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글 좀 써볼게
42살, 결혼 17년 차 주부. 표면적인 나를 소개할 때 쓰는 단어다. 25살 6월 나는 뭐가 그리 급했는지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는 너무나 빨랐다. 나이차가 있는 남편은 그 당시 결혼 적령기를 지난 나이였다. 내가 지금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남이 되지 않을까? 나는 더 큰 세상을 바라보고 시아가 트이고 새로운 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경험들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과 5년 가까운 연애로 이쯤이면 결혼해야지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내가 어리긴 어렸다. 7년, 10년을 만나도 헤어지는 연인이 있고 만나지 1달 만에 도 결혼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보면. 나는 연애를 많이 해보지 않았고 다양한 경험도 없이 학교-회사-결혼 그렇게 단조롭게 정핸진 보통의 생활을 했다. 아이가 조금 자라 다시 직장생활을 하며 워킹맘으로 지낼 것 같았다.
경험의 부재인지 나는 새로운 걸 도전하는 걸 좋아했다. 다시 공부해서 편입을 하려고 했었고 공무원 공부, 화장품 방문판매까지 관심이 가는 걸 시도해 보길 좋아했다. 어쩌면 어린 나이에 결혼했기에 남편은 조용히 내편이 되고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응원해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신중하게 고민하기보다 충동적이고 순간의 감정이 선택에 영향을 많이 끼치는 편이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어쩌면 그런지 모르겠다. 오래전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냥 누르고 살았다.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 어디서든 돋보이는 글쓰기 실력도 없고 어린 시절 백일장에서 조차 상 한번 받지 못했으니 말 그래도 꿈이었다.
오래 살진 않았지만 그 꿈이 이루어졌다. 모두가 코로나로 힘들던 시기에 나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때가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때가 코로나로 힘든 그때, 수술을 위해 퇴사를 했고 몸을 추스르고 다시 재취업을 준비하던 순간에 글쓰기를 만났다. 잠시 지나갈 것 같던 전염병은 꾸준하게 우리 옆에 머무르면서 모두의 일상을 바꿔 놓았다. 맞벌이로 워킹맘을 생각했던 나는 졸지에 전업주부가 되었다. 4학년, 6학년 다 큰 아이들이지만 학교를 가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니 남편은 컨디션 회복 겸 아이들과 함께 하길 바랐다.
나도 2~3달 더 쉬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 학기에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하면 그때 재취업을 하지 하면서 계획은 조금 더 뒤로 밀렸다. 화물운송을 하던 남편이 본인이 조금 더 움직이면 된다며 부담도 덜어주었다. 그때는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몰랐다.
주변에서 폐업을 하거나 무급휴가를 받는 사람들이 늘고 재택근무를 하기 시작했다. 다시 사회에 복귀는 어렵겠다는 생각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할 수 있는지 긴 고민이 시작되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수능을 끝낸 20살 아이가 할 고민을 시작했다. 특별하게 잘하는 것은 없지만 이것저것 끄적이는 걸 좋아했다. 남편은 서두르지 말라고 이 시기가 지나고 내 자리가, 내 일이 나타난다고.
하루 종일 아이들과 집에만 있으니 그것도 힘들었다. 수술 전 혼자 자유롭던 주부일 때는 낮에 혼자 노는 시간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정말이지 딱 1 달이었다. 카페에 모여 차 한 잔에 수다나 마트에서 함께 장을 보는 것들이 어느 순간 반복되는 일상이 되어버리니 나는 내가 일하는 걸 좋아했다는 걸 알았다. 수술이 끝나면 나는 바로 취업해야지 했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취업은커녕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있다.
“여보 나 글 좀 써볼게.” 생뚱맞은 한마디를 남기고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SNS를 조금씩 해왔고, 어린 시절 작가가 되고 싶던 마음을 꺼냈다. 하루하루 바쁘게 지날 때는 몰랐었다. 내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그냥 스치는 삶을 살던 내가 오랫동안 품은 일을 수면 위로 올리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5년째 글을 쓰고 있다.
오래전부터 시간이 지나 글이 모이면 책이 되는 날이 오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네이버 블로거들이 본인의 블로그 포스팅을 토대로 책이 나오는 것이 유행이었다. 지금도 비슷하지만. 책을 내려면 어떤 글을 써야 할까? 글쓰기를 배워야 할까? 특별한 이야기는 없지만 책을 내고 싶었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마음속 깊은 곳은 단순하게 내 책 한 권 내고 싶다는 마음이 시작이었다. 그저 1권만. 딱 1권만.
글을 쓰면서도 지금 쓰는 내 글이 책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음식에 관해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었다. 그것이 내 첫 책의 기획이다. 내 노트에, 브런치에 쓰는 연습이라고만 생각했다. 진짜 책을 쓰기 위해 준비하는 일상에서 무심하게 보내던 하루가 콘텐츠로 바뀌는 순간, 내 글은 출판사와 계약되고 출간 후 베스트셀러가 된다. 작은 분야이지만 요리에세이 1등. 이걸로 글쓰기의 자신감이 생겼다.
내 입으로 말하기 민망하지만 수줍게 작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이들도 엄마의 직업란에 “작가”라고 당당히 적는다. 학부모 상담에 가서 직접 보니 마음이 새롭다. 또 이렇게 계속 쓸 이유가 하나 추가되었다. 더 열심히 써야겠다. 지금 당장은 글을 잘 못 써도 꾸준하게 쓰면서 좋아진다는 자신감도 가져본다.
책 한 권을 내고 작가라 불리니 아직도 작가라는 호칭이 낯설다. 책을 출간하고 나서 나와 비슷한 평범한 주부, 회사원이라고 소개하는 작가들의 글을 찾아 읽었다. 그중에 반 이상은 방송작가 출신이었고 글을 쓰는 업을 지속하고 있다. 관련 전공을 한 사람도 많고. 사실 기가 죽었다. 아무것도 몰라서 용감하게, 글쓰기가 좋아서 무조건 쓰기 시작해 책을 출간했으니.
살면서 돌고 돌아 지금 가는 이 길이 내 길인가 생각해 본다. 다시 국문학과 공부도 시작했는데 이제 1학기면 졸업이다. 고민만 하던 일을 하나씩 마무리하니 뿌듯하다. 이제 그만 되었다가 아닌 지금부터 피우지 못한 나의 꽃을 피워보기로 했다.
[글 쓰는 마음]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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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는 핀터레스트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