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연습장

다시 펜을 잡은 이유

by 오연서

글쓰기를 계속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시련이 닥친다. 거창한 시련이라기보다 그냥저냥 작은 어려움들이 이어진다는 말이 더 맞겠다. 글을 아주 잘 쓰는 것도 아니고, 첫 책이 엄청 잘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계속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꿈을 쉽게 버리지 못해서다.
‘쓰는 사람.’ 짧은 네 글자가 좋아서, 그냥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말이 어려워 내 생각을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보는 일에 의미를 두고 시작했다.


매일 꾸준히 쓰면 좋겠지만 늘 그렇지는 않다. 아이에게 일이 생기고, 강의 준비를 하느라, 남편과 외출할 약속이 생기다 보면 이유와 핑계는 얼마든지 만들어진다. 그렇게 글쓰기는 늘 뒤로 밀린다.


노트북을 켰다가 정보 탐색만 하다 말고 옆으로 밀어 두고 펜을 잡는다. 내가 처음 산 만년필은 3만 원대의 입문자용이었다. 가장 오래 썼고, 지금도 가장 애착이 가는 펜이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만년필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샀다. 보여 주기 위한 만년필이었다면 더 비싼 것을 골랐겠지만 이건 실제로 쓰는 습작용이다.


주로 노트북으로 글을 쓰지만, 손으로 쓰는 감각이 좋아 노트에 손글씨로 적는 일을 여전히 좋아한다. 요즘은 키보드 소리만 남고 손글씨는 점점 사라진다. 필사조차 노트북으로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만년필을 쓰기 전에는 동아 0.7mm 볼펜을 한 다스씩 사두고 하나씩 쓰는 재미가 있었다. 우연히 만년필을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익숙하지 않았지만 조금씩 쓰다 보니 만년필의 사각사각 이 소리가 좋아서 자꾸 손글씨를 쓰게 된다. 쓰면서 잡념을 잊는다.


이럴 때는 주제가 분명한 글보다 생각을 잡으려 한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을 때, 예쁜 글씨가 아닌 빨리 잊기 전에 적어두는 메모에 가깝다. 만년필과 노트로 쓱쓱 써 내려가다 보면 어떤 글이든 쓸 수 있을 것 같고, 그 순간만큼은 내가 진짜 글 쓰는 사람 작가가 된 것 같다.


노트를 하나씩 채우며 얕은 생각에서 조금씩 깊어지는 사유까지 기록하다 보면, 언젠가는 글쟁이 어느 한쪽에는 서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다만 여전히 꾸준함이 아쉽다. 나는 과연 꾸준히 글을 쓰고 있는 걸까.


책상에 앉아 웹서핑을 하다 보면 가끔 내 책을 검색해 본다. 출간한 지 어느덧 4년에 접어들어 예전보다 그 빈도는 줄었다. 화면에 몇 건의 새 리뷰가 뜬다. 책을 선물 받은 독자, 도서관 이벤트로 추천받은 독자, 전자책으로 읽은 독자까지. 새로운 블로그 글을 발견하면 혼자 잠시 흥분한다. 아직도 읽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난다.


일상의 소소한 기록으로 시작한 글이 책이 되었고, 그 책이 멈추지 않고 누군가의 손을 거쳐 다닌다. 그 사실이 새삼스럽다. 리뷰를 하나하나 읽으며 작가 본인이라 감사하다는 댓글을 달까 하다가 그냥 두었다. 2022년, 책을 처음 냈을 때의 나는 모든 반응에 답을 남기곤 했다. 구입 독자든 서평 독자든 모두 고마웠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감사한 마음은 같다. 다만 이제는 안다. 댓글을 하나 더 다는 것보다, 새 책을 한 권 더 쓰는 일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반가울지도 모른다는 걸.


나는 또 하나 써야 할 이유를 얻었다. 멈추지 말자. 평생 한 편만 남긴 마거릿 미첼도 있고, 단편 오백 편을 남긴 체호프도 있다. 어느 쪽도 정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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