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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erine Sep 29. 2023

아이들은 다 안다. 훈육인지 폭력인지

아팠던 건 기억나는데, 왜 맞았는지가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


엄마가 날 때렸던 수많은 날 들 중  내가 생각해도 내가 말을 너무 안 들었던 날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왜 맞았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성인이 돼서 기억해 보면 맞았던 건 기억나는데, 엄마한테 왜 맞은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맞은 이유가 기억이 안 난다. 물론 일부 기억이 나는 것도 있지만, 내가 버릇없게 굴어서 그랬나? 성적 때문에 그랬었던 거 같아.처럼 대충 기억날 뿐이지 구체적으로 무슨 이유로 맞았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아이들은 다 안다. 훈육을 위한 회초리 인지, 분노를 조절 못한 부모가 가한 폭력인지.


꼭 나르시시스트처럼 분노해서 때려야만 폭력이 아니다. 자녀를 훈육한답시고 때리는 건 그냥 폭력이다. 훈육을 말로 하기엔 부모 스스로 능력이 안되거나 부족하니, 강한 자극으로 대화보다 더 빠르게 자녀가 잘못을 인정하게 하기 위해 그 순간 매를 사용하는 것일 뿐이다.


누구나 본인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말로 전달할 수 있다. 내가 한 말을 상대가 이해 못 하고 내가 원하는 반응이 오지 않는다면, 포기하거나 내 마음을 바꾸어 상대방을 바라보면 된다. 상대에게 물리적 터치를 가하는 것은 '나는 내 의견을 말로 전하거나 내 기분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야'라는 메시지를 주는 행동이다.


자녀를 때리면 자녀는 잘못했다고 말하고, 부모는 자녀에게 뭘 잘못했는지 말해주고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 아이는 몇 달만 지나도 부모에게 맞은 적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기억하지만, 그때 본인이 맞은 이유는 자세히 기억이 안 난다.


아이를 매로 훈육하는 것은, 훈육이 목적이라는 점에서  실패한다.

훈육은 자녀를 올바르게 지도하고 가르쳐 기르는 것을 뜻하는데, 아이를 때려서 무언가를 지도하고 가르치기는커녕 자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득이   있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녀에게 부모에 대한 반항심과 분노를 키워주고 싶다면 매를 통한 훈육이 효과적이지만, 자녀를 올바르게 지도하며 기르는 것이 목적이라면 

폭력을 통한 훈육은 그것이 설령 손바닥을 가볍게 때리는 것이라 하더라도 전혀 효과적이지 않다.

상처받은 아이에게 부모가 때린 것을 '사랑의 매' 로 뒤늦게 포장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사랑의 매’라는 단어는 때린 행위에 대한 부모들의 죄책감을 사랑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옥스포드 사전에 나온 사랑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사랑 :
1. 이성(異性)의 상대에게 성적(性的)으로 이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의 상태. 드물게, 좋아하는 상대를 가리키기도 함. 애정.
2.부모나 스승, 또는 신(神)이나 윗사람이 자식이나 제자, 또는 인간이나 아랫사람을 아끼고 소중히 위하는 마음의 상태. 때로, 자식이나 제자가 부모나 스승을 존경하고 따르는 마음의 상태를 가리키기도 함.


사랑이라는 아름답고 위대한 마음 뒤에 숨어 자녀를 때리는 것을 사랑으로 포장하다니, 그렇게 사용할 수 있다면 그 사랑은 너무나도 가볍고 초라한 사랑이다. 아니면 왜곡된 사랑이거나.


자녀가 말을 안 들어서 가볍게 꿀밤을 때리거나, 잔소리를 하다가 등짝을 때리는 것 정도는 훈육도 매도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나보다 나이 많은 누군가가 내게 같은 행위를 한다고 생각해 보면, 이 글을 읽는 그 누구도 ‘그 행동은 날 위한 사랑에서 비롯된 행위라서 난 그래도 기분이 좋아’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스시시스트의 분노는 폭력적인 행동으로 까지 이어질 수 있다. 폭력은 다른 사람을 때리는 행위는 물론 폭언, 물건을 던지거나 스스로를 자해하는 행위도 포함된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들의 격한 분노 표출이 주변 사람에게 얼마나 공포감을 주고 힘든 감정을 일으키는지 정확히 안다.


알면서 그러는 거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이러한 폭력성을 이용해 결국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황을 끌고 간다.


