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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수민 Sep 02. 2023

엄마와 연을 끊으려고 했었습니다만.....

오은영의 화해를 읽고..

https://brunch.co.kr/@tamiym/46


3년간의 장장 심리상담이 끝나고 약 4-5개월이 지났다. 지금도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다만 아픔을 또 마주해버렸다. 가족들과 시간을 자주 보내려고 했고 그렇게 하는 와중에 내가 심리상담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모든 이유들이 물위로 떠올랐다. 내가 왜그렇게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불안해하고 예민해질 수 밖에 없었는지 알게되었다.


물 위로 떠오른 문제들을 직접 다시 겪어보니 마음이 매우 좋지 않았다. 마음이 무너졌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가 오은영의 화해라는 책을 읽고 다시금 나 자신을 바라보았다. 한장한장 눈물없이는 읽기가 힘들었다. 한문장 한문장 다 나같아서. 나오는 눈물을 꾹 참으며 읽는데 좀처럼 책 한장 한장 넘기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이렇게 글을 써본다.


여느 다를 것 없는 주말이었다. 긴 연휴여서 나는 또 엄마를 보러 갔다. 엄마는 이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별로 남지 않았으니까. 이제 본 날보다 볼 날이 남지 않았으니까 자주 뵈고 좋은 시간 많이 만들어야지란 생각에 다른 일정을 제쳐두고 보러 갔다. 그런데 그 생각은 나만 가지고 있었던것 같다. 이주만에 보는 것이었다. 왕복 6시간의 거리이다. 엄마는 또 오냐며 넌 친구도 없냐며 귀찮아 하는 눈치였다. 내가 갈거란 말에 엄마는 친구와 내 흉을 본얘기를 했다. 딸이 또 오냐고, 그 나이때는 친구만나 밖에서 놀고다닐 때 아니냐며 이상하다고 그랬단다. 나는 단지 엄마랑 시간을 보내려 왔을 뿐인데 3시간을 걸려 온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서운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엄마를 귀찮게 할 의도도 없었다. 엄마가 쉬고싶었을 수도 있고, 귀찮을 수도 있고 내 마음과 다를 수도 있다. 그런데 뭔가 내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툭 올라왔다. 예전같았으면 꾹 참았을텐데 이제는 참아지지 않고 눈물이 계속 나왔다.


눈물을 흘리는 나에게 엄마는 무슨 소리를 못하겠다며 그냥 한소린데 왜 서운해하고 삐지냐며 그렇게 예민하고 속좁다고 니가 그러니까 친구가 없지라며 불편한 말들을 퍼부었다. 거기서 알게되었다. 내 모든 마음의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구나. 그래서 엄마가 그렇게 말하니까 속상해라고 했지만 엄마는 나에게 니가 그렇게 별것아닌 말도 마음에 담아두니까 너랑 얘기하는게 불편하다고 너가 오는게 불편하다고 했다. 내동생한테도 똑같이 하는데 동생은 그냥 넘기는데 왜 너는 그냥 못넘기냐면서 감정이 상한 나를 타박했다.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아.. 모든 나의 감정적 문제가 인생의 문제가 여기서 시작되었구나. 나는 더이상 그자리에 있고 싶지 않아서 엄마 집에 3시간 걸려서 온지 한시간 만에 나는 엄마에게 알겠어, 다시 집에 올라갈게. 그래, 나 이렇게 예민하고 사소한 거에도 못넘어가서 친구 없어. 다신 집에 안올께. 더 이상 귀찮게 안할게라고 말하고 짐을 다시 쌓면서 나가려는 와중에 엄마는 또 한소리 했다.


왜 이렇게 극단적이야?


