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해서 딸에게 계속 저주를 퍼붓는 나르시시스트 엄마
내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불안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견디지 못했다.
엄마는 나와 언니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 불안이 많았고, 엄마 스스로 자신의 불안감을 낮추려고 노력하는 대신 나와 언니를 통제하려고 했다. 두 딸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통제가 되지 않을 경우 화를 내면서 딸들을 조종하려 했다.
나는 고등학교 전까지만 해도 엄마가 나한테 걱정된다며 하는 말들이 엄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진심 어린 조언이라고 믿었다. 엄마의 걱정이 다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하는 말일 거라고 생각했다.
"너 그렇게 공부를 안 하면 어떡하니."
"너 그렇게 옷을 입으면 너무 짧지 않니."
"너 그렇게 얼굴만 신경 쓰면 어떡하니."
"너 그렇게 관리를 안 하면 어떡하니 여자애가 피부관리는 해야지."
"취업 준비를 잘해야 하는데 친구를 만나도 되니?"
"너 지금 연애를 할 때가 아니지 않니?"
"너 연애를 왜 안 하니 너무 안 하면 노처녀 된다."
등등 정말 내가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나의 모든 것을 엄마는 걱정해 줬다.
나르 엄마의 걱정에는 일관성도 없었다.
어느 날은 이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했다가, 다른 날은 왜 저렇게 했냐고 걱정했다.
내가 평생 살면서 엄마에게 들었던 걱정하는 말들은 사실 엄마가 나를 위하는 말들이 아니었다. 날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고 엄마는 말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엄마가 했던 걱정 대부분은 엄마가 불안하거나 나를 신뢰하지 않아서 했던 말들이었다. 딸에 대한 신뢰와, 내 딸은 뭐든 잘 해낼 거라는 믿음이 전혀 없기 때문에 엄마는 나를 '엄마 입장에서 걱정돼서 하는 말'들로 괴롭혔다.
불안이 없는 사람은 없다. 모든 부모들은 자녀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불안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든다. 게다가 자녀의 일이라면 그것이 학업이던 결혼이던 무엇이든 간에 내가 겪었던 일들과 주변에서 보고 들은 사건들이 모두 생각나면서 더 걱정이 앞선다. 자녀에게 자신의 걱정되는 마음을 표현하는 부모들이 다 나쁜 건 아니다.
모든 부모들은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자녀에게 조언을 하고 잔소리를 하게 된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그 정도가 심하다. 나의 나르 엄마는 본인이 불안하면 선을 마구 넘으며 자기 머리에 떠오는 생각들을 필터링 없이 내게 말했다.
나의 엄마는 절대로 교육을 충분히 못 받았거나, 어린 시절 수준이 낮은 언행을 보이는 부모 밑에서 자라지도 않았을뿐더러 교양과 상식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엄마는 나름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대학에서 석사를 하고, 더 좋은 대학에서 박사를 했다. 커리어 적으로도 굉장히 지위가 높아 여자로서는 대단하다는 평을 받을 정도의 위치까지 승진해서 아직도 승리자의 기쁨에 취해 있다. 내 엄마는 밖에서는 성공한 좋은 사람이지만, 가족에게는 본인의 불안과 분노를 토해내는 나르시시스트였다.
내가 대학생일 때 엄마는 10시만 넘어도 내게 전화를 해서 아직도 밖에 있는 거냐며 걱정했다. 정말 웃긴 건 엄마는 정작 내가 고등학교 때 야자를 하거나 도서관에 가서 새벽에 집에 갈 때는, 늦은 시간이어서 무섭다고 데리러 와달라는 내게 다른 친구들도 다 알아서 집에 오는데 너는 왜 그렇게 유난이냐고 했었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정말 나를 걱정해야 할 때는 오히려 걱정을 안 했다.
엄마는 늘 내게 "너 그렇게 저녁에 밖에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너를 쉬운 여자로 본다", "너 그러다가 성추행 당하기라도 하면 어쩔래?"라는 등의 비상식적인 폭언을 했다.
그런 말은 그만 말하고 나 좀 내버려 두라고, 왜 그렇게 상처되는 말을 하냐고 물어보면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네 엄만데, 이런 말도 못 해? 다 너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잖아!”
이런 말들은 점점 가스라이팅으로 변했다.
“내가 니 엄만데, 이런 말 좀 하는 게 어때서! 왜 걱정시켜서 이런 말을 하게 만들어? 넌 이런 말 듣는 게 좋니?”
