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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미 May 21. 2024

이제 암밍아웃의 때가 됐다.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한 독립. 그리고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

갓생 사는 MZ세대의 암 발병률이 사상 최고라고 한다.


영국의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의 ‘설명할 수 없는 밀레니얼 세대들의 암 증가(The unexplained rise of cancer among millennials)’라는 기사에 따르면 “주요 20개국(G20)의 20~34세 암 발병률은 30년 만에 최고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면서 “특히 25~29세의 암발병률은 1990~2019년까지 22%가 늘었다”고 한다.


근데 내 주위엔 아무도 없는데?

친구들 중에 암 최초 경험자인데?

이걸 어떻게 처음 말해야 돼?


나의 경우는 부모님 이외는 크게 마음의 어려움이 없었다.


수술 전에 주변 지인들에게는 다 말해야겠다고 이미 결심하기도 했고, 이게 말 못 할 일은 아니지 않나.


아마 경험자들이 가장 암밍아웃 하기 어려운 대상이 부모님이 아닐까 한다.


일단 내 감정의 업다운이 정리되고, 상급병원 초진이 끝난 뒤 긍정적인 마인드로 전화를 하기로 했다.


벌써 집에서 독립한 지 10년은 지났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기조로 살아왔는데 처음으로 유(有) 소식이 생겼네.


병원에 다녀온 이후, 점심 먹고 전화해야지, 저녁 먹고 전화해야지 하다가 2일이 지났다.

이러다 안 되겠다. 그냥 질러.


최대한 담백하게 말하기로 했다.


엄마! 내가 건강검진을 했는데 암이 발견돼서 다음 달에 수술을 해야 돼.
근데 0기라서 수술 잘하고
치료 잘하면 될 것 같아.
건강검진으로 빨리 발견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엄마가 처음에는 쿨하게 받아들이는 줄 알았더니, 결국엔 옆에서 듣고 있던 아빠까지 오열파티가 이어졌다.

안 우는 건 나뿐인가?



난 솔직히 진짜 괜찮았는데. 역시 부모님 마음은 그게 아니다.


그래도 앞으로의 치료 계획과 나의 요양 계획을 설명하니 다시 이성을 찾으신 듯하다.


난 뭐든 알아서 잘하는 사람이다라는 자신이 있기도 하고, 잘 극복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다만 뭐든 해줄 것이 없을지 고민하는 부모님께는 당부를 드렸다.

부모님이 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가족 중에 환자 여러 명은 안되니 스스로 건강 잘 돌보시길. 그리고 나는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응원과 기도면 됩니다.



사실 쿨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나는 부모로부터 완벽한 독립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체적, 경제적 독립은 진작 이루었지만 정서적 독립을 확인할 계기는 없었는데, 이번 계기로 정서적으로도 부모님에게 의지하는 단계는 지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사실 부모님과 나는 내가 경제적 독립을 이룬 순간부터 서로에게 크게 개입하지 않는 건강한 관계를 이어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 자신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왔고, 누구 때문도 아니다. 부모님도 그렇길 바란다.


올해 부모님은 두 분 다 은퇴를 하셨다.


내가 암에 걸리는 일은 계획에 없던 일이긴 하나, 이건 내 삶의 일부일 뿐이다.


그냥 두 분은 두 분대로 앞으로의 여생을 후회 없이 사시길 바란다.


부모님께서 일찍 가입해 주신 암보험, 실비보험 덕분에 든든합니다!


현 시점 감사한 일들


나는 사업을 하고 있다. 벌써 8년 차 대표다.

다행히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 있고, 도와줄 동료들도 있다.


내가 암 수술, 치료 때문에 자리를 비우더라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 컨디션에 따라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고, 암에 걸렸더라도 끊임없이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다.


도리어 회사에서 수술비를 지원하겠다고 해서 내가 정말 필요할 때 요청하겠다고 사양했다.


창업 파트너는 '내가 회사 그만둔다고 말하는 줄 알았다고, 그것만 아니면 상관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꾸준히 병원에 다니려면 회사에서는 앞으로 많은 배려를 받아야 할 것 같다.


암밍아웃을 하기 전에 화제 전환도 할 겸, 예상 못하고 들으면 놀랄 있으니 일종의 경고문을 준비했는데 효과가 좋았다. 암밍아웃 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린다.


할 말이 있는데, 너무 놀라진 말고 들어.


놀라지 말고 들으라는 말이 너무 '꼬꼬무'스러웠는지, 다들 자세를 고쳐 앉고 마음의 준비를 하더니 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일부는 건강검진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안타까운 얼굴이 되기도 했고, 일부는 '뭐!!?'라고 격한 반응을 보여서 내가 오히려 조용히 하라고 자제시키기도 했다.


듣는 사람들이 전부 충격을 받으니 나라도 담담하게 말을 해야지 싶어 엄마에게 말한 것처럼 담백하게 말했다.


모두들 빨리 발견해서 정말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수술 계획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괜찮을 거라고 완쾌할 것이다, 잘할 수 있다, 이제부터 건강 조심하면 된다, 0기에 발견하다니 천운이다,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 등 응원의 말이 이어졌다.


신기한 게 주변인들이 슬픔과 놀람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응원과 격려를 위주로 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대문자 T 맞춤형으로 힘이 됐다.


진짜 내가 할 수 있는 것 같은 기분. '그래하면 되지'라는 생각에 더욱 힘이 실어졌다.

내가 슬프게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다들 너무 우울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랫동안 만나왔던 비즈니스 관계들에게도 내가 갑자기 잠수를 타면 안 되니 암밍아웃을 했다.

다들 한 마음으로 걱정을 해줘서 나는 또 감동받았다.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책을 선물로 주기도 하고, 수술 계획이 나오면 전화 달라고 하는데.. 비즈니스 그 이상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친한 친구들 단톡방에도 폭탄을 투하했다.

친구들은 '어려운 말 해줘서 고맙다'며 치료비에 보태라 봉투를 줬다. 특히 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사랑한단 말을 들었다ㅋㅋ


주변에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많다니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내가 지금까지 인생은 잘 살아온 것 같다.



암 경험자들은 '암밍아웃'을 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많이 한다고 한다.


환우 커뮤니티를 보니 암밍아웃을 빨리 하지 못해서 후회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암인걸 밝히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멀어진 일, 뜻밖의 오해를 사기도 한다.


암 치료를 하다 보니 감정 기복이 생길 수도 있고, 컨디션이 안 좋아 모임에 못 나가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전까지 같이 술잔 기울이던 사람이 갑자기 이유도 없이 술을 먹지 않겠다고 할 때, 서운함을 느낄 수도 있다.


미리 말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기기 마련이다.


알아야 도와줄 수 있고, 내가 건강 때문에 배려받아야 할 일이 있으면 받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암 환자라는 게 위축된다는 말도 많이 있던데,

나는 솔직히 '왜?'라는 생각이 든다.


암에 걸린 것이 범죄도 아니고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지.

내 스스로가 암 경험이 치부라고 생각할 때 진짜 치부가 되지 않을까.


나는 그저 남들이 잘 모르는 '암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입문한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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