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기술

관계의 기술 - 함께 자라나는 법

by 김여진


생존 기술


20대를 납작이 요약하자면 ‘애인과 애인’, ‘알바와 알바’ 키워드로 거의 설명 가능하다. 나약한 계약과 시간 단위로 쪼개져 분리되는 신분, 위치, 상태 값 등이 놀라우리만치 닮았다. 해당 시절을 살며 하나하나 기억하기도 힘든 온갖 변칙적 상황들의 케이스스터디도 왕창 진행했다. 인식하기 전 이미 체득되는 류의 기술을 담뿍 배웠다. 결코 싫지는 않았다. 고생스러웠지만.


시곗바늘이 정각을 넘을 때마다 내 몫의 작은 돈이 누적되었다. 가끔 알바를 쓰기 부담될 정도로 어려운 점주는 한 푼이라도 아끼고자 시곗바늘이 경계를 넘기 전 짐짓 선심 쓰듯 조기 퇴근을 종용하기도 했다. 그건 괜찮았다. 어차피 알바는 언제나 하는 일이라서. 진짜 아쉬운 건 이사나 폐업 따위로 일을 관두어야 할 때였다. 알바를 핑계로 한창 온갖 사람들을 관찰하여 머릿속에 일종의 도감을 만들던 때였다. 어떤 가게에서는 매니저가, 어떤 가게에서는 동료 알바생이, 어떤 가게에서는 그 동네 주 손님 층의 캐릭터가 재미있었다. 정해진 시간 동안 두 팔과 다리는 모두 그 장소의 것이니 유일하게 자유로운 눈 두 개를 또록또록 굴리는 게 낙이었다. 온갖 기이한 각도로 고개를 꺾어 봐도 시선 끝엔 언제나 어떤 사람이든 있어 놀라고 또 그들의 형태에 따라 달리 비치는 내 모습을 보며 한 번씩 더 놀라곤 했다.


얼핏 보든 깊이 보든 절대 열렬한 아이는 아니었다. 멈춰 서고 싶진 않았을 뿐이다. 급히 자라나는 몸이 20살 언저리에 멈추더라도 정신엔, 마음엔 계속 새로운 물살을 가져다 대고 싶었다. 그래서 눈을 항시 바삐 놀렸다. 애인은 헤어지는 순간 절연해야 했다. 알바도 하루 약속한 시간을 가져다 태우면 금세 금세 끝났다. 오직 태어나며 주어진 내 시간만 온전히 내 거였다. 그렇게 하루씩을 벌어 애인과 애인 사이에 웅크리고 잠깐씩 쉬었다. 알바와 알바 사이에서 실시간으로 자라는 중인 생존 기술을 과시했다.


누릴 수 있는 보살핌을 짧게 타고났기 때문에 기억을 거슬러 더 어린 날을 떠올릴수록 생존 기술이 더 더 절실한 모양새로 내가 발견된다. 편견 없이 뭐든 꿀떡꿀떡 배운 그 애에게 지금까지 고맙다. 간혹 성실함이 지치는 순간에마저 지치지 않고 똘끼를 들고나와 스스로 멱 잡고 끌어가던 악바리. 걘 운전면허를 좀 늦게 땄다. 학원은 안 갔고, 당시 만나던 애인 환에게 야매 강의를 들었다. 그 방법으론 돈을 거의 열 배 아낄 수 있었다. 필기 통과, 기능 통과, 이제 도로주행만 통과하면 되는데…. 그만 환과 헤어져 버렸다. 애인과 알바는 그렇게도 닮았다. 타임 오버의 시점을 내가 정할 수 없다. 위에 어떻게 썼던가? 애인은 ‘헤어지는 순간 절연해야 한다’ 고? 맞다. 나도 그렇게 살았다. 그날 이전까지는.


망설이지 않고 환의 번호를 눌러 마치 처음 운전을 가르칠 때 환이 그랬듯 용건만 빠르게 말했다.


“오빠. 도로주행 때문에 학원을 등록할 순 없잖아. 마무리만 하자. 마무리만.”


뻘쭘함? 없었다. 민망함? 견딜만했다. 반가움? 적당했다. 최종 합격 후 기분, 그거야말로 끝내줬다.




우리는 타인의 곁을 빌려 성장한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과정에서만 배우는 것들이 있다.

상처와 유머, 결핍과 회복이 뒤섞여 나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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