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medy May 09. 2016

정리

일기

정리

 

길고 길던 몇 십 번의 쇼잉이 끝나고 드디어 집이 나갔다. 어떤 대사관분한테 나갔다고 하는데, 만나본 바로는 나쁘지 않으신 분 같다. 꼬맹이들도꽤나 귀여운 것 같고 우리 집을 잘 관리 해주실 것 같아서 뭔가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문제는정리를 해야 한다는 것. 이 집보다는 훨씬 자그마한 아파트로 옮겨갈 것이기에 많은 짐들을 버리거나 주거나두고 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슬프게도, 보름 안에 다끝나야 한다. 

 

나는 이사가 정말 싫다. 아니, 이사가싫다기 보다는 도시와 도시를 넘나드는, 내가 잘 알게 된 학교, 교회, 알바, 음식점 등을 떠나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한다는 것이 싫은 것이다. 내가 우리 교회에 정착하기에 얼마나 오래 걸렸는데, 이제야 조금 편한 사람 몇 생겨 가는데 지금 떠나는 것은 너무 아깝다. 내가시간만 허비하지 않았었어도 조금 더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에 내가 토론토로 가게 된다면, 늘 그랬듯이 죽은 듯 살기보다는내 장점을 십분 발휘해 인맥도 쌓고 할 예정이다. 쓸모 없다고 느껴진다고 해서 진짜로 쓸모 없는 것은아니니까. 

 

제길, 이사를 함으로써 내가 무언가 얻는 것이 하나라도 생각 날 법한데, 이사해서 희망적인 무언가를 잡고 가짜로 라도 기뻐 할 수 있을 텐데 이상하게 좋지 못한 것들만 생각이 난다. 무엇이 좋을까, 쉬운 대학을 가서 점수를 더 잘 받을 가능성이 있을수도 있다는 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거? 예전에살던 곳과 선생님들을 방문 할 수 있다는 거? 

 

이미 계약을 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나마 여기보다 낫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조용히, 묵묵히 내가 가진 것을 하나 하나 정리하는 수밖에 없다. 그저 힘들지않기를, 짜증나지 않기를, 화나지 않기를 기도하며 묵묵히하나 하나 버리는 수밖에 없다. 선물을 버리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19년을 살아왔는데, 막상 이사 때문에 그 망할 규칙을 깨버리게 되어서 뭔가 기분이 매우, 아주 매우 더럽다. 단지 선물을 버려야 한다는 그 생각 만으로 이사를간다는 것은 나에게서 반감을 가지기에 충분 한 것 같다. 

 

나의 서랍 중 두 개는 지금 까지 받은 선물과 편지, 그리고 year book을 위해서 쓰고 있다. 제기랄, 그 미니언 인형이 뭐라고, 그깟 빨간 옷을 입은 컵이 뭐라고 그것들을버리지 못했다. 이젠 버릴 때도 됐는데, 그것들을 꺼내고나는 한참 동안 말없이 그 아름답고 추악한 컵과 인형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동생이 뭐하냐고 소리치지않았다면 아마 한 시간을, 하루를, 한 달을, 심지어 일년을 과거에 묻혀 살아가고 있지 않았을까. 어째서 나를위해 이런 과분한 선물을 주었을까. 왜, 어째서 이런 정성없는 정성 드린 선물로 아직까지 나를 따라다니려고 하는 걸까. 

 

분명 그 인형은 부수어 버리기로 했는데. 

 

내 수많은 악보들이 가차없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셰리요무스키, 베토벤 등등, 작곡가들이 나에게 아우성을 치는 듯 하다. 내 플룻 노래들, 나와 반을 이어주는 유일한 연결고리는 그렇게, 역시나 쓰레기 통에 처박혔다. 비올라 악보도, 나의 가장 아름답고도 힘들었던 시간을 대변해 주었던 악보들은 불쏘시게 만도 못한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오늘은 아마도 작곡가들이 나를 죽이려 드는 악몽을 꾸지 않을까. 

 

아까 에피펜으로 장난을 치다가 실수로 내 종아리에 박아버렸다. 유통기한이 2011 8월20일 이라는 것을 빼면 그냥 평범한, 몇 번 내 허벅지에 꽂아본 에피펜이다. 다행이 액체가 많이 들어가지는않은 것 같지만, 워낙에 긴 바늘이라 근육이 많이 상한 것 같다. 힘을줄 때마다 알이 배긴 것의 열 배는 아프다. 확 빼면 안되기에 천천히 뺏는데도 만질 때마다 아직도 심이박혀있는 느낌이 든다. 웃기게도 소량의 에피펜은 즉시 내 알러지를 죽여주기 때문에 코는 뚫렸다. 무슨 콘크리트 철심이 박힌 것도 아니고, 걸을 때마다 피가 난다. 한 이삼 일은 가겠군. 목요일에 놀 때 조금 힘들 것 같다. 많이 걷다가 터져 죽는 건 아닌지 몰라. 박스를 나르는데 근육이아파서 사라질 것 같다. 

