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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erine Oct 06. 2023

딸 월급에 관심이 많은 엄마

딸, 취업했으니 월급은 엄마가 관리해 줄게

내가 처음 취업 했을 때, 엄마는 너무나도 행복해했다. 엄마는 사실 요즘 취업이 너무 힘들어서 내가 취업에 일 년 정도 더 걸릴 줄 알았는데 바로 취업을 해준 둘째 딸이 너무나도 자랑스럽다고 했다.


첫 월급을 받고 나는 엄마에게 돈 꽃 박스를 선물로 드렸다. 꽃 집에 가서 엄마가 좋아하는 보라색 장미를 사고 100만 원을 인출해서 돈 꽃 상자를 제작해 엄마에게 선물로 줬다.

엄마는 박스를 열고 너무 좋아했다.


"이거 꽤 많아 보이는데? 얼마니?" 엄마가 기쁜 표정으로 물어봤다.


"나중에 세어 보세요."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엄마는 당장 알려달라는 눈빛으로 내가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전부 100만 원이에요. 취업할 때까지 응원해 주셔서 감사해요."  


나는 엄마가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의 반응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많이 달랐다.


"100만 원이라고? 너 월급이 얼마인지 내가 대충 계산해 봐도 너 월급보다는 한참 못 미치는데...?"


나는 엄마의 말을 듣고 당황했다.

내 월급이 얼마인지 계산을 해 봤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내가 준 금액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대학원을 졸업하기 전 다른 연구실 동기들보다 먼저 취업을 했다. 내 업무 분야는 AI data scientist였는데 그 당시에도 연봉이 다른 분야보다는 높았다.


나는 다른 동기들에 비해서도 비교적 연봉이 높은 도메인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사회 초년생의 초봉 치고는 상당히 높은 연봉 계약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연봉 계약을 하던 당시 엄마는 내 총연봉이 얼마가 되는지, 인센티브 제도는 어떻게 되는지 구체적으로 물어봤었고 나는 "대충 얼마 이상이에요~" 하고 엄마에게 알려 줬었다.


내가 얼마에 연봉 계약을 했는지 들은 엄마는 매우 기뻐했다. 엄마는 자기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그렇게 높은 연봉을 받고 좋은 대기업에 갈 수 있었던 거니 엄마에게 고마워하라고 했다. 나는 대학원 등록금은 물론, 대학원을 다니던 당시 혼자 생활하면서 월세와 생활비를 모두 내가 스스로 벌었다. 하지만 대학교 때까지는 엄마가 월세와 용돈을 가끔 챙겨 줬었으니, 그런 엄마의 도움이 없이 내가 대학원까지 잘 마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당연히 나는 금전적인 부분은 물론 다른 면에서도 엄마에게 고마운 부분이 많았다. 내가 취업 준비를 하면서 힘들다고 하면 엄마는 열심히 하라고 응원을 해줬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고맙다고 했다. 엄마의 도움과 관심 덕분에 내가 취업하게 된 것 같다고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내 첫 취업 선물을 받고 실망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엄마가 더 많은 돈을 기대했던 걸까 하고 의문을 가졌다. 나는 엄마의 다음 말을 듣고 엄마가 실망한 이유를 알아챘다.


"너 첫 월급은 전부 엄마를 줘야 하는 거 아니니?"


나는 엄마 말을 듣고 내 첫 월급을 왜 엄마에게 다 줘야 하냐고 물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내 월급을 전부 줘 버리면 지금 내가 생활하는데 드는 생활비는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당연히 너가 월급을 엄마한테 주면 엄마가 너한테 용돈을 주겠지. 그걸로 생활비를 쓰면 되잖아!"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었다. 내가 번 월급을 엄마한테 전부 맡기라니. 마치 내 월급이 원래부터 엄마의 것이었던 것처럼 엄마는 계속 내게 말했다.


"너가 월급을 버는 게 다 내 덕인데, 너가 그만큼 된 게 다 내 덕분이지 않니? 그리고 너는 재테크도 제대로 못하잖아! 엄마가 재테크를 해서 너 결혼자금도 모아주고 월급 관리도 다 해줄게. 너 필요한 만큼 월세랑 용돈 줄 테니까 그렇게 생활하는 게 낫지."


나는 이런 엄마의 가스라이팅과 비상식 적인 말을 듣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내 월급은 내가 관리할 거고, 재테크도 내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포기하지 않고 나를 계속 회유했다.


