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프로젝트 레미디 답변들

흑역사...

by Remedy

기독교 자주 받는 질문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믿음을 가지고 계신가. 과연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이라고 믿는 것인가

자살하면 지옥을 가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온화한 성품에 벗어나지 않는가?

술 마시면 죄인가?

자해가 왜 죄인가?

내가 못된 사람인데 과연 사죄를 받을 수 있는가?

예수님은 우리가 당하는 유혹을 아시고 정말 이해 하시는가?

야동과 자위는 죄인가?

우리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 간다고 할 때 거짓말 하는 거 아닌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지 못할 수 있나?, 그리고 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아니라면 왜 우리가 이모셔날 하게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보냈다고 꺼이 꺼이 울어야 하는가?

내가 악마에 의해서 임명 받았을 수도 있나?

왜 나에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가?

왜 하나님은 악한 자를 없애지 않으시는가?

예수님은 마약을 하셨나?

선교를 반드시 해야 하나?

하나님의 사랑이 왜 위대한가?

게임은 죄인가?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

왜 예수님께서 돌아가셔야 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계획, 모든 사람을 위한 계획이 있으신가?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으실 때 정말로 용서해주시나?

하나님은 우리를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랑해주시나?

종교를 바꾸는 것은 죄인가?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대로 좋아하시는가? (우리는 의사가 되고 싶지만 하나님은 다른 계획이 있으셨는데 의사가 되게 내버려 두신다던가)

우리는 반드시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보여야 하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필요로 하시는가?

과연 살인을 하거나 죄를 짓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인가?(유투브 이야기)

기타 등등

부모의 역할은 무엇인가?

내가 하나님을 따르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양성애자의 문제에 관한 고찰. ?

예수님께서 원죄를 없애 주셨다고 하는데, 죄는 원죄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지성, 영성, 심성

답변

하나님은 인간을 믿는다기 보다는 자기 자신의 뜻이 이루어 질것을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다. 이미 무엇이 일어날지를 아시는데 뭐 다른 것을 믿을 것이 있다는 말인가. 이것은 내가 시험에 나올 문제와 답을 아는데 시험문제가 자기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 와 같이 당연한 것이다.

사람들이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틀리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몇 가지 전제를 할 수가 있다. 첫 번째는, 이곳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곳이기에 하나님 마음대로 하실 수 있다. 세상을 멸망을 시키시던, 핵폭탄을 내 머리 안에서 터트리시던,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실 수 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자신의 법을 거스르지 않으신다. 거룩하다는 죄의 부재를 의미하는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룰은 사람을 죽이면 죄, 즉 자신을 죽이는 것도 자신이 사람이기에 죄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새로운 룰로, 예수님을 믿고 죄를 고백하고 사함을 받으면 죄가 없어진다 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어떠한 죄를 지어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죄 사함을 받으면 천국에 가게 된다. 그러나 자살을 한다고 하면 내가 나를 죽이는 순간 죄 사함을 받을 시간이 없다. 죄를 짓기 전에 존재하지 않는 죄를 사함 받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심판 받을 때에 내가 사람을 죽인 그 죄 하나로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성경에 술을 마시지 말라는 하나님이나 예수님의 말씀은 없으시다. 하지만, 잠언에 술을 절대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하거나, 에베소서에 술에 취하지 말고 성령에 취하라고 나온 부분이 있다. 이것을 우리가 잘못 생각하면 술에 취하는 것은 죄지만 술을 마시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가 있다. 여기서 잘못된 점은, 술에 취하지 말고 성령에 취하라고 한 부분에서 술은 마시는 음료의 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때 시대에 보면, 술은 옛날 사람들이 섬기던 신 중 하나인 바쿠스를 의미 하는 것이다. 술을 마시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마셔서는 안 되는 이유가 4가지 있다. 첫 번째는 술을 마시면 자제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내 주량을 안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감일 뿐이다. 그날의 컨디션이나 술의 강도, 기분, 혹은 술의 온도에 따라서 더 빨리 취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럼으로써 죄를 지을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 즉 내가 지옥에 갈 확률을 높인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인 것이다. 두 번째는, 술을 마시는 것이 성도들의 믿음에 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번 상상해보라. 매주 토요일 날 저녁 술 마시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하면서 엄청 마시고 다음날 술 냄새를 풍기며 설교를 하시다가 토를 하시는 목사님의 모습을. 굉장히 경이롭고, 성령 충만하고 존경 할 만한 모습이지 않는가. 성경에 따르면, 우리는 어떠한 행동을 통하여 다른 성도들의 믿음을 해하는 것을 하면 안 된다고 나와있다. 세 번째는, 술의 중독성 때문이다. 내가 맛으로 술을 먹는다면은 중독이 될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내가 기분이 안 좋아서 풀려고 마신다면, 다음 번에 기분이 꿀꿀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것은 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즉, 감정적으로 마시게 되면 중독이 되고, 하나님보다 술을 더 찾는 생활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술의 독성 때문이다. 물론 적은 양의 포도주는 몸에 좋다고 하나, 폭탄주 등등은 하나님의 템플인 우리의 몸을 더럽히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자해가 왜 죄인가. 이 문제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다. 호기심, 고통, 즐김, 자살충동, attention 등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어떤 이유더라도 하나님의 신전을 망가트린다는 것, 또한 다른 성도들을 시험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것 등등이 있다. 우리는 우리를 아들이라고 불러주신 그 분께서 얼마나 마음 아파 하실지 알고, 그것을 공감 할 수 있어야 한다.