 

무수히 많은 편지들 역시 쓰레기 통으로 들어간다. 고백편지와 warm and fuzzy들, 생일축하 편지와 졸업 축하 편지의 대다수가힘이 되어준 편지가 아닌 낙서가 적힌 종이쪼가리로 하나 하나 좌천되어 간다. 마지막 인사라도 하는 듯이나는 그들을 정성스레 읽어본다. 하나 하나 버릴 때마다 나의 짜증은 고조되어 가고, 그 짜증을 누르기 위해서 나는 찬송가를 고른다. 77개의 영어 찬송가에서랜덤으로 나오는 수많은 슬프고 기쁜 노래를 들으며 나는 나의 과거의 대부분을 청산해 간다. 도저히 버리지못하는 것도 있지만, 그들을 챙기기 위해 조금이라도 덜 가치 있는 것들은 쓰레기통으로 직행이다. 아름답던 내 방은 마치 살인의 현장처럼 물건의 비명소리로, 살려달라는추억들의 애절한 목소리로 진동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물건과 추억에게 영원한 안녕을 빌어준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했고, 그것들을 가지고 있기 위해 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을 많이 버렸다. 왜나는 항상 슬픔과 고통을 기쁨과 편안함 대신 끌어 안으려는 걸까. 도대체 왜 컵을 부수고 인형을 짓이겨버리지 못하는 걸까. 

 

내 year book은 전부 무언가 자랑할 만한 무언가가 있다. 9학년 것은 빈 공간이 없도록 꽉 차있고, 10학년, 11학년 것은 내 두 학교 베프로 부터 정말 아름답고 공을 들인 멋들어진 그림을 받았으며, 12 학년에는 죽을 때 까지 잊지 못할 슬프고도 짜증나는 그림을 받았다. 

 

Please become the kind of person you wantme to meet. Best wishes, stay alive, stay strong 이라는 더할 나위 없는 씁쓸한 말로 고백을받았다. 두 남녀가 정장과 드레스를 입고 한 면을 같이 먹고 있는, 마치영화의 한 장면 처럼 아름다운 그림이다. 생각해 보니 나는 참으로 쓰레기 같이 그려줬으면서 이런 그림은미치도록 잘 그렸다. 나는 내가 잘나지 못한 사람이며, 나보다나은 사람을 많이 만날 것을 미리 알았기에 나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라, 더 착하고 멋지고 좋은 사람을만나주어라 라고 거절 아닌 거절을 했기에 이런 글을 써온 것이라. 웃기게도 결국엔 정말로 나보다 좋은사람을 많이 찾았다고 이야기 하기는 했지만. 

 

사람의 감정 이라는 것이 정말 우습지 않은가. 오래 갈 것 같은, 평생 갈 것 같은 감정도 결국엔 사라지고 옅어진다. 잊게 된다. 마음 한 켠에 늘 두고 있으면서도 마치 없는 듯이, 이제는 괜찮은듯이 애써 그 부분을 돌이켜 보지 않는다. 믿음은 감정이 아니기에 오랫동안 있을 수 있지만, 분노, 슬픔, 두려움, 사랑은 결국 감정이기 때문에 없어진다. 그런데 감정을 믿지 못한다면나는 도대체 무엇으로 누군가를 믿고 기대야 하는 건지 나는 모르겠다. 아니, 애초에 내가 푹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는 지 조차 모르겠다. 어쩌면사람들이 나에게 몸과 마음을 맡긴 이유는 내가 그들에게 기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 역시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대학교 끝날 때까지 좋아하는 사람 없이 지내기는 개뿔. 그 상황으로가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삘 따라 충고 따라 한 것이 무언가 신기하다. 엄청 편안한데편안해서 불편해서 편안하다. 편하다 보니 필터링을 거의 안하게 되어서 오글거리는 말도 뇌를 거치지 않고 툭툭 나오고 말 하지 않아야 할 토픽에 대해서도 말하게 된다. 결국 실수란 실수는 죄다 하게 된 것같다. 

 

도대체 여자가 왜 나를 좋아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은 여전하다. 내가잘 생기기를 해, 목소리가 좋아, 공부를 잘해, 돈이 많아? 발렌타인 때 고백을 받았는데, 내가 랩에서 자기 대신 다쳐 준 것이 멋있었단다. 즉, 자기 대신 희생해 주는 사람이 멋있다는 건데, 난 딱히 걔를 위해서한 것이 아니라 나의 아름다운 점수를 위해서 했기 때문에 딱히 멋있다고 생각 하지는 않았다. 근육도없고 몸도 빼빼 마르고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뭐가 그리도 좋다고 발렌타인 때 차일꺼 뻔히 알면서 전화 고백을 하는지… 다행이 이제는 얼굴 볼 일이 별로 없다. 찾아 가려면 찾을 수는있지만 안 하련다. 


자, 딱 세 페이지 에서 멈추어야지.더 쓰면 쓰잘떼기 없는 넋두리나 줄줄 하게 생겼다. 역시,기분이 드러워야 글이 써진다. 잘 쓴 글은 아니더라도 글이 써진 다는 것 자체가 참 좋은것 아닌가. 아예 써지지 않을 때가 대부분인데… 아 벌써2시 반이야… 근데 잠이 안온다… 망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호천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