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왔다. 어떤 글을 쓰면 좋을지 고민을 하다가 책이 가득한 이곳에서 뭐라도 배우고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서. 집에서 차로 3분이면 오는 이곳을 참 오랜만에 왔다. 책을 빌려 왔다 갔다 하지만 작업실로 생각하고 오는 건 정말 몇 달, 아니 1년은 된 것 같다.
루틴이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루틴이 소리 없이 무너지면서 글을 쓰는 시간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자유롭게 쓰기로 했지만 쉽지가 않다. 글쓰기보다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다른 사람처럼 나도 다양하게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나였다. 물론 조금 더 열심히 부지런하게 움직인다면 가능한데 일상이 흔들리니 쉽지가 않다. 흔들리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지만 그래도 적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작업하려고 앉아도 손을 움직이는 시간보다 잡념에 사로잡힌 시간도 많고, 그러다 작품구상이라는 핑계를 되기도 했다. 왜 안 써질까? 집중을 못해서다. 정답을 알고서 이곳 도서관으로 왔다. 그동안도 왔다 갔다 했지만 글 작업보다 도서 대출, 방통대 과제를 위해서였다.
뒤죽박죽 시간을 보내고 다시 정리를 좀 했으면 좋겠다. 처음 글을 쓸 때는 무엇보다 쓰기가 먼저였다. 우선순위는 글이었다. 그다음 엄마, 아내.. 미안하지만 맞다. 지금도 그래야 하는데 어설프게 받는 강사료에 글이 뒤로 밀려났다. 내가 수업을 하고 오면 바로 입금이 되니까 욕심이 생겼다. 강의를 더 할 수 있게 노력을 해야 하나? 잠시 생각해 본다. 강의를 계속하려면 글보다 강의에 더 정성을 들이는 게 맞다. 생각이 여기까지 흘러가다 멈쳤다. 강의를 위한 글이 아니라 글을 위한 강의였는데 기준이 없다 보니 여기저기 흘러간다.
나는 쓰는 사람이다. 에세이를 쓰고, 그림책을 읽으며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 나를 올바르게 정의해야겠다. 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자. 글을 쓰고 시간을 만들어 육체적인 노동도 해보자. 앉아서 텍스트와 씨름만 하다 보면 정신도 육체도 지친다. 그런 마음에 알바를 다녀오기도 했다. 글을 열심히 쓰자. 생각했는데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그런지 그 힘든 것을 잊는다. 아마도 아이를 낳고 다시는 그 같은 고통을 경험하지 않겠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다시 또 출산한다.
내가 경험한 육체적 알바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그날은 힘들어서 더 열심히 글 작업에 몰두하자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당장 통장에 입금되는 알바를 한 번 더 갈까 고민한다. 전체적으로 알바에 중심을 둔다면 문제겠지만 주 1~2회는 리프레쉬되기도 하는 것 같아서 긍정적이다.
얼마 전 읽었던 책 [당신은 제법 쓸 만한 사람]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본 것 같다. 작가님은 탁송 알바를 한 번씩 하시더라. 현실과 이상을 적절하게 살아가는 것도 내 글쓰기에 더 힘을 실어 줄 것 같다. 듣기 좋은 위로나 희망 타령이 아닌 작은 경험에서 배우는 일상 기록.
글쓰기 에세이가 꼭 글을 쓰는 방법에 관해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혼자 내렸다. 네 에세이 속에 파트를 하나 만들고 그 안에 글쓰기에 대한 부분을 만들어도 괜찮을 텐데. 주부, 엄마, 작가.
[비비안살롱을 시작합니다]를 확장한다고 생각하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