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자신을 질투한다고 믿던 나의 나르시시스트 언니
나르시시스트는 다른 사람들에게 강한 질투심을 느낀다. 가족, 친구, 동료 심지어는 잘 모르는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도 과한 질투심을 느낀다.
질투심으로 친구의 애인을 빼앗거나 동료를 음해하는 등 나르시시스트가 질투심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망치는 이야기는 영화나 소설에서도 볼 수 있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에게는 없으나 자신이 소유하고 싶은 무언가를 지닌 대상에게 상당한 공격성을 느낀다. 그래서 선망과 부러움을 넘어 증오의 마음이 기반된 질투심을 느낀다. 나보다 잘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행복을 파괴하여 불행하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나르시시스트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질투한다고 믿는 경향도 있다. 나르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부러워해 주길 바라는 욕구를 강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의 나르시시스트 언니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들이 자신을 따라 한다고 했다. 반에 어떤 친구가 자기를 질투해서 자신이 입은 모든 옷과 머리를 따라 한다는 거다.
그 당시에는 유행하던 얼짱의 옷을 따라 입던 학생들이 많았는데 (얼짱이라는 게 옛날에는 있었어요... 제 나이가 실감되는군요),
내 눈에는 그냥 나르언니나 나르언니의 친구들이나 모두 얼짱을 따라 하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내가 언니가 잘 못 생각하는 것 같고, 아무도 언니를 질투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르언니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질투한다고 생각했다.
나르언니는 유학을 가서도 자신과 교수님이 친한걸 다른 연구실 동료들이 질투한다고 말했다. 자기가 교수님 말을 더 잘 알아듣고 유능하기 때문에 모두가 자신을 왕따 시킨다고 말하곤 했다. 놀랍게도 언니말에 따르면 유학을 떠난 해외에서도 언니를 질투하고 패션을 따라 하는 손민수 같은 친구가 있었다.
나르 언니는 나와 길을 걷다가도, 나에게 방금 저 여자가 너 쳐다봤어 너랑 내가 이쁘게 생겨서 질투하나 봐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나는 늘 이렇게 말했다.
"아니, 뭔 소리야. 그걸 어떻게 알아. 다른 사람들은 언니나 나한테 생각보다 관심 없어."
내가 이렇게 말하면 나르시시스트 언니는 아니라고, 너가 몰라서 그렇지 너랑 나랑 걸어 다니면 사람들이 쳐다보는 거 모르냐고 했다. 나에게 피해를 주는 말이 아니니 나는 그냥 넘겼었다. 언니가 나르시시스트 인걸 모르던 당시 나는 그냥 '언니가 자뻑이 심하네...' 이 정도로 생각하고 말았다.
가족 모임 식사가 있던 날, 그날도 언니는 다른 친척들 앞에서 우리 옆 테이블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기가 머리를 예쁘게 해서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서 자신을 자꾸 쳐다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다던 언니.
그 말을 듣던 삼촌이 한마디 했다.
"야, 뭔 소리 하는 거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먹어. 그리고 쳐다봐도 네 동생이나 다른 사람을 쳐다봤겠지 너를 보겠냐."
언니는 그 말을 듣자마자 테이블을 박차고 나가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 버렸다. 엄마와 나는 다른 친척들과 당황하고 어이없어하며 밥을 다 먹고 헤어졌다. 집에 오니 언니는 엄마와 내게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한 삼촌을 비난하지도 않고, 자신을 가족들 앞에서 비난하는데 나와 엄마가 동조했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언니는 나에게 삼촌이 자기를 그렇게 무시하는데 어떻게 자기 편도 안 들어주고 그렇게 가만히 있을 수 있냐고 했다. 너가 나보다 더 예쁘게 생겼다는 말을 듣고 기분 좋았겠다고 (내 삼촌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나르 언니는 사람들이 자기가 예뻐서 쳐다본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나 보다ㅋㅋㅋ) 비아냥 거리며 너 같은 동생을 둔 게 쪽팔리고 화난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나르 언니가 날 계속 따라다니며 자기에게 사과를 하라고 하길래 나는 내가 무슨 사과를 하냐고 했다. 사과가 받고 싶으면 삼촌에게 말하라고 했다.
얼굴에 집착하던 언니는 그 이후로도 이미 성형을 많이 한 얼굴에 또 시술을 받아야겠다며 나의 나르엄마를 살살 꼬셔서 눈밑 지방 재배치 수술비를 받아내 기어이 시술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심성을 제대로 못 써서 그런지, 언니가 받았던 시술은 효과가 바로 없어졌다. 눈밑의 지방이 다시 생긴 것이다. 나르언니는 분노하며 다시 재수술을 받았다. 물론 나르 엄마의 돈으로.
