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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던 Feb 10. 2021

04. 부다페스트로부터

밤, 밤, 밤.


 부다페스트는 밤이라고 했다. 그곳과 관련된 드라마도, 영화도 있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프라하에 관심이 있고 빈에 가고 싶으니까 중간에 들렸다가 가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을 뿐. 그러나 역시 여행은 감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부다페스트의 찬란한 밤이, 눈이 멀게 환하고 선명했던 낮이 여전히 심장에서 울컥울컥 존재감을 내비치는 걸 보면 여행은 애초 종잡을 수 없는 것이고 그중 부다페스트 여행은 예고 없는 돌풍과도 같았다.


 숙소 앞에 캐리어를 내렸을 땐 적당히 늦은 오후였다. 부다페스트에 들어서면서 확연하게 달라지는 분위기에 이미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프라하처럼 아기자기 하지도, 상상하는 빈처럼 깔끔하지만 따뜻한 느낌도 아니었다. 되레 생각도 하지 못한 훅훅 더운 열기가 올라오는 회색빛 도시였다.


 밤이 되면 꽁꽁 감춰왔던 섬광을 얼마나 대단히 내비칠 것인지는 예측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기이한 모습이었다.


 이 날도 숙소 근처 마트를 찾아 길을 나섰다. 가까이에 베이커리를 갖춘 마트가 있었지만 한국 대형마트의 빵들에 비하면 입에 가져다 대는 것이 내 몸에 미안할 정도여서 적당한 음료와 사탕 몇 가지를 계산하고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드러누웠다.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처음으로 1개의 침대만 갖춘 방에 배정받았는데, 만난 지 며칠 안 된 룸메이트와 한 침대에 누워있다는 어색함보다는 부다페스트의 뜨거운 열기에 지쳐버린 몸을 얼른 식히고 싶었다. 미약한 도수가 있는 음료를 마시고 한 숨 잤을까, 야경투어를 위해 몸을 일으켰다.


 투어의 목적지는 부다페스트 하면 자동으로 톡! 하고 떠오르는 그곳들이었다. 다뉴브 강, 세체니 다리, 국회의사당, 몇 번 트램 정거장 앞.


 

 당시, 다뉴브 강에서 유람선 침몰 사고가 있었다. 내가 동유럽에 있었을 땐, 늦여름과 초 가을 사이었고 그 사고는 한창의 여름 때였다. 그러니 나는 다뉴브 강에서 유람선을 탈 순 없었다. 단순한 두려움은 아니었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 보다는 이타적인 마음이었다. 해서, 세체니 다리를 열심히 건너다 멈춰 섰다. 안녕, 잘 가요. 형식적인 인사로 보이겠지만 어쨌든 나는 불특정 다수에게 인사를 남겼다.


 

 국회의사당을 마주하고 있는 트램 정류장에 와서야 꽤 많은 거리를 걸어왔던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털썩 벤치에 앉아 수 없이 반짝이는 불빛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진짜 말도 안 되는 곳에 와 있구나 싶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지, 새삼스러운 기분에 다들 사진을 찍으러 국회의사당 앞에 서는데도 움직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드디어, 내가 여기에 왔구나! 지긋지긋한 일상을 떨쳐내고 내가 여기에 있어!

 

 세체니 다리를 건너오던 중 나에게 사진을 부탁하던 유럽 여성들이 있었다. 사진을 부탁하는 억양도 태도도 잔뜩 신이 나 있었는데 휴대폰 액정으로 그들을 보니 알 수 없는 자유분방함이 그득하게 차 있었다. 사진을 찍어주며 쉽게 닮을 수 없는 자유분방함이라는 생각에 무척 부러웠는데 세체니 다리를 지나 국회의사당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가 그들보다 자유분방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저 멀리! 대한민국에서! 여기까지 온 사람인데! 이제와 보면 정말 이상한 각성이었는데 덕분에 기대 한 점 없던 부다페스트에서 정말 부다페스트다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19번 트램, 부다페스트에서 꼭 타야 할 트램 중 하나였다. 19번과 2번 트램이면 단숨에 모든 걸 돌아볼 수 있다고 한 기억을 끄집어내 19번 트램에 올라탔다. 처음엔 반대 방향의 트램을 타서 다시 걸어와야 했지만 트램을 타고 있는 동안 소위 ‘감성’이라는 것을 충전하고 환승을 하기 위해 적당한 곳에 하차를 했다.


