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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연서 Jul 04. 2024

다시 저녁을 길게 살기로 했다

햇살이 비추는 시간에 눈을 뜬다. 아침 7시. 일찍 잠드는 날에는 6시, 5시 30분쯤에도 일어난다. 요즘 내가 잠자는 시간은 새벽 2시 가까이. 그 시간까지 글을 쓰면 좋겠지만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다 잠이 든다.     


미라클모닝이 유행하던 시기 지금도 유행이긴 하지만. 나도 한동안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새벽을 깨워 나 혼자 그 시간을 사용한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고 성공한 대부분이 새벽을 강조했기에 나도 작은 행동이라도 그들과 비슷해지고 싶은 마음으로 노력했었다.

      

나는 주로 올빼미에 가까운데 시간을 맞추려 노력했다. 사실 우리 가족의 시간과는 맞지 않았다. 남편은 밤낮이 자주 바뀌는 운전을 하는 사람이고 아이들이 크면서 잠자는 시간은 계속 미뤄졌다. 일정이 끝나지 않은 아이를 두고 미라클모닝을 고집하기보다 우리 집만의 사이클을 다시 맞추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대부분 낮에 혼자 있다. 가끔 남편이 낮에 있기도 하지만 나처럼 집에 있는 주부는 생각을 하기에 따라, 집중할 시간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그 당시에는 이 생각을 못했다. 코로나로 아이들도 학교에 가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두 함께 하다 보니 다 잠든 새벽에 나를 맡기는 것이 맞았다.

      

다시 세상의 문이 열리고 아무도 없는 빈집에 있으면서 꼭 새벽이 아니어도 좋았다. 마음만 먹으면 집중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나는 다시 저녁형 인간으로 방향을 바꾼다. 나에게 맞는 옷을 찾아 입는 것처럼.    

  

늦은 밤 아이와 이야기 나누고 공부하는 시간을 기다리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미라클 모닝을 내려두더라도 실패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내가 처음 새벽형 인간이 되려 노력할 때 5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보내고 낮에 낮잠을 자버린 날이 은근히 많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만 잠을 자는 시간은 당기지 못했다. 사실 잠자는 시간도 아까웠고, 잠을 적게 자니 더 피곤하고 무언가를 하는데도 꿈속에 있는 것은 몽롱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일찍 잠들었다가 늦게 퇴근한 남편이 와서 안 깨우려 신경 쓰는 남편에게 미안한 맘이 있기도 했다.     

 

그와 반대로 일찍 자고 일찍 나가야 하는 날이면 나의 새벽을 나를 위해 쓰기보다 새벽일 가는 남편의 아침을 준비해서 내보고, 순서대로 나오는 아이들 등교 준비로 새벽을 보내기도 했었다. 나 같은 주부가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기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가끔은 아무도 없이 나 혼자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결혼하지 않고 자기 일을 하는 친구나 지인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미라클모닝을 하지 않는 이유를 길게 설명했다. 새벽 일찍 하루를 시작했었으나 지금은 밤을 조금 더 길게 사용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오늘은 혼자 있는 시간을 알차게 쓰고 싶은 마음에 도서관에 왔다. 집안일을 잘하진 못하지만 눈에 보이면 하나씩 해야 하는 성격이다. 그리고 조금만 피곤하면 침대에 눕고 싶어 진다. 소파에서 책을 보다 그대로 잠들기도 해서 공간을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혼자 카페도 가고 도서관도 가고 나오면 확실히 더 능률이 오르는 것 같다.      


집에 혼자 있는데 굳이 무거운 가방을 챙겨서 외출하는 나를 남편은 이해 안 된다 한다. 그게 여자와 남자의 차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청소기 한번 돌리고 정리 한번 모두 내가 한다는 걸 모르는 것 같다. 또 더 큰 이유는 당신 부인인 내가 몰입하는 힘이 약하다는 게 문제다. 순간 눈에 보이면 그걸 먼저 해야 이는 충동적인 성향이라 글을 쓰려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가도 영화를 보거나, 책꽂이에 몇 달째 있어도 눈길 한번 주지 않다가도 오늘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 책을 펼친다. 어쩌면 이게 가장 큰 문제다. 마감을 지키지만 여우 있는 마감이 아니다. 당일 아침이거나 하루 전 밤에 나를 휘몰아쳐서 완성한다. 미리미리 해두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하지만 내 아이들이라 그런지 나와 비슷한 것 같다.

    

아마 오늘도 집에 있었다면 만년필로 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 새로 산 잉크를 여기저기 채웠다가 너무 한 가지 색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펜의 종류가 달라 글씨체가 미세하지만 다르다. 모두 보라색, 좋아하는 색이라 여러 펜에 넣고 뿌듯했는데 그 순간 기웃했다. 그중 하나는 잉크가 계속 쏟아져서 다시 비웠다. 세척 한 컨버터에 새로운 잉크를 가득 채우며 글씨 쓰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7월부터는 글을 좀 많이 써야 했는데 의지가 무너지게 생겼다.     


다음 주부터는 도서관에 가서 작업을 해야지 했던 생각이 그냥 오늘부터 하자 다짐하고 아름아름 가방을 싸면서 만년필을 챙겨 나왔다. 필사노트도 잊지 않고 한가득 챙겨 왔다. 오늘은 4시간만 작업을 하고 집으로 갈 생각이다. 오전에 4시간, 오후에 4시간 우선은 책상에 앉아서 읽고 쓰고 할 시간을 내가 정해서 나에게 써야겠다.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시간을 가지기 가장 쉬운 사람 중 한 명은 아이가 큰 전업주부가 아닐까? 하루종일 집에서 집과 다른 가족만 가꾸지 말고 나를 가꾸어보면 어떨까? 꼭 돈을 들이지 않아도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일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sns가 모두 정답은 아니다. 유행에 따르기보다 스스로의 기준을 정해 보는 게 중요하다.      


내 시간을 내가 정해서 집중한다면 꼭 새벽이 아니어도 괜찮다. 지금보다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모두 대학진학이나 여러 사정으로 집에 나 혼자, 아니 남편과 둘이 있다면 시간을 또다시 다르게 조정할 수 있다. 변화 없이 일정한 삶이 안정된다 하지만 나는 유연하게 살고 싶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나 혼자 오롯이 아무 부담 없이 시간을 쓸 수 있다면 그 시간에 집중하고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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