엄마는 내가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교에 갈 때까지 지인의 집들이에서 얌전히 안 있었다는 이유로, 앞으로는 존댓말을 안 하겠다며 반항하는 게 괘씸하다는 이유로, 본인보다 바이올린에 대해 더 잘 아는 척을 하며 엄마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야자를 빼먹었다는 이유로,  성적표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적표를 가져오면 목표한 점수에 도달하지 않았으니 약속대로 벌을 받으라는 이유로  



" 안 되겠다, 너 오늘 맞자!"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엄청난 호의를 베푸는 것 마냥 대신 맞을 매는 네가 구해오라고 했다.  


"네가 맞을 회초리를 네가 구해와."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내 손바닥에 막대기들을 하나씩 때려보면서 뭐가 안 아플지 궁리하며 회초리 찾기를 해야 했다. 이 기억은 굉장히 마음이 아픈데, 내가 가져가는 모든 약하고 가는 막대기들은 전부 엄마가 퇴짜를 놨기 때문이다. 내가 가져간 모든 막대기를 거부한 엄마는 항상 답정너의 자세로 나한테 선택할 물건들을 제시했다.  효자손, 빗자루, 분리가 되는 플라스틱 식탁 다리, 부직포 걸레 자루 같은 게 내가 고를 수 있는 매였다.   


"효자손이나 빗자루 같은 거 중에서 골라와", "그거 말고 걸레 자루 같은 거나 식탁 다리 빼서 가져와"  


나는 이렇게 말하는 엄마한테 그럴 거면 그냥 애초에 회초리를 정해서 때리라고 했다. 나한테 고르라고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엄마는 항상 나보고 매를 골라 오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엄마가 한 행동은 진짜 기괴했다. 이제 '오늘의 회초리'를 가져오면 여름에는 엉덩이를, 겨울에는 종아리를 맞아야 했다. 나는 회초리 맞는 걸 잘 참는 애가 아니었다.  


이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엄마가 나한테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너는 회초리 맞는 걸 잘 참는 애가 아냐." 


매 맞는 걸 잘 참는 인간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나의 나르 엄마는 자녀를 때리는 행위에 더해, 매 맞는 걸 잘 참고 못 참는 것으로 언니와 나를 비교하며 가스라이팅을 시전 했다.  


"입 밖으로 소리 새어 나오면 한 대씩 늘어난다."


나는 늘 입 밖으로 울음을 터트리거나, 도저히 못 참겠다고 제발 다른 걸로 벌을 받겠다고 울면서 무릎을 꿇고두 손을 싹싹 빌면서 엄마한테 애원했다. 내가 그렇게 계속 애원하면서 맞을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엄마는 항상 피식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너는 정말 애가 반성을 할 줄 몰라. 너희 언니는 위인들 어린 시절처럼 의연하고 입 밖으로 소리도 하나도 안 새어 나오게 잘 참으면서 씩씩하게 맞아. 엄마가 10대를 때리건 30대를 때리건 다 맞고 참아. 근데 너는 애가 참을성도 없고 내가 때리려고 하면 자꾸 도망가려고 하는 걸 보면 큰 인물이 될 애는 아니야. 네가 진짜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그냥 맞았겠지? 근데 너 지금 이렇게 때리지 말라고 비는 것 보면 너는 아직 반성을 덜 했어." 


그러고는 내가 다시 엉덩이던 종아리던 댈 때까지 기다렸다. 내가 맞다가 너무 아파서 일어나거나 피하면, 그 긴 막대기들로 어깨나 머리를 때리며, "그냥 딱 대고 맞아야지 어딜 피하니?"라고 했다. 여름에는 엉덩이, 겨울에는 엉덩이 또는 종아리가 늘 암묵적으로 매를 맞는 부위였다. 교복을 입으면 매 맞은 부위가 드러날 수도 있어서 이렇게 때린 것이다.  


자신이 매를 때렸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서 이렇게 한 것은 아니다. 나르 엄마는 청소년기 자녀 때문에 힘들다는 친척들 앞에서 본인이 어떻게 사랑의 매로 두 딸을 훈육하여 버릇을 고쳐놨는지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와 언니를 때린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숨기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지만 조금밖에 안 때렸어, 아이는 때리면 안 되지~ 하지만 너무 말을 안 들으면 적당한 사랑의 매는 어쩔 수 없는 거 같아 호호"


엄마가 저렇게 말할 때면 진짜 내 깊은 내면에서 엄마를 향한 분노가 피어올랐었다. 엄마는 본인이 화가 나서 주먹을 날리거나, 내가 자기 말에 반박한다고 화가 나서 뺨을 때리거나, 내가 본인이 하라는 것을 안 하겠다고 하면 유리컵이며 유리며 스피커 같이 위험한 물건들을 마구 던졌었다는 사실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나와 언니에게 평소 단단히 으름장을 놨었다.   