 계획대로라면 다른 버스나 트램을 타고 숙소로 돌아가야 했지만 미친 듯이 걸었던 터라 일행들 모두 허기가 져 있어 갈 만한 식당을 찾아갔다. 밤 열 시가 훌쩍 넘었던 때 여서 영업시간이 많이 남은 곳을 집중적으로 찾았는데 가까이에 24시간 영업을 하는 펍이 있었다. 정말 정말 정말 운이 좋았다.


사방이 종이로 뒤덮혀 있었던 곳

 

 동유럽에서 짤막하게 썼던 일기장에 남아있는 그 펍의 이름은 ‘For sale Pub’. - 이 글을 쓰면서 다시 그곳이 말할 수 없게 그리워졌으므로 인스타그램으로 그 펍의 지금을 찾아보고 와야겠다. -


 고기 섭취를 위해 스테이크를 주문하려고 했지만 조리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서버에게 거절을 당했다. 오로지 고기를 먹겠다는 일념 하나로 식당에 들어온 나와 일행은 당황한 마음을 넣어두고 서버에게 음식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서버는 주로 조리 시간이 빠른 메뉴를 추천해줬다. 뭐, 그때도 했던 생각이긴 하지만 스테이크는 정말 단순 조리하기 귀찮아서 주문 안 받았던 거 아닌지. 난 정말 이런 유럽인들의 게으름이 무방비한 웃음이 나올 정도로 귀엽고 웃기다. 선택적 성실함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같이 느껴진달까.


진짜 많았던 땅콩, 엄청 많았던 굴라쉬


 결국 그 서버의 추천으로 굴라쉬와 감자튀김 그리고 소프로니 생맥주를 시켰다. 굴라쉬는 프라하에서 먹었기 때문에 피하려고 했었는데 피하지 않았던 것이 행운이었고 소프로니 맥주를 시킨 것은 천운이었다. 부다페스트를 벗어나 오스트리아에서도 몇 번 소프로니 생맥주를 먹었지만 부다페스트에서의 그것과 견줄만한 맛을 두 번은 느끼지 못했다.


 기쁨의 맥주를 서너 모금 넘기고서야 내가 낯선 이들과 자기소개도 없이 그저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행은 많이 다녀봤는지, 여행은 왜 왔는지, 프라하나 잘츠부르크는 어땠는지.  


보통 나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과 밀도 있는 관계를 선호한다.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훨씬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다페스트의 새벽은 나답지 않다고 느끼고 있음에도 그 생경함이 설레고 즐거웠다. 물론, 직장을 묻고 나이를 묻고 하는 행위들은 불쾌했지만 어느 상황이나 장단점은 있으니 그 새벽은 좋은 추억으로 마음 한편에 묶어두었다.   


 아무리 여행이라 할지라도 부다페스트가 아니라면 새벽 1시에 모르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각자가 느낀 설렘과 신남을 공유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새벽 두시, 우리만 있는 것 같던 부다페스트의 어딘가


 심지어, ‘우리’는 그 날 새벽 2시쯤 펍을 벗어나 숙소까지 한 없이 걸었다. 이 또한 나 혼자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다. 걷는 것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동양인 여성 혼자 새벽에 걷는다는 건, 명백히 안전한 행위는 아니었으니까. 서늘한 여름의 새벽, 익숙하지 않은 대여섯 명이 무리를 지어 아무도 없는 부다페스트의 거리를 열심히 걸으며 나누는 하염없는 이야기. 와글와글하면서도 소곤소곤한 새벽의 소란이, 멋지지 않은 거리였음에도 특별하지 않은 관계였음에도 기억할만한 순간을 만들어냈고 결국 부다페스트의 밤을 잊지 못하는 나는 그들도 잊지 못한다.



잘 지내고 있나요?

다들 건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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