또 마음이 와장창 무너졌다. 절규하듯이 울면서 엄마 제발 말 좀 따뜻하게 해줄 수 없냐고, 엄마가 하는 말은 극단적이지 않냐고. 제발 우리가족이 서로 존중하고 말을 따뜻하게 나눌수 있게 해달라고 매일 울면서 기도한다고.. 엄마도 감정이 힘들어서 자식 놔두고 집 많이 나갔잖아. 내가 배운건 이런거 밖에 없어라고 했다. 엄마는 아직도 그런 분노를 가지고 있냐면서 엄마를 이겨먹으려고 하냐면서 엄마는 그래도 너는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가려는 나를 이왕 왔으니 자고는 가야지라며 수동적으로 나를 붙잡았다.


내가 성숙해진만큼 엄마도 성숙해진줄 알았다. 상담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맀다. 엄마에 대한 나의 마음이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내 마음이 바뀌어서 엄마의 좋은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된거라고, 엄마는 많이 바뀌지 않았을거라고. 그 말이 맞았다. 엄마는 바뀌지 않았다.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지켜보았을 땐 괜찮았지만 자주보았을 때는 내가 그렇게 힘들어했던 문제들이 드러났다.


귀찮아하는 엄마의 태도는 이번만이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늘 그래왔다. 하루라도 빨리 이 집구석을 탈출하고 싶은 엄마, 자식때문에 어쩔 수없이 묶여있었고, 그런 무기력과 안으로 삭힌 분노와 슬픔 복합적인 감정들 속에서 자신을 의지하는 자식들이 귀찮고 짐처럼 느껴졌을까. 내가 잠깐 다닌 고등학생때 고시원에서 돌아와서도 엄마는 내가 빨리 다시 고시원에 들어가길 바랬다. 조금이라도 집에서 쉬다가려면 엄마 귀찮게 그러냐면서. 내가 더 어릴때는 나갈 때가 없으니 반대로 엄마가 나간 거였나.


날 밀어내려는 태도. 거기서 내 유기불안이 생긴거였다. 이번 연휴때도 엄마가 보여준 귀찮아 하는 태도가 트리거가 되어 이전에 나를 아프게 했던, 나의 마음상태가 힘들어졌던 시작점이 여기서부터였구나라는걸 이제는 제대로 보고나니 마음이 너무 아프고 속상하고 슬펐다.


유기불안.

유기공포 혹은 유기불안, 버림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 정서적 유기는 타인들이 자신을 싫어하고 있거나 홀로 남겨졌다거나 불안정하거나 버림받은 듯한 느낌을 갖는 사람의 주관적 감정 상태를 말한다. 유기공포를 겪고 있는 사람은 상실한 느낌을 받으며, 생명원이 갑자기 혹은 서서히 사라지다 단절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고전적인 유기 시나리오에서는 정서 유대 단절이 일방적이어서, 개인의 애착대상은 연결을 끊으려는 사람이 된다. 유기공포의 중요 구성요소로서 거절당함을 느끼면, 뇌의 통각수용체를 활성화하며 뇌의 경보체계에 정서적 각인을 남길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생물학적인 영향이 있다. (위키백과)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말하면, 현재 관계 속에서 유기공포를 느낀다면 다음과 같은 과거의 정서적 신체적 유기 경험이 원인이 된다고 한다. 그 중에 나에게 해당되는 것은 어렸을 때, 부모나 양육자의 죽음 혹은 방치를 경험하였거나 부모의 무시를 경험한 적이 있거나 또래들에게 거절당한 적이 있는 것 같다.


나의 관계들이 삶이 너무나 힘들고 끔찍했던 나의 감정상태. 관계속에서 내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고 초라하고 무너지게 만들었던 감정상태. 상담선생님은 보통 시람들이 분리불안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유기불안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나의 그동안의 관계와 삶과 나 자신이 선택했던 감정과 행동들이 이해가 되었다.


