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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medy May 09. 2016

수호천사

일기

수호천사 

 

요즘 들어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잦아졌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무슨 과거 회상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점점 과거 회상이 급속도로 어려워 지기 시작해서느낄 수 있을 때, 생각이 날 때 한번이라도 더 생각하고 느껴보려고 과거 회상을 한다. 아마 내 뇌가 이제 진짜 쓸만한 정보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니까 쓰레기들을 청소하는 기분이랄까.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 해지는 토론토 친구가 있다. 교회에서 엄청 나대던나와 같이 있어준 신실한 놈인데, 자기보다 키가 큰 동갑내기 여자애에게 마음을 뺏겨 끙끙 앓고 있었다. 이름이 에릭 이였던 것 같지만, 틀릴 가능성이 더 높다. 내가 아마 처음으로 연애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 이 녀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년 동안 공을 들여 이 순댕이 답답이를 당당한 마초맨으로 만들기 까지 엄청난 일들이 참 많았다. 고백은 성공했고, 이년 사귀다가 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두 번째는 내 토론토 교회 선생님. 나는 토론토에 있을 때는 거의개 망나니 급 이였는데, 그런 나를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해 주시고, 호의를베풀어 주신, 내 평생 몇 안 되는 나의 인생을 바꿔 주신 분이랄까.당시에는 중요치 않게 생각해서 기억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대화를 좋아하고 듣는 것을좋아하시며, 지혜가 있으신 꽉 찬 수레 같으신 분 이였다. 내가그때로 돌아간다면 핫도그를 사먹고 캐내디언 타이어로 도망을 가고 버스 타고 집에 오는 길에 Jones를사먹고 집에서 게임 하는 짓거리를 하기 보다는 꼭 성경 공부를 했을 것이다. 내가 삼 사 년 동안에성경공부를 간 것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지만, 내 기억에 의하면 정말로 좋고 이해가 가기 쉽게이야기를 해주셨었다. 

 

중3때 만난 오보를 부는 동갑내기 한국인 여자아이가 기억이 난다. 바랭이 너무나도 독특하고 통통 튀어서 같이 있으면 그냥 웃긴 애였고, 어둡고짜증 가득하던 내가 가시 돋친 말을 해도 부드럽게 넘겨 갈 줄 아는 애였다. 좋은 기독교인 이였고, 내가 그 어떤 안티 기독교 적인 말을 해도 넘어지지 않고 나를 교회에 가게 하려고 무던 애쓰던 애였다. 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던데, 여러모로 많이 바뀐 것 같아서 기분이묘하다. 다크템플러 처럼 몰래 왔다가 슥 빠져나가는 나를 찾아내고 붙잡은 유일한 앤데, 나는 그다지 얠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애초에 통통 튀는 여자들을싫어하는 것 같다. 

 

같은 학교에서 내가 진짜 진짜 많이 놀렸던 폴리나! 이쁘게 생기고키도 크고, 약간 바보스러운 끼가 다분히 있는 동갑내기 백인 이였다.나의 브로큰 영어를 쉽게 알아듣고 또 많이 도와주었다.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오보랑 같은 리드를 쓰는데 한 10배는 더 큰 악기를 했는데, 진짜 소질이 없었다. 얜 또 다른 한국인이랑 사귀게 됐는데, 그 남자애가 한국인 망신 제대로 시키는 놈이라 쓰레기 짓을 얘한테 하길래 내가 제레미 식으로 깔아뭉개줬다. 심각하게는 안 했지만. 웃는 것이 예쁘다기 보단 마음에 따뜻해지는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가진 애였는데, 진짜 너무나도 착해서 울어야 할 상황에도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웃는 애였다. 진짜 많이 놀렸는데, 잘 받아줘서 너무나도고마웠다. 내가 오타와로 간다는 것을 알고 많이 울어줬고, 넌어디 가서도 잘 할거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해주고, 연락이 끊겼다. 페북에도없고 흔적을 아예 찾을 수 없게 된 듯한 이상한 느낌이 난다. 

 

알렉과 알렉. 내 9학년 2학기의 즐거움이자 우리의 조그마한 그룹에서 엄청난 양의 드라마를 만든 장본인 들이다. 한 명은 박자가 맨날 틀려서 우리 음악 쌤이 많이 놀리셨는데, 그럴때마다 얼굴이 벌개져서 뻘쭘한 표정과 말투를 구사하는 재미있는 애였고, 다른 알렉은 앤디라는 한국인하고 한 세 여자를 (!!) 두고 경쟁을 하던 애였다. 결국알렉은 서리나를, 앤디는 기억이 잘 안 나는 여자랑 사귀게 되었지만.그때 있었던 그 피 튀기듯 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그 두근두근한, 텁텁한 분위기는 정말흥미진진 했던 것 같다. 

