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류의 미학 - 남아있는 것들
이슈 없음. 이상 무
할아버지가 이북 군인 출신이라는 이야길 들었을 땐 이미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였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에도 그랬지만 돌아가셨다는 연도에도 여전히 난 많이 어려서 그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일이 없다. 살면서 만나본 가장 나이 많은 남성이자 내 피붙이 중 그때까지의 세상에 관해 가장 많은 경험치를 축적했을 할아버지와의 소통은 그래서 내게 간접적 방식으로만 전해진다.
그와의 기억은 짧게 분절된 두어 장면 정도가 다다. 나는 이제 막 재잘대기 시작했고 내 부모는 흰머리보다 검은 머리숱이 압도적으로 많았을 무렵이다. 산곡동 현대 아파트에 김씨 성을 가진 식구들이 모여 차례 준비에 복작일 때 할아버지는 거실 한편 오래된 불상처럼 앉아 꼭 뺀찌를 닮은 흉악한 도구를 들고 자분 자분 밤 껍질을 벗겼다. 딱딱한 껍질은 강단 있게 잘라낸 다음 성가신 털 속껍질을 노골 노골 달래서 결국 통통히 살진 알밤을 한쪽 엄지손가락으로 무심히 훑어내리고 오목한 스뎅 그릇에 떽떼굴 굴려 넣었다. 모두 발바닥이 불타기 직전까지 잰 걸음을 놀려야 했던 그날 그 지붕 아래 궁둥이 붙이고 앉을 특권을 가진 사람은 제일 늙은 그와 제일 어린 나 정도였다.
도대체 얼마나 먼 북에서 내려온 남자인진 모르겠지만 기골이 억세고 강한 그는 팔순 가까운 나이에도 허리가 곧고 뼈마디가 굵었다. 얼굴 골격이 도드라졌으며, 머리와 눈썹 숱이 꼭 겨울 숲속 멧돼지의 것만큼 거칠고 빽빽했다. 그 골격과 흰 피부와 진한 눈썹은 굳세게 피를 타고 내려와 그대로 나를 이룬다. 나 이전엔 오빠를, 그 이전엔 아빠를 이뤘을 것이다. 속절없이 남으로 남으로 흘러내리던 피란민의 행렬만큼이나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2대에 걸쳐 완전히 낯선 여자의 배를 빌려 태어나면서도 거의 희석되지 않은 유전자의 강인함에서는, 북한에 원 가족을 두고 그때까지의 삶의 근간인 북한인의 신분을 버린 채 남한에서 마흔이 넘은 나이로 모든 걸 다시 시작해 뿌리내린 한 사내의 강한 집념이 보인다.
어느새 내가 30대를 지난다. 60대를 지나 할아버지가 되어가는 아빠를 볼 때 부쩍 나의 할아버지를 생각하게 된다. 아저씨에서 노인의 영역으로 건너가며 아빠의 귀가 요새 영 어두워졌다. 어린 시절 만난 팔순 할아버지도 그랬다. 별일 아니다, 김 씨 집안의 소소한 체질 병이다. 할아버지의 귀는 내 말문이 채 다 트이기 전에 한발 앞서 먹어버렸고 그래서 노인과 손녀는 꼭 말 못 하는 존재들처럼 손짓 몸짓으로 대화했다. 먹먹한 귀를 가진 그에게 가장 직관적으로 통하는 언어를 구사하는 존재는 아마 아직까지 보디랭귀지가 더 익숙한 아기 손녀였지 않을까?
할아버지가 현관을 나설 때 아기 손녀는 아쉬웠다. 할아버지 오늘 밤 자고 가요, 말하니 노인이 알아듣지 못했다. 아빠, 엄마, 오빠가 웃음을 터뜨려서 분해진 아기는 다급히 두 손을 기도하듯 모아 볼따구에 대고 몸을 흔들었다. 보이죠, 할아버지? 코자요. 이케 이케 자고 가요. 그제야 할아버지가 꾸물꾸물 웃었다. 귀가 안 들리는 건 분명 할아버지였을 텐데 이상하게도, 손녀에게 그 장면이 음소거 된 흑백 장면으로 기억된다. 이제는 그 손녀 역시 보디랭귀지보다 언어의 소통이 훨씬 익숙하기 때문일까? 꼭 눈에 선연하면서도 한 발 떨어진 어떤 다른 세계의 기억 같다.
죽은 자와 산 자의 세계처럼.
이북과 이남처럼.
김 씨의 나라와 그 외 다양한 이름을 잃은 여인들의 나라처럼.
태어난 지 얼만 안된 존재와 죽을 날이 가까운 존재 사이의 거리처럼.
초등학생이 되고 북한에 대해 배웠다. 너 괜찮니? 응 괜찮아. 이거 먹을래? 아니 괜찮아. 같이 단순한 안부나 제안에 대한 답으로 북한 사람들은 “일 없다” 한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터프하고 쿨한 답이다. “이슈 없습니다.” 가 아닌가. 척박한 땅에 사는 이들이니 ‘아무 일 없음, 이상 무’ 만큼 안도되는 상태 값이 또 있었을까 싶다.
함께 나눈 정은 없다시피 하고 그의 목소리조차 모른다. 손녀인 나도 정말 정말로 ‘아무 일 없는’ 한가한 어느 날에야 창밖을 보고 한숨 돌리다 가끔만 그를 떠올린다. 마흔이 넘어 우리 아빠를 낳았고 또 그 아빠가 삼심을 훌쩍 넘겨 나를 낳았으니 이미 많이 늙어버린 할아버지는 성대와 고막이 낡을 대로 낡아 그저 꾸물꾸물 웃었을 것이다. 만약 그가 아주 조금만 젊었더라면 어땠을까? 만약 그의 아기 손녀와 육성으로 대화할 수 있었다면? 명절 내 실컷 머물렀지만 떠나는 그가 또 아쉬워 바짓단을 잡고 하루 더 자고 가라 매달리는 아기 손녀에게 웃으며 말해주었을까? “일 없다"라고? 혹은 병원이나 장례식장에 직접 찾아와도 괜찮을 나이의 소녀 손녀를 안심시키며 말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괜찮다” “일 없다”라고?
모를 일이다. 기회가 된다면 죽은 뒤에 물어봐야겠다.
거기서 할아버질 찾는 일은 어렵지 않을 거다. 그냥 나랑 똑같은 눈썹을 가진 노인을 찾으면 된다.
사라지는 세상에서 나는 자꾸 남아 있는 것들을 본다.
오래된 말씨, 식은 밥 냄새, 손끝에 남은 감정의 온도.
그것들이야말로 삶의 증거이자, 가장 오래 버티는 마음의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