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남편을 보다가
내가 선택한 25살에 결혼. 남편은 나보다 8살이 많다. 잠시지만 같이 20대, 30대를 보내고, 이제 40대를 보낸다. 같은 만화영화를 봤고 같은 tv 프로그램을 봤다. 우리는 동시대를 살았다. 친구같이 지내지만 세대차이를 느낀다.
나이차가 느껴질수록 충돌은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게 내 생각이 확고해지나 보다. 그래서 꼰대라는 말도 듣게 되겠지. 남편의 자는 모습을 보는데 조금 짠하다. 혼자서 우리를 위해 애씀이 보인다. 적지 않은 시간 함께 헸는데 새롭다. 그 감정이 초창기 연애랑은 다르다. 이렇게 부부가 되고 가족이 되는 것 같다. 이런 게 의리일까?
내가 가끔 엄마에게 아빠의 불만을 털어놓으면 맞장구를 치다가도 한마디 하시던 엄마의 말이 생각난다.
“아빠 짠하고 불쌍하지 않아?”
“아빠가 뭘?” 하고 되받아치던 나도 이제 그 말의 뜻을 알았다. 어른들이 ‘남자들도 불쌍해!’ 하던 그 의미를 어렴풋이 안다. 남편이 고생해서 우리를 먹이고 입힌다. 예전의 늠름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작아진 남자가 옆에 있다. 키는 처음부터 작았다. 내가 작으니 별로 상관은 없다. 남편은 또래보다 동안이다. 하지만 뱃살이 많다. 본인은 몇 년 전 약물 부작용이라고 말한다. 직업의 특성상 활동량이 적고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지 못한다. 저렇게 불러 있던 배가 어느 순간 빠지겠지.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면..
그 모습에 오히려 가슴이 아릴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건들면 터질 듯 봉곳한 풍선 같다.
결혼 15년 연애하듯이 산다지만 우리에게도 변화는 있다. 단순한 예로 뽀뽀가 많이 줄었다. 시간을 무시할 수 없다. 사랑이라는 두 글자로 만나서 긴 시간 변화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그 형태가 어떻게 변했든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기를 바란다. 지금은 손을 잡지 않고 걷기도 하고 차문을 열어주는 것도 줄었다. 그래도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고 믿는다. 믿음으로 함께 한 시간만큼 앞으로도 더 오랜 시간 함께 할 테니까.
잠자는 남편을 보면 어떤 날은 너무 잘 생겼고 또 다른 날은 두꺼비를 닮았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어제 처음 쓸 때는 잘 생겼더니 지금 돌아보니 덩치 큰 두꺼비 한 마리가 숨을 헐떡이는 것 같다. 베개를 꼭 끌어안고 잔다.
*사진은 핀터레스트에서 가져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