 

미스 킹싱어를 위한 짤막한 문단도 있어야 할 것 같다. 최고의 음악선생님이시자 학생들의 고민 상담소, 그리고 나를 처음으로 진심으로 혼내신 분이기도 하다. 내가 9학년의 신분으로 12학년곡을 하고 있으니까 나를 시니어에서 솔로를 하게 해주시기도 했고, 물론 그와 더불어 주니어에서도 어떤여자애랑 번갈아 가면서 솔로를 맡게 해주셨다. 내가 높고 빠른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시고 Thunder Bird라는 제레미 최적화된 노래를 하신다고 해주시기도 했다. 그악보는 아직도 내가 가지고 있고, 내가 짜증날 때 가끔씩 그 노래를 보기만 해도 뭔가 재미있고 춤추고싶은 기분이 들게 하는 마법의 곡이다. 블루스 스타일의 노래를 좋아하셔서 박자치인 백인들은 개고생하고박자천재인 한국인들은 무지하게 좋아했던 스타일의 곡을 많이 하셨다. Blues Brothers의 매쉬업도많이 하셨지만, 클라식 노래도 싫어하시진 않으신 편이라 이것 저것 많이 하셨었다. 솔로를 했을 때가 크리스마스 였는데, 솔로는 특별해야 한다고 하면서직접 선생님의 목도리와 (….) 빨간, 그러나 내게는 조금큰 산타 모자를 쓰여주셔서 나를 똭 튀게 해주신, 내가 풀룻을 사랑하고 아끼게 해주신 분이다. 이 선생님의 인기가 얼마나 컸는지, 선생님이 무슨 일이 있으시다고하면 우리 9학년 들이 나서서 청소도 해드리고 편지도 쓰고 농담도 해드리고 할 정도였다. 이러니 선생님이 9학년 한국인들을 안 좋아하실 리가 없지. 

 

여자 쌤으로 미스 킹싱어가 있었다면 남자 쌤으로는 닥터 낙스가 있으시겠다. 엄청난두뇌의 소유자신 75살의 고령의 스모커로 유명하신 화학 선생님이다. 나에게화학 실험실을 빌려주셔서 클로로폼 폭탄과 따가운 고무, 독성 비누방울,폭발하는 자주색의 액체와 계속해서 끓는 회갈색의 액체 등을 만드는 것을 도와주셨다. 대이빗이라는 형이랑 같이 했는데, 이상하게 왜 내가 아는 대이빗 들은 죄다 천재 인 건지 모르겠다. 10학년이라는 나이로 대학교3.4학년이 나가는 화학 대회에서 1등을 휩쓸었던 사람이랑 같이 했는데, 나는 딱히 한 것은 없고 배우는것이 더 많았지만, 덕분에 여러모로 도움과 재미가 많이 되었다. 

 

그 밖에도 나를 천재라고 봐주시고 똑똑하다고, 공부를 하라고 해주신선생님들이 몇분 계신다. 실수하지 말라고, 너는 하나님이크게 쓰실 재목이라고 말해준 분도 있다. 내가 물어보면 언제나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고 나의 억지스러운주장을 조목조목 따져주신 교회 선생님도 계신다. 나보고 언제나 난 너 편이라고 해준 친구 아닌 친구들도있었다. 

 

정말로 짜증나는 것은, 내가 마음을 열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상을 삐딱하게, 비관적으로 보는 몹쓸 습관 때문에 그들을 믿어주지를않아서 그들은 나를 엄청 친하고 고맙다고 생각 할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당시에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않는 사람들 이였다. 그때로 돌아가면 나를 케어 해준 사람들에게 좀더 감사하고 친해지고 싶다. 내암울한 시절의 수호천사들에게, 알게 모르게 나를 지탱해주고 옳지 못한 길로 너무 벗어나지 않게 해준애들과 친구고 되고 싶다. 좀 더 편안하게 해주고 싶고, 고맙다고이야기 해주고 싶다. 수호천사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예를 다해서 대하고 빙구 처럼굴지 않고 마음을 다해서 대해주고 싶다. 연락해서 그때 참 고마웠다고 하기에는 너무 늦었기에 포기를했지만, 그때 내가 왜 그렇게 한심하게 행동을 했는지, 뭐가그렇게 불만 이였는지, 만사가 왜 그렇게 불행하게 느껴졌는지 알 수가 없다. 애초에 그들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진짜로 지옥불에서 화중 발레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노릇인데… 

 

아마 지금 이 속도라면 빠르게는 서너 개월, 늦게는 몇 년 내로 이들을까마득하게 잊을 것 같다. 분명 더 많은데 기억이 나지 않아서 기억이 날 때 더 쓰고 그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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