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전세 구하기
본인은 작년 언젠가, 세입자가 될 바엔 집주인이 되겠다고 선포했다. 그러나 집주인이 되는 건 돈보다는 용기의 문제라는 걸 깨닫고 지진부진하게 살고 있었다. 왜냐면 나는 쫄보 중의 왕 쫄보니까.
안락한 삶을 추구하며 잔잔히 살아오던 중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불현듯 자괴감에 빠졌다. 꽤 독립적인 성격에 혼자 하는 걸 즐기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아직 독립하지 않았고 운전을 하지도 못한다. 이제껏 계속 그렇게 살아놓고 벼락을 맞은 것도 아닌데 자괴감에 빠지다니. 이건 정말 인생사고였다.
계속 그려오던 나의 인생은 차분히 어느 정도 돈을 모으면 그걸 가지고 자가를 마련하고 그렇게 진정한 독립의 수순을 밟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돌발사고'로 인해 몇 년간 그려오던 삶의 그림을 다 뒤엎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조금 더 버틸 것인가, 아니면 당장의 괴로움을 지우지 못하고 벗어날 것인가.
둘 다 틀렸다.
온전히 혼자가 되어 세상과 지금 당장 맞설 준비가 되었는가, 아니면 그 시점을 다시 또 미뤄둘 것인가.
이게 맞다.
문제를 인지했으니 자가점검에 들어갔다.
때가 되면 해왔던 것 처럼 혼자 살 수 있는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예쁜 집 혹은 낡은 집의 문제가 아니었다. 얼마나 살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 기간 동안 불행하지 않을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물론 없었고, 없었고, 없었다.
그러던 중 보증금 7000만원 / 월세 30만원이라는 아주 합리적인 가격의 매물을 발견했다. 번화하지도 않고 음습하지도 않은 편안한 주택가에 인프라가 있긴한가 싶을 정도로 조용한 동네였다. 본가가 너무 번화한 곳에 위치해 있었고 눈만 돌리면 인프라 천지여서 차라리 반가웠다. 그러나 섣부른 계약은 언제가 위험이 도사리는 법이니 잠정 보류를 하고 일부러 다른 지역의 집을 보러 다녔다.
그러던 중 부동산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월세를 내려주겠다는 소식이었다. 이 때 부터 뭔가 이상한데? 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시세에 비하면 이미 저렴한 비용인데 왜 월세를 할인해주겠다고 하는거지? 그러면서도 등기부등본이 깔끔하고 은행에서도 문제 없다고 했으니 며칠 후에 저녁에 집을 한 번 더 보고 가계약을 하고 와야겠다고 결심했다.
다음 날 부동산에 전화를 해서 오늘 저녁에 집을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중개업자의 목소리가 뭔가 개운하질 않았고 전화를 끊고 몇 분 후 다시 전화가 와서 현 세입자와 집주인이 보증금 문제로 분쟁이 있어서 지금은 중개를 할 수 없고 추후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전했다.
젠장,
그 때 부터 나의 집착이 시작됐다.
등기부등본은 처음부터 깨끗했다. 은행에서도 나의 의견에 동의했고 대출이 시행되는데 문제도 없었다. 그러니 이제는 시세를 추적해봐야 했다. 집주인이 이 집을 얼마에 주고 샀을지, 첫 전세를 얼마에 내놨을지, 바로 전 세입자가 얼마에 들어왔을지를 알아보고 나니 뻔한 결론이었다.
돈은 순환의 가치이다. 정말 현금을 가지고 있느냐 보다는 유동성을 얼마나 가지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때문에 내 돈이 날아갈 수 있다면 다른 이야기다. 사람이란 간사한 존재가 아니던가.
결국 가계약 직전, 나의 독립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렇게 따지고 들면 영영 독립하지 못하는게 아닐까 싶은데 그렇다고 설렁설렁 아무곳에나 입주할 순 없는 일이었다. 주거안정은 리스크가 큰 곳에 내 돈을 묻으라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실패의 연속이지만, 수많은 깡통전세 속에서 꼭 살아남으리!
매 순간 그런 다짐을 하면서 토끼 눈이 될 때 까지 집을 알아봐야지.
진짜 힘내라, 내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