을 만나서 사진을 찍어줬던 것, 그리고 이때부터는 혼자 여행을 했기 때문에 삼각대를 세워놓고 열심히 사진을 찍던 와중에 앵글 속에 들어와 브이를 하고 지나간 잘츠부르크 커플. 유독 미라벨 정원에서 이런 경우가 많아서 인지 한눈에 둘러볼 만한 규모의 공간임에도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이 남아있는 곳 중에 하나.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마카르트 다리. 미라벨 정원에서 나와 마카르트 다리를 찾아갈 때쯤 노을이 지고 있었는데 마카르트 다리에 도착하니 더욱 선명해진 노을이 도시를 뒤 덮고 있었다. - 사실 나는 동물을 무서워하는데 다리 위를 산책하고 있던 대형견들이 너무 많아서 10분 정도 다리 옆에 서서 멍하니 노을만 보고 있었다. - 크지도 않은 다리 위를 건넌다고 뭐가 달라 보일까 했는데 다리 위에 서서 연신 사진을 찍은 걸 보면 영락없이 사소한 것에도 특별함을 느끼는 여행객이었다.


당시 이 곳을 걸을 땐 이름이 있는 길인 줄도 몰랐던 게트라이데 거리

 

 노을의 유혹과 대형견의 두려움을 해치고 다리를 건너 들어온 골목은 게트라이데 거리었다. 혹시 눈치를 채셨을까 모르겠지만 계획이 하나도 없이 시작한 여행이라 당일에 가야 할 곳을 하나씩만 정했었는데 잘츠부르크에서는 정한 곳이 마카르트 다리였다. 그곳을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곳들이 나름 유명한 여행지라 잘츠부르크에 있는 내내 행운이 얻어걸리는 느낌이었고 게트라이데 거리는 그중에 최고의 행운이었다. 좁디좁은 골목이었는데 차원이 다른 세상에 풍덩 빠져든 느낌, 아 내가 정말 저 멀리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있구나. 정말 정말 행복해.


어쩐지 멋쟁이 할아버지가 주인공인 듯 한 사진
바삐 트램을 타던 사람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순간

 

 어두워진 거리를 빠져나와 마카르트 다리 앞에 주저앉아 짧았던 잘츠부르크에서의 하루를 정리했다. 정확하지 않은 타인의 말들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친절이었는데 도착하자마자 행운처럼 들이닥쳤던 소박하지만 큰 다정이 나를 얼마나 웃게 했는지 그때에도 고마웠고 아직까지 감사한 그 다정에 1년 반 전의 기억을 더듬는 내내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괜한 소리에 잔뜩 겁을 먹고 가시를 세우고 있던 나에게 거침없이 다가와 도움을 베풀었던 그, 그리고 피곤을 뭉게뭉게 달고 식당으로 들어섰을 나에게 따뜻함을 건네주었던 그들에게, 모든 것이 덕분이었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다.


잘츠부르크로부터


고요히 해가 넘어가던 하늘도 붉음이 차올랐던 노을도 어둡지만 선명한 푸른빛의 밤하늘까지.

모두 덕분이었습니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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