니가 그러니까 친구가 없지


상처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엄마. 심한 말을 그냥 한소리라고 하니 나는 그냥 하는 소리도 이해못하는 속좁은 사람이라고 이렇게 속좁은 사람이랑 누가 어울리고 싶겠나 싶어 더욱 움추러들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예민한 기질이 타고난 줄 알았다. 물론 타고난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질을 더욱더 예민하고 불안하게 키운건 엄마의 양육태도도 한몫했을 거다. 자연스러운 감정에도 수용받지 못하고 부정적인 감정도 포용받지 못하니 나는 감정을 잘 다루지 못했고 인간관계도 많이 서툴기 일쑤였다. 사실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별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는 것 같다. 모르겠다. 친구란게 무엇인지. 단지 서로에게 가족이 생기고 가족에게 집중하고 일년에 한두번 연락하고. 그마저도 자연스럽게 안하게 되어 멀어지고. 가족이 있고 내편 한두명 있다면. 오은영선생님이 가족포함 평생가져갈 사람 2-3명이면 족하다고 했는데. 난 그 속에 가족이면 충분할 것 같다라고 생각했는데 가족이 날 밀어내 버리니 세상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열심히 사는것도 사랑하는 사람과 추억을 만들고 좋은 시간을 쌓기 위함인데 그 순간만큼은 열심히 살고 싶지도 않았고 모든게 무의미하다 생각했고 내가 했던 모든 루틴들도 다 내던져버리고 싶었다.  


거기서 알게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이유는 바로 나라는걸. 가족은 내 삶의 이유가 될 수 없구나라는 걸. 나 자신을 버틸 수 있게 한건 바로 나였다. 내 인생. 나 아니면 누가 돌봐주고 책임져..?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한 걸음씩 지금 내가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자는 마음으로 이렇게 살아왔던걸 돌아봤다.  


나를 아프게 하는 관계에 나를 더이상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밤에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이 밤에 몰래 집을 나갈까. 엄마와의 관계를 끊어버릴까. 가족들과의 관계를 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딱 나의 마음상태였다. 얼마나 아프고 슬펐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지만 나도 그만큼이나 슬프고 속상했다. 볼 수 있는데 못본다 생각하니까 돌아가신것보다 더 슬펐다. 엄마가 키우는 강아지도 못본다 생각하니 또 슬펐다. 한편으로는 자유로움도 느끼기도 했다. 애써 엄마보러 구지 이렇게 한국에 살아야하나 싶었다. 좋은 시간 보내고 같이 추억만들고 싶은게 나의 욕심이었나.. 또 한번 마음이 아팠다.


그런 고민을 하니 아침이 왔다. 나의 자는걸 확인하러 오는 엄마의 발걸음에 자는 척을 했다. 엄마는 일이있어 나가봐야한다고 같아오면 같이 밥먹자고 했다. 엄마가 없는사이에 내가 진짜 나갈까봐 그런말을 하고 간건지 엄마는 돌아온다는 시간보다 훨씬 빨리왔다. 그렇게 모지고 심한 말을 할 때는 언제고 이번에는 딸 눈치를 보며 그런 모습을 보고있자니 마음이 또 한번 속상했다.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어서 제정신이 아니었어서 그랬다고, 미안하다는 말을 애써 빙빙 돌려가며 어쩔 줄 몰라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너무나도 속상했다.


그래, 엄마는 이런 부분이 참 서툴렀지. 성인이 다 된 나에게 나의 모든 문제들을 엄마탓 하고 싶진 않다. 그렇지만 내가 가진 모든 심리적 문제들은 해결해야하기에 몇백만원을 들여 몇십시간을 들여 상담을 했다.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다. 그덕분에 엄마도 이해하고 건강한 관계맺는 법과 일상을 행복하게 보내고 소중하게 여기는 법을 알게되었으니까. 더이상 내 삶이 비참하지 않고 초라하지않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살만한 가치가 있는지 알게되었으니까.


부모는 본능적으로 자식을 사랑하지만, 목숨을 바칠 만큼 엄청나게 사랑하지만, 그래서 결국은 자식에게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봐도 문제가 있다고 할 만한 부모는 물론이고 좋은 부모라는 말을 듣는 부모조차 그럴 거예요.

