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걸 남자친구한테 말했다
지금은 내 남편인 구 남자친구와 사귄 지 한 달이 되던 시점 나는 남편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던 우리는 처음 사귀던 당시 서로 알고 지낸 지는 6개월 정도였다.
남편과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 집의 두 나르시시스트인 엄마와 언니는 내가 자신들과 크리스마스 때 시간을 같이 보내지 않는다고 분노했다.
자세한 스토리는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https://brunch.co.kr/@tangerine/30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엄마와 언니가 내가 자신들과 시간을 보내지 않고 크리스마스를 껴서 남자친구와 여행을 간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하고 나를 괴롭혔다는 걸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냥 엄마와 언니가 내가 사귄 지 얼마 안 된 남자친구와 여행을 가는 걸 걱정했는데, 엄마 언니가 원래 말을 거칠게 하기 때문에 그 둘의 말을 내가 듣기에 많이 힘들다는 정도로 이야기를 했었다.
남편과 여행을 하던 당시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그러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와 엄마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와 언니에 대해 어디까지 사실대로 말해줘야 할지 나는 고민했다. 그 당시에는 엄마와 언니가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잘 몰랐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엄마와 언니가 보통 사람들 보다 말을 세게 하고 평소에도 별 것 아닌 것에 쉽게 화를 낸다고 말했었다.
남자친구에게 엄마나 언니가 여행 오기 전 나에게 폭언을 하고 힘들게 했다는 것은 말할 수 없었다. 남자친구는 엄마 언니를 좀 유난스럽고 내가 잘못될까 봐 심하게 걱정하는 사람들 정도로 생각했었다.
여행을 다녀온 이후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귀가 시간이 10시를 넘어가기만 하면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나에게 전화를 하고 카톡을 하며 언제쯤 집에 올 거냐고 화를 냈다.
엄마는 내가 데이트를 하러 간다고 말만 해도 화를 냈다. 언제는 빨리 연애 좀 하라고 하더니, 정작 남자 친구가 생겨서 데이트를 한다고 하면 엄마는 늘 화를 냈다.
나를 자신과 주말에 저녁을 같이 먹지 않는 나쁜 딸이라고 욕하고 내가 10시까지 들어오지 않으면 분노하는 엄마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남자 친구에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사귀던 당시 남편은 엄마에게 온 카톡과 부재중 전화를 보고 일그러지는 내 표정만으로 나와 엄마의 사이를 짐작했다.
나의 나르 엄마가 10시 전에 들어오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남편은 사귀던 당시 나에게 10시 전에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물어본 적도 없다.
왜냐면 우리 둘 다 성인이었기 때문이다.
성인이면 집에 들어갈 시간은 알아서 결정할 일이고 그걸 통제하려고 하는 내 엄마가 이상하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지만, 11시가 넘어 집에 들어가거나, 연락을 받지 않아서 죄책감을 느끼고 엄마 언니가 또 난리를 칠까 봐 걱정된다고 말하면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근데 자기가 걱정을 하던 안 하던 전화를 받건 안 받건 자기 엄마 언니는 늘 뭐라고 하고 난리 치시잖아."
아! 남편이 한 말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엄마와 언니가 나르시시스트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때부터 남편은 알았던 것이다. 내 엄마 언니는 노답이라는 것을.
엄마가 나에게 집에 오라고 재촉하는 카톡을 보내고, 영화를 본다고 분명 말했는데도 계속 전화를 해서 몇 개의 부재중을 찍어놓는 것 때문에 데이트를 하는 중간중간 내가 핸드폰을 보고 인상을 찌푸릴 때마다 남편은 엄마 때문에 내가 불편해하는 것을 알아챘다.
남편과 사귄 지 두 달 정도 되었을 때 엄마와 언니가 나에게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는 사실을 말했다. 집에 와서 통화를 하며 엄마와 또 한바탕 했다는 말을 전하면 남편은 내가 힘들 것 같다고 공감해 줬다.
엄마나 언니가 나에게 상처되는 말을 한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엄마 언니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남편이 나와 같이 엄마 언니를 비난하거나, 나를 과하게 걱정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그 당시 그냥 내 이야기를 다 듣고는, 말없이 안아주거나 내가 많이 힘들겠다고 말했다. 그게 다였다.
남편은 나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지도 않았다. 그냥 나를 조용히 걱정해 줬다.
