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휴 이후 남편이 10일 정도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하루하루 버는 자영업이라 큰 공백인데 그동안 주말도 없이 일한 남편이라 본인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바쁠 때는 한 달 31일간 창원 왕복을 37회 다녀오기도 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고도 집에만 있던 아이들이 마음에 쓰였는지 남편은 “강원도 갈까?” 나에게 물었다. 아이들에게 대게를 먹이고 싶다는 말도 보탠다.
설 연휴가 시작되고 나는 언제 가나 계속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시간만 계속 지나간다. 날씨를 보니 비와 눈이 이어진다는 예보가 있어서 이번에는 못 가나 보다 하면서 살짝 포기했다. 아이들 겨울 방학이 끝나기 전에 남편의 긴 휴가가 끝나기 전에 다녀와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우리 구룡포 갈까? 홍게도 먹고.” 어디든 가서 바람을 쐬고 싶던 나는 오케이 했다. 19일 월요일, 비가 시작하는 날이다. “그냥 가자” 내 한마디에 우리는 작은 캐리어 하나만 챙겨서 출발했다. 감기 기운이 살짝 있었지만 괜찮았다.
월요일이고 날씨도 좋지 않아서 당연히 원하는 방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과 차를 타고 출발했다. 첫 번째 휴게소에서 생각한 숙소로 전화를 걸었더니 내가 찜한 방은 예약이 되었고 그 보다 윗단계 방이 있었다. 잠시 고민하다 전화를 끊고 현장에 가서 결정하기로 했다.
구룡포에 도착하니 날이 너무 좋았다.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해가 쨍쨍했다. 가까운 곳에 보이는 숙소를 보는데 신통치 않았다. “처음에 거기로 가자. 전화해 봐.” 남편이 구룡포항을 숙소로 고집한 건 차를 두고 식당에서 술 한 잔 마시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냥 그런 날이라고 했다.
다행히 그 방이 남아 있었다. 방파제 바로 앞이라 객실에서 파도가 보이는 모습이 좋았다. 우리가 묵은 곳은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배우들이 촬영 중 숙소로 사용한 곳이다.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기도 해서 그 촬영지를 가보고 싶었는데 숙소에서 걸어서 5분 정도면 주인공 동백이의 카페 ’ 카멜리아‘가 있다.
우리는 시간을 팔아서 돈을 벌다 보니 남편이 일할 때는 움직이지 못하고 시간이 생겼을 때는 날이 좋지 못해서 같은 돈을 쓰면서 살짝 아쉬움이 생겼다. 구룡포시장은 2주에 1번 있는 정기휴무였고 홍게 철인데 날이 좋지 못해서 배가 못 나갔다는 말을 들었다. 화요일은 비가 아침부터 계속 내리고 바람도 엄청났다. 월요일이 따뜻한 봄날이었다면 화요일은 매서운 겨울이었다.
즉흥적인 여행이라 숙소만 잠시 찾아보고 알아보지 못한 게 너무 많았다. 누군가는 이런 상황들로 계획 없이 움직이는 걸 싫어하겠지만 이런 것도 여행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다는 말, 우스갯소리로 지나가는데 생각해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