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연습장

마흔넷, 계속 쓰는 중입니다

by 오연서

글을 써야지 마음먹는 날이면 꼭 만년필에 잉크가 없다. 새 잉크를 갈아 끼우며 오늘 쓰기는 그만하자 생각하다가도, 펜 끝에서 검은 잉크가 줄줄 흘러나오면 어린아이처럼 괜히 신이 난다. 그렇게 다시 쓰기 시작한다. 글을 쓴 지는 햇수로 5년, 책 한 권과 몇 가지 작업이 남았다.


글쓰기는 그냥 좋아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잘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언제부터 이렇게 작아졌을까. 글쓰기 엘리트가 너무 많아서일까.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마음은 늘 있지만, 현실은 밥벌이를 핑계로 자꾸 미루게 된다. 나만 이런 건 아닐 텐데, 창작하는 사람은 다 비슷하지 않을까. 아르코 사이트에서 ‘전업 작가보다 다른 일을 병행하며 글을 쓰는 사람이 더 많다’는 문장을 보며 괜히 위로를 받았다. 2026년 창작지원금과 각종 지원사업을 찾아보던 중 그 문구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글을 써야지. 내 나이에 대해 쓰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흘려보냈다. 마흔에 대해 쓰고 싶었는데 어느새 나는 마흔넷이 되었다. 글쓰기에 대해 쓰다 멈추고, 마흔 아줌마의 이야기를 쓰다 멈추고, 타로에 대해 쓰다 또 멈춘다. 왜일까. 아직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이 가장 크다. 그래도 이제는 생각을 바꿔 그냥 쓰자. 쓰고 보면 뭐라도 되겠지. 세 가지 주제를 하나씩 차례대로 써보자. 특별한 방법은 없다. 쓰기는 결국 쓰는 만큼만 길이 생긴다. 나는 그걸 모르고 유명해지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글이 곧 명함이 될 거라 믿었다. 시간을 쌓아서 전문가가 되는 길보다, 어쩌면 인플루언서가 되는 길을 더 쉽게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일이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2의 직업을 찾으려니 더 버거웠다. 하나를 제대로 마무리하기도 전에 새로운 것을 계속 시작했다. 초보 수준을 조금 벗어났을 뿐 깊이 나아가지는 못했다. 좋아하는 것을 찾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 시간만큼 마음도 흔들렸다. 스무 살에 시작했다면, 지금쯤 어느 분야에서 자리를 잡았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20대에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30대까지 거의 ‘누군가의 엄마’로 살았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말처럼 왜 그렇게 서둘러 결혼을 선택했는지 생각해 보지만 잘 모르겠다. 힘들었던 삶에서 결혼은 새로운 시작이라 믿었지만 아무 준비 없이 선택한 결혼은 냉정한 현실이었다. 특별한 변화도 극적인 전환도 없었다.


지금 결혼하는 친구들을 보며, 삶에는 꼭 정해진 순서나 도착해야 할 지점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각자의 속도로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고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내 곁에서, 어떤 친구는 이제 막 임신을 하고, 또 다른 친구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있다. 문득 그 시절의 친구들도 지금의 나처럼 나를 바라보았을까 생각해 본다. 애매한 자리, 애매한 재능, 애매한 시기. 누구에게나 있겠지. 몇몇 특별해 보이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비슷한 자리에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산다. 마흔에 경제적 자유를 이뤘다는 이야기, 한 끼 식사에 중소기업 월급만큼을 쓰는 사람들의 삶을 접할 때, 사람마다 삶의 속도와 방향이 얼마나 다른지 마흔을 넘어서야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어른이 되면 누구나 부유하고 행복할 거라 믿었던 어린 시절의 생각은 단순한 꿈이었을까. 원래 내가 비관적인 사람이었나. 긍정적이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살면서 현실에 치여서 그럴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던 나를 떠올리며 다시 글을 쓴다. 나는 여전히 꿈을 꾸고, 여전히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기준이 모두 다르듯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함은 아니다. 나처럼 조금 늦게 조금 돌아서 쓰기를 시작한 엄마 작가들을 위해 쓰고 싶다. 많지는 않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사람들 유능한 인재들 사이에서 자신을 소시민이라 부르는 사람들에게 작은 힘이 되었으면 한다. 거창한 꿈이 아니어도 좋다. 살면서 이룰 다음 단계가 있다면 그 정도로 충분하다.


지금의 나는 타로를 하며 글을 쓰는 사람이다. 타로를 단순한 점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이자 사유의 도구로 배우면서, 나는 다시 ‘쓰는 사람’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정답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건네는 사람으로, 예언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들여다보는 사람으로. 아직은 서툴고 자주 흔들리지만, 그럴 때마다 만년필을 다시 든다. 유명해지지 않아도, 대단한 명함이 없어도 괜찮다. 오늘처럼 이렇게 한 줄을 쓰고 또 한 줄을 이어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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