"아니야, 잘 생각해 봐. 너 월급 들어오면 전부 써버리고 한 푼도 못 모으면 나중에 결혼은 무슨 돈으로 할 거야? 엄마가 결혼 자금 모아줄 테니까 돈 관리는 엄마한테 맡겨."


나는 싫다고 했다. 결혼 자금을 모으던 재테크를 하던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이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고 했다. 그러자 엄마는 분노하며 내게 소리를 질러댔다.


"너!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너 고마움도 모르고 어떻게 엄마한테 그렇게 배은망덕하게 구니? 내가 돈 때문에 이래? 네가 제대로 돈을 모아본 적도 없고 돈 관리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엄마가 관리해 준다는 거잖아!"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애가 아주 못됐구나, 그럼 엄마가 여태까지 너 키워주고 교육시켜 준 거는 다 고맙지도 않니? "



나르 엄마는 딸이 취업을 하고 경제력이 생기면 여러 핑계를 대면서 딸의 돈을 착취한다. 딸의 연봉이 얼마인지, 딸이 며칠에 월급을 받는지, 인센티브는 언제 얼마나 받는지 등을 집요하게 파악하려고 한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경제력이 주는 힘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딸의 월급을 자신이 전부 가져간 후 딸에게는 용돈을 주면서 통제하려고 한다.


딸이 싫다고 하면 엄마는 분노한다.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고 딸을 때린다. 이런 모습을 보고 딸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나도 월급을 안 맡기겠다고 말한 이후 엄마가 화를 내고 물건을 던지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엄마한테 너무 단호하게 말한 건가?' 하고 자책하기도 했다.


내가 계속 월급을 엄마에게 주지 않자, 엄마는 나에게 매월 어디에 얼마를 썼고, 얼마를 저축하고 있는지 정리해서 엄마한테 확인을 받으라고 했다. 내가 그 말을 듣고 질색하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하니,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너 이제 돈 좀 번다고 나중에 엄마가 늙고 병들면 아주 돈으로 무시하고 엄마를 버리겠구나."

"너 나중에 돈 벌고 엄마가 힘이 없어지면 아주 엄마를 개 무시하겠구나." 나에게 죄책감을 심어주기 위해 나르 엄마는 가스라이팅과 내가 가진 생각을 상대방이 가진 생각처럼 비난하기 스킬을 썼다.


엄마의 이런 말을 듣고 내가 '왜 내가 가지지도 않은 생각을 내가 가진 것처럼 말을 해서 사람을 이상하게 몰아가냐'라고 말하면, 고성과 유리컵이 날아왔다. 엄마의 최애 자녀인 골든차일드에서 새끼 나르시시스트로 진화한 언니는 늘 엄마 편을 들며 엄마와 함께 나를 공격했다.


새끼나르 : "너는 엄마가 불쌍하지도 않아? 돈 좀 번다고 유세 떠니?, 넌 진짜 애가 고마움을 몰라.", "나는 취업하면 엄마한테 내 월급 다 줄 거야. 너는 진짜 니 생각만 한다."  


웃긴 건 백수 박사였던 새끼 나르 언니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내가 취업한 후 취업 이전 보다 더 큰돈을 나한테 자주 빌려 갔는데, 내가 돈을 빌려주면 "네가 엄마보다 사실 초봉으로는 훨씬 많이 버는 거 아냐? 너 진짜 대단한 거 같아." 라며 추켜 세우고는 했다ㅎ.


내가 회사에 다닌 지 2년 차가 되던 어느 날 엄마는 자신과 같이 살자고 했다. 언니가 유학을 끝내고 한국으로 오는데 엄마 언니랑 다 같이 모여서 사는 게 어떻냐고 물었다. 내가 싫다고 거절 하자 엄마는 만약 내가 엄마랑 같이 살지 않으면 가족의 연을 끊으려고 하는 거라고 생각하겠다며 회사에서 일하는 나를 매일 괴롭혔다. 회사에 있을 때도, 퇴근했을 때도 엄마는 매일 카톡을 보내고 전화를 걸어 엄마와 같이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반복해서 말했다.



엄마의 협박에 못 이겨 내가 독립생활을 끝내고 엄마와 같이 살게 되자, 엄마는 내가 생활비를 내야 한다며 나한테 매달 얼마 이상을 달라고 말했다. 당시 내가 벌던 월급의 30%가 훌쩍 넘는 돈이었다. 큰 액수였지만, 그 정도는 내가 혼자 살 때 들던 돈에 비해 조금밖에 비싸지 않다고 생각하며 나는 동의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엄마 언니와 같이 살기로 한 선택은 정말 내게 너무 큰 고통을 안겨줬지만, 엄마 언니와 같이 살게 된 이후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두 사람에게 완전히 정이 떨어져서 결혼 전 두 사람과 연을 끊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내 선택에 후회가 없다.)  