남편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감정기복이 크지 않다. 내 기준에서는 기분 나쁘거나 짜증 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자기가 생각하기에 감당 가능한 정도라면 남편은 별로 불만이나 불평이 없다. 나는 늘 이러면 어떨지 저러면 어떨지 시나리오를 짜면서 혼자 걱정도 많이 하는 편인데, 남편은 별로 그런 게 없다.
자신들의 감정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나머지 가까이 있는 만만한 상대에게 (주로 가족들) 자신의 불안, 짜증, 슬픔, 걱정, 분노 등등을 내키는 대로 토해내야 하는 나르시시스트 엄마 언니와 같이 살다가, 남편처럼 자신의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람과 사귀다 보니, 나도 점점 내 감정 기복을 다룰 줄 알게 되었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과 건강한 연애를 하다 보니 내 인생에서 제일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이 누구인지 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르시시스트 엄마 언니가 나에게 끊임없이 주입시키려고 하던 죄책감을 덜어내고 나니, 이후 두 사람과의 거리 두기는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남편은 내가 엄마 언니와 손절하는 모든 과정 동안 나를 이해해 주고 응원해 줬다. 내 연애 상대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낀다면, 내가 나르시시스트 가족을 뒀다는 사실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와 내 남편의 상황이 반대였어도 나 또한 남편과 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내가 엄마 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늘 울면서 전화를 해서 미안하다고 해도 남편은 늘 괜찮다고 말했다. 내가 그런 이야기를 자기에게 말하지 누구에게 말할 수 있겠냐고 하며 속상한 이야기들은 다 자기가 들어주겠다고 말하는 남편을 보면서 나는 인생 처음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모든 걸 털어놓고 이야기해도 괜찮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남편이 내 옆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나르시시스트 엄마와 언니가 하는 가스라이팅에 더 이상 휘말리지 않게 되었다.
나는 늘 엄마나 언니가 나에게 하는 비난들에 변명하기 바빴다. 두 사람이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시기에도, 나는 당시 남자 친구이었던 남편 덕분에 나르 엄마 언니가 하는 개소리들을 듣고 나를 변호하기보다는, 둘이 하는 말들을 그냥 무시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 언니가 내가 데이트를 하고 집에 들어왔을 때 나에게 집에 늦게 들어왔다고 소리를 지르고 비난하며 난리를 치면 나는 "11시가 뭐가 늦어요! 그만 좀 해요"라고 말하지 않고 "아 소리 지르지 마요. 저 남자 친구랑 통화해야 하니까 조용히 좀 해주세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갔다.
나는 엄마 언니가 나르시시스트라는 사실을 말한 이후 손절을 하기까지 나를 위로해 주고 응원해 주는 남편의 모습을 통해 남편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내 상처와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진심으로 공감하고 위로해 주는 남편 덕분에 나는 내가 평생 진정으로 원하던 관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래. 이게 내가 원하던 가족이야.
그래서 나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나르시시스트 가족과 손절하고 내가 선택한 가족을 만들기로 했다.
내가 엄마 언니가 막말을 하고 물건을 던져서 속상하다고 말하면 남편은 빨리 집을 알아보고 다시 혼자 살 계획을 세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남편과 결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후에 남편은 자기 집에 와 있으라고 했다. 내가 엄마 언니와 같이 지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그 당시 남자 친구이었던 남편이 그 누구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나와 사귀던 당시 내가 엄마 언니에 대해 뭐라고 말을 해도 나를 비난하거나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왜냐면 내가 잘못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가족에 대한 나쁜 점을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면 안 된다고 세뇌당했던 나는 남편에게 엄마 언니가 나쁘다고 말하는 게 죄책감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 남편은 별 희한한 소리를 다 듣겠다고 말했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서로 상처를 주면 안 되는 거고, 상처를 받았으면 당연히 욕할 수 있는 거 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남편을 보면서 나는 내가 가스라이팅을 심하게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예전엔 가족이라서 그래도 엄마 언니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었지만, 두 사람이 나르시시스트라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 둘은 평생 저 모양일 것이라고 인정하게 되었다.
내가 엄마 언니와 손절하겠다고 말했을 때 엄마는 가족을 버리는 거냐고 소리 질렀다.
가 족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만약 나르시시스트 가족과 정서적, 물리적 거리 두기가 어렵다면 내 남편이 나에게 해줬던 말을 떠올리는 건 어떨까.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대화하거나 이해시키려고 하지 마. 그냥 엄청나게 큰 벌레라고 생각해 봐.”
글을 발행하고 다시 읽어보니 세상의 벌레들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벌레보다 못한 게 나르시시스트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