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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밍 Dec 31. 2020

띵작의 시작_1.기묘한 이야기

띵작의 시작

내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것들이 있었는데 앨범재킷, 포스터, 그리고 드라마나 영화가 시작될 때 나오는 오프닝 같은 것들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작품의 첫인상을 결정짓고, 또 극도로 제한된 시간과 공간 내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표현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마치 한 편의 시처럼 함축적이면서도, 또 그자체로 완전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그리고 놀랍지 않게도 대체로 시작이 좋은 작품은 좀처럼 우리를 실망시키는 법도 없다. 흥미로은 표지가 다음 페이지를 넘겨보고 싶게 만드는 것처럼, 좋은 오프닝은 다음 이야기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탁월하다고 생각했던 오프닝 시퀀스들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기묘한이야기

Stranger Things

출처 : https://youtu.be/-RcPZdihrp4


최근에 본 오프닝 시퀀스 중 인상깊었던 작품을 꼽아보자면 <기묘한 이야기>를 들고 싶다. 특별히 화려한 영상도 아니고, 단지 몇 개의 글자들이 어둠 속에서 움직일 뿐인데 여느 오프닝 시퀀스보다 강렬한 인상을 준다. 미스테리한 음악과 어둠 속에서 번득이는 붉은 빛은 당장이라도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을 예고하는 듯 같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오프닝은 넘겨버리는 나도 <기묘한 이야기>의 오프닝만큼은 홀린 듯 바라보곤 했다.




드라마를 닮은 오프닝

이렇게 계속해서 <기묘한 이야기>의 오프닝을 몇번이나 반복해서 보다 보니, 이 오프닝이 정말 잘 만들어졌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오프닝이 드라마의 구조를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기묘한 이야기>는 평범한 마을에서 한 소년이 사라지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소년의 가족과 친구들, 경찰 등 여러사람들이 저마다 소년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 드라마의 특징은 특별한 힘을 가진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한다기보다는 평범한 인물들이 각자 발견한 사소한 실마리들이 격자무늬처럼 서로 만나고 이어지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데 있다.

다시 오프닝으로 돌아가서 살펴보면, 처음에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글자들은 너무 확대되어 있어서, 첫눈에 보기에는 글자라기 보다는 불규칙한 직선과 곡선의 조합에 불과하다. 하지만 점차 줌아웃되면서 우리는 이것들이 알파벳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제각기 불규칙한 패턴과 방향으로 움직이던 글자들은 마치 직소퍼즐처럼 제자리를 찾아가고, 우리는 마침내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기묘한 이야기>의 오프닝에 드라마의 내용을 대입시켜보면, 각각의 글자들은 등장인물, 또는 사건의 실마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서로다른 글자들이 모여 하나의 완성된 문장을 만드는 것은 이 드라마가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아무리 사소한 실마리들이더라도, 그것들이 일단 제자리를 찾기만 한다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어둠 속의 일렁이는 빛

<기묘한 이야기> 오프닝을 보면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불길한 느낌을 주는데, 음악도 그렇지만 알파벳들 너머로 붉게 일렁이는 빛도 이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언뜻 보면 그저 네온사인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글자 뒷편에 일렁이는 붉은 빛을 볼 수 있다.


이것 역시 퍽 현명하게 <기묘한 이야기> 의 내용이 반영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기묘한 이야기>의 핵심적인 세계관은 "뒤집힌 세계"에 있다. "뒤집힌 세계"란 현실세계 반대편에 존재하는 세계로, 드라마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핵심에는 항상 이 "뒤집힌 세계"가 자리하고 있다.

이 "뒤집힌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세계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묘한 이야기>는 가장 심플하면서도 드라마와 가장 가까운 방식으로 오프닝을 제작하였다. STRANGER THINGS, 오로지 단 두개의 단어만을 활용해서 말이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해 더 큰 공포감을 느낀다. 그런 점에서 이 세계 저편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표현하기에는, 그저 어둠 속에 일렁이는 빛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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