내가 생활비를 보내기로 정한 날이 다가오면, 엄마는 너희 아빠가 생활비를 주지 않던 것처럼 생활비를 밀리지 말라고 했다. 나는 계좌이체 신청을 해놨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 이후로도 매달 망상증 환자처럼 내가 생활비를 매번 밀렸다고 주장했다.

  

"너는 너네 아빠처럼 무슨 약속을 하면 한 번을 안 지켜, 너가 나한테 주기로 한 생활비를 왜 매달 늦게 주는 거야?" 


나는 계좌이체를 해놨기 때문에 늦게 송금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해진 날짜에 생활비를 정확히 송금한 내역을 폰으로, 캡처해서 사진으로, 심지어는 프린트해서 눈앞에 보여줬지만 엄마는 늘 앵무새처럼 말했다.   


"너는 항상 약속을 안 지켜, 너희 아빠랑 똑같아!"   


엄마는 생활비가 입금이 된 날은 나한테 너만 한 딸이 없다고, 너 덕분에 엄마가 딸 키운 보람이 있다고 했다. 어떤 달은 생활비가 입금된 푸시 알림을 보면서 "이번엔 제대로 보냈네" 라며 흡족해하고는, 주말이 되면 "너 나한테 생활비 보냈니?" 라며 눈을 흘기며 말했다. 


내가 며칠 전에 보낸 거 확인하지 않았냐고 하면 엄마는 "아 몰라. 내가 바빠서 입금 내역을 늘 확인을 안 하니까 그냥 네가 대충 보내는지, 몇 번씩 빼먹는지 내가 알게 뭐니?"라고 말하곤 했다.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내가 화를 내면서 그런 의심 좀 그만하라고 하면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너가 그런 의심을 안 받고 싶으면 엄마한테 니 월급을 다 주고 용돈 받아 쓰면 되잖아! 그럼 나한테 달마다 생활비 줄 필요도 없고 너가 용돈 받아 쓰면 늦게 입금할 일도 없고 얼마나 좋니?"


엄마는 내 월급을 가져가는게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게 목적이 아니었더라도 나를 생활비를 빌미로 괴롭히고 싶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엄마가 그동안 나와 언니한테 너희 아빠는 늘 생활비를 늦게 줬어.라고 했던 말을 그때 처음으로 의심했다. 아빠는 제 날짜에 보냈는데, 엄마가 그동안 우리한테 아빠가 한 번도 생활비를 정해진 날짜에 안 줬다고 한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늘 엄마 입장에서의 아빠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아빠가 생활비도 안 줬던 나쁜 사람이라고 믿었는데, 나르 엄마의 말을 이젠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다른 가족들이 서로를 의심하기에 정말 좋은 환경을 꾸준히 만들어간다. 



나르시시스트 엄마가 딸에게 이런 공격을 하는 이유는 딸이 스스로 변명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딸은 엄마에게 내가 '가족과의 약속을 어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소용없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를 설득하는 건 불가능하다. 엄마가 딸을 공격하는 이유는 딸이 자기 자신을 변명하는데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하느라 엄마가 하는 말의 진짜 이유를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꾸준히 괴롭히면 언젠가 내가 지친 나머지 엄마에게 월급을 다 맡길 거라 믿었는지, 엄마는 열심히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나를 비난했다. 그게 안 통하면 엄마는 화가 난다며 물건을 던졌다. 너무 기괴했다. 이런 나르시시스트들의 행동은 먹고 싶은 까까를 안 사준다고 길에 드러누워서 우는 어린아이의 행동과 다를 게 없다.  


나르 엄마는 내 월급을 자기가 관리하고 싶었던 거다.


어림없지.


나는 그 당시 항상 다시 독립할 궁리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가 날 생활비로 괴롭히는 진짜 이유를 알고 난 이후 더 열심히 네이버 부동산에서 매물을 검색했다.


만약 부모님이 취업 후 내 월급을 자신들의 것처럼 여기거나, 자녀가 자신들을 위해 돈을 쓰기를 바라면서 자녀의 경제권을 통제하려고 한다면, 거리를 두는 게 좋다. 내 엄마처럼 부모님이 나르시시스트 라면 반드시 독립을 하거나 거리를 두어야 하고 너무 심한 경우 나처럼 연을 끊어야만 평화를 찾을 수 있다. 너무 슬프지만, 나르시시스트 부모들은 손절만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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