오은영의 화해 | 오은영 저


나는 이 문구가 참 마음이 갔다. 오은영의 화해책 첫부분에는 모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식으로든 상처를 남길 수 밖에 없는 존재라니.. 참 쉽지 않다. 그 이후의 부분에는 부모님을 미워해도 된다고, 그 감점을 인정하라고 한다. 나도 사실 엄마가 너무 미울때는 차라리 엄마가 죽고 아빠가 살았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상담선생님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괜찮다고 다독여주시면서 그런 감정을 표현하면서 한편으로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고 했다. 문제는 그 부정적인 감정을 피하고 억압하기 때문에 심리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하셨다. 여러 사례들을 말씀해 주시면서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엄마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또 내가 나 자신을 다시 보게 한 구절이 있다. 엄마와 좋은 시간을 보내려는 마음이 아직은 엄마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받고 싶어서 엄마 곁에 더 머무르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부모가 지속적으로 거절하거나 귀찮아하면 아이는 절망해서 더 이상 부모에게 다가가지 않아요. 겉으로 보기에는 독립적인 아이로 자라는 듯하지만, 그건 ‘허구의 독립’일 뿐입니다. 아이는 뒤늦게라도 그 결핍을 채우고 싶어 하지요. 여자도 그런 것 같아요. 뒤늦게 의존적 욕구를 채우고 결핍을 메우고 온전히 수용받는,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관심과 보호를 받으려는 마음 때문에 친정어머니 옆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릴 때처럼 외로워지는 것보다 지금이 낫다는 무의식적인 생각 때문이지요.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이제 성인이 되었는데도 부모 곁에 붙어서 사랑과 관심을 여전히 갈구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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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합니다. 그것이 순리입니다. 반항도 배신도 불효도 아니에요. 만약 부모가 지나친 집착으로 자식의 독립을 막는다면, 진정한 독립을 위해서 부모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독립이란 연을 끊는 게 아니라 몰두하는 대상이 바뀌는 거예요. 부모보다는 나의 배우자, 내 아이 그리고 내가 몰두하고 싶은 것으로 말이지요. 결혼 후에도 부모의 간섭이 이어진다면 “제 가정이니까 제가 하나씩 배워 가면서 만들게요. 이제 제가 가장 많이 의논할 대상은 어머니가 아니라 배우자예요”라고 단호하게, 반복해서 말해야 합니다. 그렇게 지금 선을 그어야 해요. 그렇다고 사이가 나빠지거나 등을 지고 지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은영의 화해 | 오은영 저


엄마는 나보다 어린나이에 엄마가 되었고 이렇게 다 큰 딸을 대하는것도 처음일 것이다. 엄마도 당신의 엄마에게 좋은 양육을 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평생을 서운해하며 당신의 엄마를 애써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는 모습과 결국에는 이해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당신의 엄마의 죽음에 얼마나 서럽게 울던 엄마를 보니 마음이 심숭생숭했다. 딸들은 엄마보다 성숙해지는 것 같다.


이제 독립할 때가 된것 같다. 엄마는 여전히 미성숙하겠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는다는걸,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엄마의 사랑하는 마음은 더욱 상상할 수 없이 클 것이다. 죽을뻔한 위험을 각오하고 나를 낳았으니까. 집을 나갔더라도 결국은 자식이 걱정되어 다시 돌아와 자신을 죽일려는 나에게는 아빠인 남자와 같이 살며, 싫지만 싫은일을 하고 일찍히 남편을 잃고도 이해되지 않아도 이해하셨을테고 홀로 자식을 위해서 자식들이 혼자 밥벌이 할때까지 자존심, 자존감 다 버리며 모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감내하셨으니까.  이제는 엄마도 진정 엄마의 삶을 살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엄마가 참 원망스러웠는데 이렇게 글을 쓰고보니 엄마가 참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감사하고 참 복잡미묘하다. 최근에는 당신이 먹는 영양제가 너무 잘 맞는다며 너도 먹어보라고 추천해주시고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해주려 전화해주셨다. 그래, 엄마는 이랬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게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참 천진난만하고 천방지축 소녀같은 엄마. 앞으로로 또 갈등을 겪고 다툼이 있겠지만 쉽지 않지만 내가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해야지. 엄마가 엄마대로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사랑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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