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이 대신 나이테를 세고

관계의 기술 - 함께 자라나는 법

by 김여진


우리는 나이 대신 나이테를 세고


거의 모든 사람이 거진 온 생애에 걸쳐 끊임없는 진로 고민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더 일찍 알았다면 아마 경험하지 못했을 찬란한 삶의 지점이 내게 많다. 예술을 전공한 탓에 대학 졸업 후에도 뾰족이 해결되지 않는 직업이나 고정수입에 관한 징한 문제를 날 포함하여 일부 소수들만의 고민으로 여겼다. 그 덕에 여기저기를 다니며 이것저것을 하면서 착실히 헤매는 나날 속에 ‘숲-생태 체험 강사 과정’ 교육 수료도 있었다. 28살, 수개월의 무더운 여름을 건너며 매일 꽉 채워 산과 들에 나가선 고개 숙여 지표면을, 나무 꼭대기와 하늘을 바라보곤 하던 나날은 해당 찬란 리스트에 반드시 포함된다.


숲 생태체험 강사 과정에서 만난 엄마, 언니, 이모, 고모들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한다. 아마도 엇비슷한 생각의 과정 끝에 서로 흡사한 진로 고민 해결을 기대하며 모인 여자들이었다. 최소 젊은이거나 최대로 늙어 봐야 엄마뻘이었으며 ‘이젠 정말로 일할 수 없어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건강하고 눈이 맑았다. 그리고 스스로의 총명함으로 액수와 상관없이 돈을 직접 벌고자 하는 이들이었다.


결코 어리지는 않지만 젊거나 덜 젊거나 혹은 젊지 않은 십수 명의 여성들은 여름내 등교하듯 산과 들에 모여 정해진 시간 동안 함께 학습하다 도시락을 까먹고 질문하고 땀을 닦는 내내 쉬지 않고 수다를 떨었다. 기본 체온 36.5도의 존재들에겐 가혹한 여름이지만 우리만 뺀 대부분의 어마 무시한 생명들에게는 가장 쾌적한 번영의 무대가 되었다. 우리가 배울 내용 전반은


말할 줄 모르는 식물이 몇 해나 살았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길가의 곤충을 ‘벌레’ 라 부르는 일의 편협을 가르쳐 주었다(벌레는 곤충의 다른 말이 아니라, 작고 보잘것없는 미물 전반을 낮잡아 부르는 멸칭이다).

털이 부숭한 포유동물들의 둥지를 일컬어 ‘탱이’ 라 부른다 일러주었다.

밤과 마로니에 열매를 나란히 두고 어느 쪽이 밤인지 단번에 알아맞힐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갑자기 쓰러진 사람에게 필요한 심폐소생술 순서와 조난 시 기억하면 유용할 비상 매듭법도 몇십 종류나 설명해 주었다.


또한 제법 넉넉한 나랏돈으로 고용된 다양한 선생님들도 우릴 찾아왔다. 동물농장에 나오곤 하던 유명한 동물 박사 아저씨, 국가기관마다 절찬 강의하고 다니는 생물 자연 전문가 아저씨, 사뭇 진지한 생태학 개론을 펼치는 교수 아저씨까지 어디 내놔도 거드름깨나 피울법한 중년의 교육자를 며칠씩 바꿔가며 만났다. 나 빼고 대체로 남편과 아이가 있는 엄마 언니 이모 고모들은 꼭 심심할 때마다 남친을 갈아치우는 여고생이라도 된 냥 절대 기죽지 않고 아저씨들을 놀려먹거나 순수한 학구열을 쨍하게 쏘며 깔 깔 웃어재끼곤 했다.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면 흡사 암탉이 가득한 닭장 같았다. 지독한 닭똥 냄새 대신 저마다 선호하는 다채로운 향기가 한꺼번에 풍긴다는 점 빼고 거의 그랬다. 법석스럽고 포근했다.


실습에 나간 학우들은 정말 암탉이라도 된 것처럼 두툼한 애벌레를 맨손으로 쑥쑥 잡아올리곤 했다. 거의 알 품는 암탉만큼 앙칼진 이모나 샘이 많은 고모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들 이야길 시작하면 누가 됐든 눈에서 사랑을 뚝뚝 흘리며 자애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럴 때 여자들은 나이, 신분에 전혀 관계없이 그저 같은 경험을 공유한다는 사실만으로 함께 자란 자매만큼 가깝게 보였다. 분명 나도 그녀들과 같은 고민을 안고 한 교실에 나란히 앉는 급우였다. 하지만 어떤 때 이 이모는 내 머리칼을 쓰다듬고 어깨를 감싸주었다. 저 고모는 꼭 제 새끼도 아닌 내 몫의 간식까지 항상 두 배씩 챙겨 가져다주었다. 마치 병아리 체험 시간 같았다. 학우들이 친구의 얼굴을 하고 전해주는 보호자의 마음을 나는 양껏 받아먹었다.


그녀들이 어려운 적이 없었다. 그녀들 또한 내게 그랬길 바란다. 옷 속으로 쑥쑥 들어오는 손이나 갑자기 불쑥 가까이서 응시하는 눈길 모두 웃으며 받았으니 그러리라 믿는다. 우린 같은 가르침을 마음에 담고 공평히 자격증 하나씩을 부여받았다. 과정이 끝난 다음 진로 고민의 무게를 덜었을 수도, 별일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 해 여름 동안 서로에게 나이를 잊고 관계 맺는 법은 열심히들 가르친 것 같다. 나무가 나무에게, 다람쥐가 다람쥐에게 나일 묻는 법을 모르듯이.




우리는 타인의 곁을 빌려 성장한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과정에서만 배우는 것들이 있다.

상처와 유머, 결핍과 회복이 뒤섞여 나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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