못된 사람 이여서 죄 사함을 못 받으면 그건 말도 안 된다. 내가 앞서 말한 하나님의 룰 에는, 내가 착한 사람이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나와있지 않는다. 내가 구원을 얻으려면, 또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단지 죄의 부재만 필요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내 전 죄는 사해지게 되기 때문에 전혀 관계가 없다. 예를 들어서, 심한 죄인임에도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는 성경에도 수두룩하다. 살인자가 예수님과 같이 있을 때 죄 사함을 받았고, 삭개오 같은 돈 벌래도 사함을 받았고, 또한 살인자였던, 악한 자였던 사울도 예수님을 따르고 그의 제자가 되어 천국에 갔다.

이것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말하고 싶다. 안티 기독교인들을 보면, 예수님은 아이들을 단순히 애정으로 돌보신 것이 아니라 페도파일 이였단 설이나, 마리아나 마리아의 동생들과 성행위를 가졌다는 설, 목말라 나무를 죽였다는 설, 십자가에 매달리셨을 때 고통을 업에기 위해 마약을 복용하셨다는 설 등등의 말이 잇는데,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것은 어느 정도 당연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예수님이 죄를 짓지 않으셨다 라는 것을 믿는다면, 예수님은 엄청난 양의 시험을 겪으신 셈이다. 사단에게 배고픔, 권력욕을 시험 당하셨고, 계속 좋다고 오는 예쁘장한 아이들과 자기 주변의 여자들에게 성적인 유혹, 목이 마르셧을때 무언가를 죽이고 실으시는 유혹, 그리고 마약을 하시고 싶은 유혹 등을 이기신 것이다. (마약에 대해선 나중에 나온다) 또한 십자가에 매달리시는 엄청난 고통도 받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인간이 겪는 육체의 나약함과 고통, 그리고 유혹을 잘 아신다. 하지만, 우리가 야동을 보거나, 컴퓨터, 핸드폰, 부모와의 다툼 등등을 모른다고 찡찡대는 사람들이 분명이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면 예수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내가 차라리 이런 자잘한 유혹보다 예수님처럼 처참하게 죽을 것인지 생각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예수님은 어떤 고통도 받지 않으실 자격이 있으시고, 또 “쓴 잔” 을 얼마든지 피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유혹을 이겨내시고 하셔야 할 일을 이루셨다. 당연히 딱 모든 유혹을 모르시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강한 유혹을 견디심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야동과 자위는 죄인가. 야동은 죄이다. 예수님께서 네가 다른 여자를 탐하면 그 여자랑 이미 잔 것과 같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가 결혼하지 않은 여자와 성행위를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죄 인 것이다. 또한, 야동을 보면서 아름다운 몸을 감상만 하지는 않지 않는가. 자위는 술 마시는 것과 같은 것이다. 경건과 절제에 반대되는, 쾌락에 몸을 말기는 것이기에 하지 않는 것이 좋고, 자위를 할 때 때때로는 다른 여자와의 성행위를 생각하기에 죄가 되는 것이다. 물론 항상 그렇지 않다고, 혹은 그런 적이 없다고 반박 할 수 있지만, 술과 마찬가지로 중독성과 죄 지을 가능성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자위 행위가 성경에 나온다고도 하는데, 이것은 자위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씨앗을 죄로 더럽히지 않으려는 행위였고, 자신의 성충동을 해결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점에서 자위로 받아 드려지지 않는다.