나의 나르시시스트 엄마에게 있어서

회초리를 가지고 자녀에게 엎드리라고 한 후 분노에 차 몸의 무게를 싣어서 수십 번 때린 것은 '사랑의 매' 이기 때문에 알려도 되는 것이지만, 분노를 미쳐 조절 못해서 자녀를 때리고 물건을 던져 다쳐 피가 나게 한 것

은 그 누구도 알면 안 되는 것이었다.   


당한 내 입장에서는 둘 다 똑같은 폭력과 학대였다.   


사실 아이를 매로 훈육한다는 발상 자체가 매우 미개 하지만, 2000년 초반 까지도 사회적 분위기상 우리나라에서는 '사랑의 매'가 무슨 자녀를 위한 부모의 마음 아픈 행위 정도로 받아들여졌으니 나만 힘들었다고 주장을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불합리한 분노와 매질은 맞는 사람에게 느껴진다. 훈육을 위해 나를 때린다는 사람이 정말 나의 잘못된 생각을 고치고 나의 고집을 꺾고 옳은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사랑의 매를 드는 것인지, 자신의 화를 주체 못 해서 감정과 분노를 분풀이하며 내 몸을 패는 것인지 말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보통 손바닥을 맞거나 종아리 또는 엉덩이를 너무 심하게 맞으면 핏줄이 터져서 멍이 든다. 그 멍이 좀 심하게 들고 계속 매질이 가해지면 그 살은 부어오르고 결국 딱딱하게 맞은 모양대로 부풀어서 피멍이 된다. 우리 피부가 타박상을 입게 되면 근육까지 상처를 입게 되는데, 이때 회복과정에서 근육 조직이 회복되지 않고 상처 재생조직이 발달했을 경우 이렇게 멍든 곳이 딱딱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멍든 곳에 마치 무언가 있는 것처럼 피부가 딱딱하게 만져지는데, 한의학에서는 이런 증상을 하나의 어혈로 본다. 엄마에게 맞고 나면 나는 늘 항상 맞은 부위가 딱딱하게 부어서 몇 주 동안 의자에 앉을 때 방석을 써야 했다. 겨울에는 딱딱하게 된 종아리를 가리기 위해 검은 레깅스가 필수였다.



난 나를 때리는 엄마를 증오했다. 진심으로 엄마가 싫고 무서웠다. 내가 매를 맞은 후 울면서 방에서 잘 때면, 나르 엄마가 들어와 약을 발라주며 자신이 너무 맘이 아프다며 너도 아프니 나도 아프다를 시전 하다가 나갔다. 엄마가 약을 발라주면 나는 소름이 돋았다. 진심으로 소름이 돋았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몇 번 정도 엄마가 약을 발라주게 내버려 두다가, 어느 날부터  화가 나서 그냥 약은! 내가 바를 테니까 제발 나가라고, 나 좀 그냥 혼자 두라고 했었다. 그러면 엄마는 반성을 아직 덜 했구나... 하고서 방에서 나갔었다.    


물론 엄마가 자기 분을 못 이겨서 내 뺨을 때리거나 머리를 때리거나 물건을 던졌을 때는 절대로 때린 것에 대한 사과가 없었다. 그나마 방에 들어와 자는 나를 깨워 약을 발라주는 것도 초등학교 때까지만 했고, 이후에는 그냥 내가 울든 말든 신경도 안 썼다. 나르 엄마 입장에서는 내가 맞을만해서 때렸기 때문이다.


내가 맞은 다음날 엄마한테 '안녕히 주무셨어요'라고 먼저 인사를  하거나 엄마가 하는 말에 차갑게 대답이라도  경우에는, '어제 맞았다고 싸가지  행동하는걸 보니 너는  집에서  위아래가 없는 '라고 나를 몰아붙였다. 그렇게 아침에 살갑지 않은 내 태도로 인해 다시 한바탕 치르고 나면 이미 부어 있는  눈은  퉁퉁 부었다.  


나를 있는 힘껏 때리던 엄마의 매질과, 때리지 말아 달라고 울면서 비는 나를 조롱하며 웃던 엄마의 표정만 떠올려도 구역질이 나는데,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본인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살갑게 굴지 않는다고   따라다니며 싸가지 없는 애라고 하는 엄마에게 나는 날이 갈수록 정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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