외적으로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나르시시스트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남들에게 부러움을 일으킬 만한 선택을 많이 한다. 예를 들어, 돈도 없으면서 무리를 해서 고가의 물건을 구입하거나 많은 비용이 드는 해외여행을 가기도 한다. 나르엄마에게 적지 않은 용돈을 받고도 다 써버리고는 늘 돈이 부족해 나에게 돈을 빌려가서 온갖 명품 백과 주얼리를 사던 나르 언니가 생각난다.
SNS의 발달로 인해, 나르시시스트 들은 자신들의 이런 욕구를 맘껏 펼치기 너무 좋아졌다. 물론 누구나 과시욕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얼마나 잘 사는지 보여주고 싶은 심리가 있다. 그러한 욕구와 과시욕이 모두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나도 인스타그램에 새로 뽑은 차를 자랑하거나, 명품 가방이 더 잘 보이게 나온 사진을 올리려고 노력하던 시절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잘 사는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나르시시즘과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글을 읽다 보니, 외적으로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행동인지 알게 되었다.
나의 나르시시스트 언니는 이런 나르시시스트를 위한 좋은 환경인 인스타그램을 정말 잘 활용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지금은 연을 끊고 모든 sns계정을 차단해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지는 않지만, 예전부터 나르 언니는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본인의 현재 상황 보다 더 과장되게, 더 돈이 많고 여유 있게 잘 사는 것처럼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올리곤 했다.
Dr. 누구누구라고 써 놓은 나르 언니의 인스타그램에는, 우리 집이 너무 부유해서 자신이 유학을 오래 한 것처럼 쓴 글이 많았다. 나르 언니의 피드에는 자신이 골프와 그림 모으는 취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올린 사진과 글로 도배되어 있다.
내가 취업한 후 골프 레슨을 받고 라운딩을 다녀오고 나면, 언니는 나에게 왜 레슨 받는 사진과 라운딩 사진을 인스타에 올리지 않냐며 나보고 바보 같다고 했었다. ㅋㅋㅋ
“돈을 쓰고 왜 자랑을 안 해?”
나의 나르 언니의 이 말은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봐도, 소비활동에 대한 그녀의 낮은 의식 수준을 짐작할 수 있는 말이다.
우리나라에 박사출신이 많아도 너무 많은 이 시기에 자신 스스로를 닥터 누구누구라고 부르는 것부터 웃겨 죽겠는데, 나르 언니는 유학을 다녀온 이후에도 자신이 얼마나 비싼 명품을 들고 고급스러운 곳에 가서 식사를 하고 즐기는지 끊임없이 게시물을 올리곤 했다.
엄마랑 이혼 한 아빠를 나르시시스트 엄마와 같이 욕해대면서도, 인스타그램에는 비싼 호텔 로비에서 명품 가방을 들고 찍은 사진과 비싼 식사 사진을 올리고는
<아빠와 엄마는 늘 내가 바른 사람으로 자라라고 인도해 줬다, 엄마와 아빠 덕분에 나는 풍요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잘 클 수 있었다. 늘 부모님께 받는 것만 많은 철없는 딸ㅠ>와 같은 망상글을 올리곤 했다.
언니는 그렇게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하기 위해 엄마에게 받은 용돈을 펑펑 다 쓰고는, 학교에 제출해야 할 서류를 발급받을 돈이 없다며 나에게 돈을 빌려가 곤 했다.
남자친구와 다퉜다며 일주일 내내 매일 울며 연락해 나와 엄마를 괴롭히던 당시 언니의 피드엔 싸웠다는 남자 친구와 한 달 전 다녀온 여행 사진과 여행에서 받았던 선물 사진이 도배되어 있었다.
내가 언니에게 남자 친구하고 싸웠다면서 왜 그런 사진과 게시물을 인스타에 올리냐고 물어보면 언니는 신경질을 내며 내 인스타그램에 신경 꺼!라고 소리 질렀다.
나르 언니가 왜 늘 모든 남자 친구들과 사귄 지 3개월 이후에는 헤어졌었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남자친구여도, 내 여자 친구가 나랑 싸우고 냉전 하는 기간 동안 행복하고 사랑받는 연애 중인 것처럼 인스타 게시물을 올리면 소름이 돋아서 그 여자 친구 하고는 계속 사귀기 무서울 것 같다.
나르시시스트 언니의 인스타그램은 가까운 가족들이 보면 정말 경악할 정도로 포장된, 과장된 인생 모음집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겠지...
그녀는 앞으로도 평생 최선을 다해 거짓 인생을 사느라 삶이 많이 피곤할 것 같다. 인스타 그램에 자신의 일상을 포장하기 위해 쓰는 에너지를, 매일매일 크고 작은 행복을 찾으며 보내는데 쓴다면 사는 게 재미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