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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수민 Oct 21. 2023

40여 일간의 짧은 연애가 끝이 났다.

오랜만의 연애이기도 하고, 이전의 미성숙한 연애가 아닌 좀 더 따뜻하고 다정하고 성숙한 연애를 하자 다짐하고 신중히 생각하고 시작한 연애였는데, 마음처럼 참 쉽지는 않았다. 짧은 연애였지만, 참 나에게 의미가 깊은 연애였는지, 참 많이 씁쓸하고 착잡하고 아쉽기도 하고, 마음이 아팠다. 연애를 종종 했지만 진심을 다한 연애를 해보자고, 사랑을 해보자고 시작했던 사람이었으니까.


생각과 가치관, 경제관념, 삶의 방향성 등등을 넘어 가족관계, 병력, 보험, 재산까지 다 확인하고 선보듯 시작한 연애였다. 우린 참 잘 맞는다고, 이런 사람을 지금 놓치면 안 될 것 같다고, 우리가 만나게 온 우주가 도와준 것 같다고, 마지막이면 좋겠다고, 행복한 미래를 그려갈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렇게 서로 약속하고,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시작했지만 너무 확 불타오른 불이 빨리 꺼진다고, 우린 엄청난 끌림이었던지, 평생을 약속한 게 무색한 만큼 너무나도 허탈하게 오래가지 못했다.


비슷만 만큼이나 잘 맞은 만큼이나 정말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고, 잘 맞는 것처럼 맞춰주던 부분이 점점 생기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잘 맞는 것과 맞지 않는 부분사이만큼이나 내가 그렇게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했던 선택들에 대해서 괴리감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상대방에 대한 마음도 점점 확신이 줄어들어 갔다.


겉으로 드러난 부분이 정말 비슷할 수도 있고, 삶의 가치관이나 삶의 방향이 정말 잘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한 건, 이성적으로 잘 맞는 것보다 이성적으로 맞지 않아도 좋아하고 사랑으로 보듬어주고 안아주고 희생할 수 있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었나, 생각하면 그렇지는 않았던 거 같다. 잘 맞지 않았어도 오래 지속한 연애를 돌아보면, 부족하고 흠이 보여도 안아주고 아껴주고, 기꺼이 포기하고, 계산하지 않고,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네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게 아닌 사랑하기 때문에 네가 필요하는 사랑을 했던 것 같다.


잘 맞고 성향도 결도 비슷하고 그리고 현실적인 부분에서도 잘 맞으면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감정이 생길 줄 알았던 게 나의 오만이었던 것 같다. 살아가는 데는 돈도 정말 필요하지만 삶을 의미 있게 지속하게 하는 건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알며 알 수 없는 인생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과 어떤 아프고 슬픈 상황까지도 껴안을 수 있는 마음과 아낌없이 내 것을 나눌 수 있는 여유일 테니까. 풍족해도 풍요롭지 않은 삶은 살고 싶지 않다.


연애만큼이나 나 자신의 바닥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삶에 별로 없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 배울 점도 있고 어떤 연애를 하던 배워가는 게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그 관계에 진심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에게 최악인 상태로, 너무 아픈 생채기를 남긴 채로 상대방 탓을 하던 내 탓을 하던, 고통스럽거나, 화가 난 상태로만 있는다면,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함께한 순간들이, 내 삶의 일부분이 너무 원망스럽게만 있지 않을까 싶다. 그 감정으로 인해 다른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를 보며, 나를 본다.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구나, 내 부족한 부분은 이런 게 있었구나, 나의 성숙하지 못했던 부분, 아쉬웠던 부분들을 다시금 알게 해 주어서 고맙다. 짧았지만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을 함께해 주어, 많은 추억을 만들어주어서, 자기의 시간을 들여 땀 흘려 고생해 얻은 너의 소중한 대가로 참 많은 것을 나누어줘서 고마워. 잘 지내고 행복하길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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