반반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복음을 전할 때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거짓이 된다. 물론 불신지옥은 맞지만. 예수님을 단순히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고, 죄가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죽었을 때 죄가 있으면 바로 지옥 행 고고씽이기 때문이다. 즉, 단순이 예수님을 믿어라 가 아닌 예수님을 진심으로 따르고 그와 비슷하게 되려고 하면, 또한 예수님을 내 구주로 받아들이면 구원 받는다고 하는 것이 옳은 말인 것이다.

언제나 말하는 것이지만, 이 세상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이 장난으로 게임용으로 우리를 만드셔서도, 그의 피조물인 우리가 뭐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고르시면 고르시는 거고 말면 마시는 것이다.

솔직히 인간의 생각으로 삼위일체를, 또 서로 어떤 관계인지 아는 것은 세상을 초월하는 존재에게는 불가능 하다고 본다. 그러나, 조금 인간세계를 빗대어 본다면, 사람은 25년 동안 산전수전 다 같이 겪은 친구의 죽음에 정신이 반쯤 돌아버리고, 자신과 많아 봤자 육 칠십 년 동안 살던 부모의 죽음에 오열을 하고, 최대 이십 년 동안 같이 살던 애완견에 죽음에 식음을 전폐하거나 자신과 반평생 같이 보낸 배우자의 죽음에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성령, 성부, 성자 이 세 존재는 사람이 상상 할 수조차 없는 시간을 같이 보낸, 엄청 가까운 “친구” 사이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친구가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매미같이 허약한 쓰레기들한테 고통과 조롱을 당하고 처참한 개 같은 죽임을 당한다고 생각을 해봐라. 얼마나 화가 나고 마음이 아프고 신경이 쓰일까.

최근에 내가 고생하고 있는 문제이다. 내가 악마에 의해서 선교를 가서 선교를 망치고, 교회를 망칠 수 있나. 정답은 슬프게도 “있다” 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가장 큰 무기이자 해가 되는 이 “자유의지” 라는 것 때문에, 우리는 어떤 존재를 마스터로 삼을지 정할 수 있다. 선교를 가서 힘든 일이 참 많았다. 이것 저것 불평도 많이 하고 짜증도 내고 밤에 몰래 한 1분간 운 적도 있을 만큼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든 생각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런 망할 팀에는 내가 말할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난 왜이리 쓸모가 없지” “난 너무 뒤쳐진다” “이곳은 희망이 없어” “내가 뭘 하는 거지” “깽 판이나 칠까” “아오 저 새*를 그냥 확” 등등 사단이 불어넣은 생각이 있었다. 물론 난 이것이 사단이라는 것을 알았고 버텼지만, 그렇지 못하고 무너지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혹은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사단에 의해서 교회를 망하게 보내졌다는 뜻이 아니다. 단순히, 난 초이스가 있다라는 것, 또한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유혹을 더 심하게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기적이란 참으로 애매한 것이다. 나에게 기적이 남에게는 아닐 수도 있고, 기적이 일어나도 우리가 눈치를 못 낼 수도 있다. 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삼 년 전 내가 오타와로 왔을 때, 나는 내 암흑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하고 내 신앙생활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하나님께 간절히 늘 기도하던 것이 내가 등신이고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기적을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그 해에 두 번의 기적이 일어났다. 하나는 겨울 리트릿에,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사람들 앞에서 비트박스를 한 것이다. 나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지만, 난 절대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과 이상한 성령 부음 받은 상태에서 비트박스를 하고 많은 사람들과 친해지게 된 것이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내 친한 주변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나보다 더 놀랐다. 다른 하나는 여름 리트릿에 일어났다. 새벽 두 시에 갑자기 일어나서, 뭔가의 인도하심을 받아 깨어있는 리더들과 친구들 몰래 밖으로 나와서 별이 보이는, 경치가 압도적인 두 곳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 또한 리트릿 센터의 구조를 모른다면 기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내가 유일하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기도하고 내 주변을 살피라는 것이다. 어디에서 기적이 나올지 모르니. 또한 내가 어떤 일이 기적이라고 어떤 이유에서든 확신을 한다면, 그 기적을, 당신만 볼 수 있는 기적을 주신 그분을 남들이 뭐라고 하던 절대적으로 신뢰하라는 것이다.

