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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erine Apr 03. 2024

내 남친은 남의 눈치를 안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눈치를 엄청 보고 있었구나?


가끔 영화나 예능을 보다 보면 개막장 사연 중에 자녀가 데이트를 하는데 같이 데이트를 하는 엄마들을 본 적이 있을 수 있다. 나의 나르 엄마는 그런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내가 데이트를 할 때마다 집요하게 연락을 해서 방해를 일삼았다.


대학 때부터 자취를 했던 나는 9년 동안 엄마와 떨어져 살았다. 하지만 29살이 되었을 때, 엄마의 협박에 못 이겨 결국 합가를 하게 되었다. "독립해서 잘 살던 탱저린이 왜 그랬을까?"라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글을 참고하길.


내가 데이트를 하러 집을 나선 순간부터 돌아올 때까지, 엄마는 끊임없이 문자를 보냈다. "어디니?", "영화 본다고 했지?", "영화 몇 시에 끝나니?", "영화 보고 바로 와라.", "밥은 먹고 올 거니?", "걔는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없니?", "너 몇 시에 오니?", "10시에 출발한다며. 전화는 왜 자꾸 안 받아. 이 문자 보면 바로 연락해라.", "너 미쳤어? 엄마 전화를 끊어?", "11시인데 어디서 뭘 하는 거야?", "남자에 미친년. 엄마보다 그 애가 중요하니?", "너 네가 길에서 죽어버려도 엄마가 신경 안 썼으면 좋겠어?", "너 왜 전화를 안 받아."



이런 식의 연락을 계속 받다 보면, 데이트 내내 엄마와 시작해서 엄마와 함께 영화를 보고, 결국 엄마와 함께 귀가하는 것 같은 느낌에 속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이제 더 이상 남친에게 엄마의 존재를 숨길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남친에게, 엄마와 언니가 좀 이상한 사람이라는 걸 넌지시 말했다. 그의 반응은 이랬다.


"알고 있었어. 어머니랑 언니가 자기한테 했다는 말들을 들어보면 걱정이 지나치시구나 싶더라고."

"응 좀 귀가 시간에 예민해."

"같이 살면서 그렇게 된 거야? 아니면 원래 그러셨어?"

"나 어릴 때부터 원래 그랬어. 엄마랑 언니는 내가 잘못될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래."   

"그래?"

"응. 너무 불편하고 싫은데. 나 걱정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듣고 넘겨야지 뭐."

"근데 이상하다."

"뭐가?"

"자기가 걱정되면, 자기한테 늦게 온다고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를게 아니라 대화를 해야지. 걱정되는데 왜 그 상대를 더 불편하게 만들어? 이상하잖아."


남자 친구는 나와 사귀는 내내 이런 말을 많이 해줬다.


예전의 남자친구들은 나와 함께 엄마와 언니를 욕해주거나, 그들이 나를 너무 사랑해서 억압하려는 거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너무 속상해하니, 깊이 생각하지 말라고 했고, 가족들은 원래 딸들에게 관심이 많은 거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 남친은 다르게, 아주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말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아, 걱정된다고 화를 내는 사람들... 뭔가 이상한 거야!


엄마와 언니가 나르시시스트라는 걸 알게 된 건 결혼 준비를 하면서였다. 하지만 당시 남친과 사귀던 중 나는 이미 그들의 가스라이팅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엄마와 언니가 나에게 했던 힘든 말들과 폭력적인 행동들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는 늘 차분하게 말했다.


"엄마랑 언니를 싫어하는 게 왜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문제야? 가족이어도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지."


"일단, 어머니나 언니가 너는 예민한 애야, 너는 이런저런 성향이야 라고 단정 지어서 말하는 거가 나는 좀 이해가 안 가네."


"나 스스로도 내일이 되면 나에 대해 몰랐던 모습을 알게 되는데, 어떻게 남에 대해서 그렇게 단정 지어?"


그래서 나는 결혼한 후 1년이 넘도록 남편이 다른 사람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할 말을 다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번은 침대에 누워 그에게 물어봤다. "오빠, 나랑 사귈 때 엄마나 언니에 대해 객관적으로 말하면 내가 기분 나쁠 수도 있을 텐데, 오빠는 어떻게 내 눈치도 안 보고 객관적으로 대답할 수 있었어?"


남편이 놀라며 대답했다. "내가 눈치를 안 봤다고? 엄청나게 눈치 봤어!"


"내 눈치를 봤다고? 나는 진짜 몰랐어!"

"당연하지. 아무리 들어도 자기 엄마랑 언니가 이상한데. 어떻게 말해야 자기 기분 상하지 않게 말할지 고민 엄청했어!"


남편은 당시, 엄마와 언니 때문에 힘들어하는 나에게 대답할 때마다 내 반응을 살피며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비판의 강도를 계산했다고 했다. 어떤 뉘앙스로 말할지, 어떤 단어를 쓸지까지 고민했다고 말하는 그의 이야기에 나는 놀랐다.



"오빠가 내 이야기 듣고 얼마 안 있다가 대답하길래 나는 ‘아, 이 사람은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애인 기분 상하게 할까, 하고 눈치도 안 보는구나!’ 라고 생각했지!"


"뭔 소리야, 나는 결혼한 지금도 자기 기분 상할까 봐 엄청 살피고 긴장해!"


그랬구나.


고마워 여보. 나도 긴장 좀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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