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갈수록 늙어가고 있다. 2022년 한국의 중위연령(총인구를 연령순으로 나열할 때 정중앙에 있는 사람의 해당 연령)은 45세이다. ‘젊은 나라’로 취급되는 나라의 중위연령은 20대 후반~30대 초반. 한국의 중위연령은 한국이 ‘늙은 나라’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런 현상은 한국 탱고 커뮤니티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내 경험 상 서울의 탱고 커뮤니티의 주류는 40대 중후반과 50대다. 그리고 2030 세대보다는 60대가 더 자주, 더 많이 눈에 띈다.
30대인 나로서는 좀 아쉽다. 탱고는 그 자체로도 재밌지만, 마음 맞는 또래 친구들이 더 많이 함께 한다면 더 신나고 재밌을 것 같다. 세대차이 나는 동료들과는 아무래도 나눌 수 있는 것이 제한된다고 느낀다.
넷플릭스 시리즈 <도시인처럼>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70대 문화비평가 프랜 레보위츠는 말했다.
“동시대인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어요. (...) 저는 저랑 같은 세대를 깊이 이해합니다. 보기만 해도 알아요. 제 나이에서 위아래로 10년 정도 차이까지는요. 그들 옷차림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그들이 생각하는 그 옷의 의미도 잘 알죠.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얘기하면 그 의미도 다 알아요. 하지만 젊은 세대는 모르겠어요.”
세대차이가 필연적이라는 뜻일 테다.
개인적인 경험을 기반에 둘 때, 그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넓게 잡아 위아래 10년 정도 차이까지와의 만남은 마음 편하고 공감대가 잘 형성되며 즐거울 때가 많았다. 반면 나 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분들의 미감이나 유머 감각에는 거슬림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물론 성급한 일반화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 드신 분들 모두가 ‘어르신 유머’를 하거나, 자연친화적이면서 어딘지 ‘디지털 풍화’된 이미지를 공유하는 것은 아닐 테니. 그렇지만 단체 채팅방에서 낡은 짤과 유머를 던지는 사람들의 100%는 모두 나이가 지긋했다.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
디지털 풍화된 어르신 유머의 예
- ‘스트릿 탱고 파이터’가 답일까?
내가 더 즐겁기 위해서는 한국 탱고씬에 80년대 중반~ 90년대 중반에 태어난 이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만 그런 아쉬움을 느낀 게 아닌지, 또래 탱고인들끼리 모이면 탱고에 더 많은 젊음이 유입되게 만들 기획과 전략에 대해, 종종 기획회의가 열렸다.
시작은 '왜 탱고 추는 젊은층이 얕은지'에 대한 분석부터 시작된다. 한국사회 전반이 고령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힙합이나 코레오 같은 장르의 댄스 수업에서는 대다수가 젊은이이다. 그 곳에 젊은층이 좀 더 매력을 발견하고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춤과 문화가 존재한다는 뜻일 테다. 반면 그렇지 못한 상황을 드러내는 지금의 탱고는, 어쩌면 젊은층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하고 것 아닐까?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D는 “탱고가 더 대중적이 되어야 한다. ‘깊은 아브라소’ 같이 대중이 다소 거북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 역시 “대중매체에 탱고가 더 젊은 이미지로, 더 멋지게 노출되어 젊은층에 친근감을 줘야 한다. 지금의 탱고 문화가 젊은층을 붙들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지 자성하고 꼰대 같은 규칙들은 빼버리는 편이 옳다고 생각한다”며 그의 말을 지지하고 “Mnet에 ‘스트릿 탱고 파이터’ 개최를 제안해보는 것이 어떨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꼭 Mnet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동네에서 ‘2:2 탱고 배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열고 재밌게 편집해 유튜브에 올리는 것도 방법일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좀 더 과격하거나, 회의적인 의견도 있었다. Y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이상한 노인네'들은 다 출입금지 시켜야 한다”고 말했고, N은 “탱고가 좀 어려운 춤이라 진입장벽이 높은데, 젊은 사람들은 이것 말고도 할 것 많지 않은가? 젊을 때 탱고를 떠났다가 나이 들어 할 것 없어지면 돌아오는 경우도 많을 듯”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현타’가 와서 결국 “그냥 포기하고 지금 있는 사람들과 계속 춤추며 우리도 늙어갈 것을 받아들이자”는 결론으로 마무리 하게 되지만....
- 탱고 추는 노인은 행복하다
사실 탱고 고령화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위안을 주기도 한다. 내 나이 30대 후반, 보편 사회 기준으로 적은 나이는 아니다. 그런 자각을 할 때면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 탱고 커뮤니티에서는 상대적으로 새파란 젊은이잖아? 이런 인식이 떠오르는 순간보편적인 생애주기의 압박을 잊고 느긋한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춤추며 행복해하는 어르신을 보는 일도 좋다. 나도 저 나이 되면 지금의 어르신들처럼 계속 춤추고 즐겁게 살 수 있겠구나, 싶다. 탱고 커뮤니티 문화에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 그걸 도울 것이다. 사회적 지위 따지지 않고 오직 탱고를 매개로 대화하며 인간 대 인간으로 친해지는 것. 물론 가끔 사회적 지위를 과시 하거나 특별히 대접받고 싶어 하는 꼰대도 가끔 있지만 결국은 고립되기 마련이었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허물없이 마음을 나누고 웃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가끔 ‘어르신 유머’ 때문에 심정이 복잡해질 때도 있지만 대체로) 좋아진다. 나도 탱고로 맺은 우정을 노년까지 이어가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만약 우정 말고 사랑을 원한다면? 탱고 커뮤니티 내에서 얼마든지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할 수 있다. 심지어 나이를 들어서도 '자만추'가 어렵지 않아 보인다. 50이든 60이든 탱고를 매개로 자연스럽게 가까워져 뜨겁게 연애하는 경우를 종종 봤다. 탱고 커뮤니티 내에 ‘돌아온 싱글’이 적지 않기 때문인지 혼인 여부에 대한 질문이나, 질문을 빙자한 압박(“결혼 안 하셨어요? 왜요?”)도 드물다. 이런 문화 역시 자유롭게 인간과 인간이 만날 수 있는 배경이 돼준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고령 사회에 대한 걱정이 누그러진다. 행복한 노인들이 많다면 고령 사회여도 괜찮은 것 아닐까? 고령 사회의 실질적인 대책은 ‘출산 장려’ 보다 노인이 되어서도 즐겁게 사람들과 교류하고, 행복하게취미생활과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탱고 추는 노인은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고령 사회를 넘어 초고령 사회가 될 미래가 머지않았다는 예측이 팽배한 요즘, 탱고 커뮤니티를 참고하여 노인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