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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미 May 14. 2024

암이라고 쫄지마. 큰 병원은 기세다.

드디어 기다리던 상급병원 초진. 기다리는 건 2시간, 진료는 10분

기다리던 상급병원 초진일이 다가왔다.

암 환자가 되고 나서 가장 힘든 건 기다리는 시간이다. 하루라도 빨리 초진일이 오길 기다렸지만 전날 밤부터 잠이 안 왔다.


내가 진짜 암이구나.

진짜 상피내암일까? 다른 이상은 없을까?

내가 선택한 병원은 신촌 세브란스.

오전 9:30분에 교수님 진료가 예약됐고, 진료 전 사전 설문지를 카톡을 받았다. 그리고 4시간 금식 안내도 받았다.


요즘 의료 파업 때문에 세브란스 진료 잡기 하늘의 별 따기인데, 다행히 나이가 어리다 보니 패스트트랙의 수혜를 봤다.


만 40세 이하 암 환자들은 초진 하루 만에 수술 전 검사를 하고, 빠르게 수술 날짜까지 잡는 제도가 있다.


나이가 젊을수록 암세포도 활동적이기 때문이다.


초진인 경우, 30분 이상 빨리 가기


상급병원 초진을 하기 전엔 해야 할 일들이 좀 있다.

친절한 안내서에 따르면 진료 전, 원무과 창구에 수납을 하고 의뢰서/ 유발 촬영술, 초음파 영상 CD를 제출해야 한다.


상급병원은 수납을 먼저 안 하면 진료를 받을 수 없다.


초진은 무조건 창구에서 접수해야 한다.

나는 병원 앱으로 카드를 등록하려고 했는데 계속 실패해서 원무창구에서 이것도 신청했다.

처음 병원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때 환자카드도 만들어 준다.

첫 진료이고 할 일들이 있기 때문에 늦을까봐 긴장해서 진료시간 보다 1시간 일찍인, 오전 8시 20분에 병원에 도착했다.


그 시간에도 접수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빨리 가면 사람이 없는 편이다.


암병원 1층에 있는 원무 창구에서 접수를 마치고, 다시 5층 유방암센터로 이동해 수납 창구에서 도착 확인 버튼을 눌러야 한다. 도착 확인 버튼을 어리버리 하지 않고 누르는 것은 적응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럼 창구에서 내가 왔다는 것을 확인하고, 셀프로 키랑 몸무게, 혈압을 측정해 오라고 안내를 한다.

준비해 온 조직 슬라이드도 여기서 제출했다.


세브란스는 환자 바코드로 모든 것이 돌아가니, 키/몸무게/혈압도  환자 카드나 앱으로 바코드를 찍고 측정이 끝나면 전산으로 보내면 알아서 다 입력이 되는 듯하다. 이건 혼자 하기 어렵지 않다.


빨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이걸 다 하니 9시가 넘었다.


대형 병원은 기다림의 연속


9시 30분이 진료 시간이니 금방 되겠다는 생각에 기다리고 있었는데, 대기자 안내판에 내 이름이 떴다가 사라지기 일쑤였다. 


'아니 왜?' 계속 중간에 사람이 추가되지?


진료는 오는 순서가 아닌 예약 순서라는 안내가 있었는데, 예약자들이 뒤늦게 계속 도착하는 듯했다.

무슨 진료가 5분 단위로 있는 듯... 교수님은 열일 중이니 내가 기다려야지..


그리고 초진 환자가 있으면 시간 딜레이가 더 생긴다. 나도 오늘 민폐를 끼칠 초진 환자다ㅠ


3명 단위로 진료실 앞에서 기다릴 순번을 알려주는데 보호자들까지 같이 있으니 앉을자리가 좀 부족했다.


드디어 내 차례!

결국 30분이 지연된 후 10시 정도에 진료실로 입장했다.


교수님께선 먼저 제출한 CD를 보고 약간의 설명을 해줬다. 근데 자세한 건 검사를 더 해야 한다고 했는데.."검사는 1달은 더 걸릴 겁니다"


그리고 가장 빠른 수술 날짜로 6월 12일을 알려줬다. 오늘 4월 30일인데요?

"기다리는 동안 암이 더 커지거나 심해지면 어떡해요?"


교수님은 지금까지 임상 경험상 2달 정도만에 암이 드라마틱하게 증식해서 문제가 생긴 경우는 없다고 안심시켜 줬다.


나는 지금 상피내암인데, 지체해서 침윤이 될까 봐 겁이 났다..ㄷㄷ 침윤이 되면 그때부터 진짜 유방암 1기 이상이다.


그리고 조직검사 한 부위만 상피내암인거지, 다른 부분에서 침윤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전이는?

교수님은 '괜찮다'고 대답을 해주면서 한마디 하셨다.


교수님: 그럼 오늘 수술할래요?
나: 아 그건 쫌..

교수님이 시크하신 같다. 나와 결이 맞을 듯.


진료 때 요청하면 산부인과 협진, 성형외과 협진도 같이 진료를 의뢰해 준다.


항암을 하기 전에 난자 냉동이나 이런 부분에 대한 고려를 하는 것 같은데, 난 산부인과는 필요 없고 일단 성형외과는 해달라고 했다.


교수님과는 10~15분 정도의 짧은 첫인사를 하고, 내 뒤에도 대기가 길기 때문에 중요한 내용은 코디네이터 방으로 다시 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3주를 넘게 기다렸는데 10분의 진료라니 약간 허탈하기도 했다. 교수님과 다음 만남은 다시 3주 뒤인 5월 23일이다.


그때 수술 전 검사에 대한 총평을 듣게 된다.


Tip. 산정특례 놓치지 말기


상급병원에 왔을 때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은 산정특례 신청이다.


암 환자가 되면 '중증질환 산정특례'가 적용된다. 계속해서 많은 병원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향후 5년 동안 급여 치료의 5%만 본인 부담을 하면 되는 제도다.


진료 이후 암병원 원무과에서 수납을 하면서 산정특례 신청에 대해 문의하면, 동의서에 사인을 하라고 한다. '산정특례'라고만 말하면 바로 다 알아들으니 당당하게 말하자.


진단받은 1차 병원에서 이미 산정특례를 해줬다면 상관없겠지만, 해주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신청한 날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꼭 챙겨야 한다.


산정특례는 계속 상급병원을 다녀야 하는 암 환자에게 너무 좋은 제도다. 15만원 정도 되는 CT 촬영이 2만원이 되는 매직이다.


암 이외에도 희귀 질환, 중증 난치질환, 중증치매,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등도 있는데 병에 따라 본인 부담률이 다르다. 상세 내용은 검색하면 다 나온다.


그동안 직장+가게 운영으로 건강보험료를 적게 낸 것이 아닌데, '내가 도움을 받을 때도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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