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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연서 Jan 22. 2021

삼겹살의 의미

사실 나는 삼겹살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내가 언제부터 삼겹살을 좋아했지??
 
남편을 만나고부터 나는 식성이 변했다. 내가 어릴 때 엄마랑 순대를 사서 외할머니 댁에 간 적이 있다.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순대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아마 초등 저학년이나 유치원 때이었을 거다. 하나를 입에 넣는 순간 수돗가로 뛰어가서 그대로 뱉고 나는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나는 맛없다고 말하고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입에 넣자마자 역겨운 냄새가 속을 뒤집었다. 제대로 씹지도 못했다. 할머니와 엄마가 먹고 있으니 더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 순대는 우리 집 근처 시장에서 유명했었다. 항상 사람들이 줄 서서 사곤 했지만 한 번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고등학생쯤 친구들과 다시 먹어본 순대는 어릴 때보다는 괜찮게 다가왔다. 조금씩 어른의 입맛으로 변환 것 같다. 지금은 순대도 순댓국도 다 잘 먹는 어른이 되었다. 여전히 어려운 음식들은 많다.
 
처음 남편은 데이트마다 스파게티나 피자, 돈가스 등의 양식 메뉴를 나름 선정했었다. 나는 싫지는 않았지만 궁금했다. 남편은 내가 좋아할 것 같은 메뉴들로 항상 데이트 코스를 정했다. 나의 한마디에 본인이 좋아하는 한식으로 조금 더 발전해서 국밥류로 메뉴들이 바꿨다. 처음에는 잘 먹지 못하던 나도 새로운 메뉴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의 첫 데이트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나는 스파게티를 처음같이 먹었으려나 했는데.. 기억의 왜곡이었나 보다.. 처음에는 본인 취향으로 갔다가 내 눈치를 보고 내 취향으로 왔다. 나는 다시 남편 취향 쪽으로 내가 맞춘 것 같다. 아마 데이트 비용을 주로 남편이 부담해서 내가 돈 내는 사람 먹고 싶은 거 먹자는 마음이 있었나 보다. 우리는 나이 차이가 많이 있어서 조금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이 있는 남자 어른이라 은연중에 저런 메뉴는 안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나 이렇게 착한 사람이었나.. 세상에 공짜 밥은 없는데.. 그 많은 공짜 밥이 우리를 부부의 인연으로 묶어 주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집이 통영이다. 타 지역 지인들은 아빠는 배 타고 엄마는 굴이나 조개를 캐러 다녔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우리 부모님은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셨다. 일부 친척들은 그런 일을 많이 하셨고 지금도 하신다. 집이 바닷가라 해산물을 좋아할 거라는 오해를 하는데 나는 잘 먹지 못한다. 육식을 선호하는 사람이다. 해산물보다는 채소를 더 좋아한다. 이상하게 바다의 비릿한 냄새와 맛이 싫다. 어릴 때는 거의 먹지도 않았다. 지금은 회나 조개도 어는 정도 맛은 보지만 즐겨서 먹지는 않는다.
 
자연스럽게 주메뉴는 고기였다. 삼겹살을 좋아하는 남편과 내가 만났으니 삼겹살을 자주 먹게 된 거 같다. 비싸지도 싸지도 않던 부위라 주머니가 가볍던 그 시절 우리가 자주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정주부로 직장인으로 살면서는 바쁜 날 저녁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하루 종일 바빠서 저녁 할 기운이 없으면 퇴근길 집 앞 마트에서 장을 봤다. 간단하게 준비하기에는 고기가 딱이었다. 특별하진 않지만 무언가를 먹은 듯한 느낌이 있다. 지방이 많아서 다른 부위를 먹자고  의식하지만 다시 삼겹살로 돌아가는 나를 본다. 내가 고기의 참맛을 알게 해 준 부위라 그런 것 같다. 소주, 맥주와 참 많이 먹었다. 한때는 삼겹살 집을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있었다.
 
우리 집(친정)은 고기를 먹으면 소불고기나 돼지갈비를 먹었다. 시댁은 명절에 삼겹살을 굽는다. 모이면 삼겹살을 자주 구웠다. 생각의 차이 살아온 차이가 있다. 가끔 주변에서 기름이 튀어서 삼겹살은 외식 메뉴라고 하는 지인들이 있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남편은 집에서도 편하게 먹던 메뉴가 삼겹살이다. 이제 나는 집에서 먹고 싶으면 먹으면 되지 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내일이 주말이니 저녁 메뉴로 고기 좀 구워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예전처럼 고기에 술을 즐기지 않는 우리 부부다. 언제부턴가 금주하는 남편을 보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술이 줄었다. 술이 없어도 고기는 맛있고 아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먹는 재미도 있다.

나는 몰랐던 많은 것을 남편과 아이들로 인해 알아간다. 아이들이 해산물을 즐기며 나보다 더 맛있게 잘 먹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다. 삼겹살이 맛없다는 아들을 보면서 너도
 "엄마,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실래요? " 하는 날이 오겠지 하고 생각해본다.

#위로 #치유 #추억 #삼겹살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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