나르 엄마 본인은 "내가 너를 그렇게 본다는 게 아니라 세상이 위험하다는 뜻이다", "다 너 잘 되라고 걱정돼서 하는 말 "이라고 주장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무슨 일이든 극도로 불안함을 느끼고 항상 근심 걱정을 한다. 그래서 아이가 자기 생각과 어긋난 행동을 하려고 하면 (나는 어긋난 행동을 한 적이 없어도 그냥 수치스러운 말로 인신공격을 당했다), '그러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하는 망상이 발동하고, 결국 그 망상을 자녀에게 토해내며 너는 그 정도 취급은 받아도 된다는 듯이 평가한다. 딸에게 이렇게 상처를 주는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잠재적 범죄자의 시선으로 딸에게 수치심을 준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나의 나르 엄마는 내가 대학교 때 약속에 나갔다가 늦게 들어올 경우, 본인이 원하는 시간인 10시 이전에 안 들어오면 계속해서 연락을 하고 왜 집에 안 들어가냐고 연락했다. 약속 상대가 남자친구일 경우에는, '남자에 미친 애', '남자에 미쳐서 부모말도 안 듣는 년'이라는 말을 내게 했다.
그런 말을 듣고 내가 미친 듯이 분노해서 어떻게 딸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화를 내면, "너를 걱정하는 엄마에게 대드는 거니? 너는 정말 배은망덕한 애야." 라며 나에게 더 심한 말들을 했다.
드디어 나도 성인이 되고 어엿한 직장인이 된 지 3년 차! 과연 엄마는 내 성인 라이프를 존중해 줬을까?
"내 귀가시간을 통제하려 하지 마세요.", "나는 이제 30살 넘은 직장인이에요."라고 나르 엄마에게 말을 하면, 나르 엄마는
"어디 가서 네가 차에 치여 피 흘리며 죽어도 내가 신경도 안 썼으면 좋겠니?"라고 했다.
딸을 진심으로 아끼는 정상적인 부모라면 절대로 이런 표현을 쓸 수 없다.
"어디 가서 네가 길에서 차에 치여 피가 나서 죽어도 내가 신경도 안 썼으면 좋겠냐"라는 표현은 걱정을 가장한 저주이다.
나의 나르 엄마는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식의 불행을 내심 바라고 있으며,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자식은 죽어 마땅하다는 본인의 생각을 은연중에 드러냈던 것이다.
엄마는 늘 '네가 걱정되어서' , '오죽 네가 걱정되면' , '오죽 네가 엄마를 걱정시켰으면'이라며 내게 걱정을 늘어놓았다.
"어딜 여자애가 늦은 시간에 술을 마셔! 네가 걱정을 시키고 다니고 그러니까 내가 이런 끔찍한 소리까지 하게 되는 거잖아!"
"여자애가 늦은 시간에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겠니? 그런 환경에 너를 노출시키는 이유가 뭐니? 너한테 무슨 일이 생겨서 네가 죽어버려도 엄마가 신경도 쓰지 말라는 거야?"
이런 말들은 딸이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엄마가 한 잔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겨서 네가 죽어버려도 엄마가 신경을 쓰지 말라는 거냐는 말과, 여자애가 어딜 이라는 발언은 나르엄마가 딸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문장이다.
엄마는 오직 딸이 자신의 말을 잘 듣기를 바랐던 거고, 나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기 때문에 본인의 불안으로 인한 망상을 내게 토해냈던 것이다.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며 엄마의 사랑으로 포장된 언어폭력을 당하면서도 나는 내가 사실은 엄마에게 학대를 당하는 것이라는 걸 몰랐다.
나는 엄마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어디 가서 말도 못 했다. 저런 말들이 엄마가 딸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걱정해서 그냥 좀 세게 하는 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이런 말을 한다면, 아니 이 정도로 심하지 않더라도 본인이 너무 불안하다고 자녀에게 걱정된다며 지나치게 간섭하는 부모가 있다면 부모의 걱정 때문에 내가 힘들다고 분명하게 말을 해야 한다. 부모님이 만약 자녀가 밥을 잘 챙겨 먹고 다니는지, 아픈데 병원은 다녀왔는지, 술을 너무 많이 마실까 봐 등의 걱정을 반복해서 한다면 그건 자녀에 대한 신뢰가 없고 부모 스스로 불안하기 때문에 하는 말들이다. 정말 자녀가 잘 되길 원한다면 걱정이 아니라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 "넌 잘할 거야."라고 믿고 응원을 해주는 게 더 도움이 된다.
내 나르 엄마는 내가 엄마에게 엄마가 하는 걱정 때문에 내가 너무 힘들다고 하자, "내가 널 걱정하는 게 싫다고? 너는 고마운 줄도 모르는구나. 너는 정말 나쁜 애야."라고 했었다. 만약 이런 반응을 보이는 부모 곁에 있다면, 반드시 거리를 두어야 한다. 나르시시스트 특성을 가진 부모들은 절대 설득이나 대화로 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