너무나도 많이 받은 질문이다. 두 가지 이유를 들자면,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도 사랑하시기에 그들이 이 세상을 뜨기 전까지 기회를 주신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약한 결정론 일 때에만 성립되는 논리이다. 강한 결정론일 경우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 사람이 바뀌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악한자가 없어진다면 선한 자에게 임하는 시험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를 선한 자가 성장할 수 있는 거름과 경험치로 보내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마약을 하셧나에 대한 질문을 조금 더 멀리 나가자면, 예수님께서 매달리셨을 때 신 포도주를 마시신 적이 있으신데 그때 마약이 있나 하는 것이다. 이것은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잠시 정신을 잃고 제자들 앞에 나아가셨을 때 약 기운으로 버티신 것이라는 설이다. 참으로 황당하고 바보 같은 설이지만, 의외로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기에 써본다. 자 생각해보자. 어떤 손과 말에 구멍이 뚫리고 약 기운에 헬렐레 거리면서 피 철철 흘리고 나는 부활했다 라고 하는 사람을 만나면 처음 생각은 “저런 미친놈” 두 번째 생각은 “쯧쯧 금방 죽겠군” 일 것이다. 아무리 예수님을 존경했던 11명의 제자들이라고 하지만, 이런 예수님을 보면서 “아니! 주가 부활 하셨다!” 라는 생각을 하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질문을 들으면 참 난감하다. 두 번의 선교를 갔다가 온 나로썬, 선교는 반드시 가야 하는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드시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 사명이 가야 하는 것이라면 가는 것이고 남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면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선교는 꼭 어디 멀리 가지 않고 내 주변사람들에게도 할 수 있는 것이니 꼭 멀리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삶 그 자체가 선교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왜 하나님의 사랑이 위대한지 모른다고 질문을 해왔다. 그들 중에서는 성 소수 자들 이나 사랑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에는 세가지 종류가 있다. 육체적인 사랑인 에로스, 정신적인 사랑인 플라토닉, 그리고 영적인, 혹은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 사랑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에로스적이나 플라토닉 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다. 그러나 에로스와 플라토닉 둘 다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소, 소위 말하는 소울 메이트를 만나지 못하여 이혼을 하거나 미혼으로 남아있기도 한다. 이혼의 경우에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몇 년 동안 사랑을 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많게는 몇 억년, 적게는 약6000년 동안 사랑을 해주셨다. 말 그대로 존재를 사랑해주신 것이다. 게다가, 사람은 한 사람을 사랑하는 데에도 힘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몇 천억, 혹은 몇 조가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신 것이다. 또한, 언제나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피조물인 인간을 사랑하시니 이 얼마나 대단한 사랑이 아닌가.

게임이 죄가 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일단 신약을 본다면, 너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 그것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게임을 할 때 옆에 친구나 자신의 팀이 잘 못하면 욕하고 싸우기에 바쁘고 참 사랑스러운 광경을 만든다. 심지어 기독교인, 부디즘, 이슬람, 이렇게 세 명이 모여서 코드 라는 총 게임을 하기라도 하면, 서로 자신이 독실한 신자들이라는 것을 까먹고 욕 하기에 바쁜 것이다. 게다가 네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면 지옥에 던져질 것이라고 나오기까지 했는데… 물론 자신의 심신을 정화하기 위하여 잠깐 혼자서 하는 게임들은 괜찮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중독으로 이어져서 내가 하나님보다 게임을 더 웅호하는 삶을 살면 그것은 죄라고 할 수 있겠다.

기독교인으로써 만인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맞다. 질문은, 악인도 사랑해야 하냐. 이것 또한 여러 번 듣는 것인데, 이런 경우 사람들이 하려고 하는 것은 동성애나 살인자 등등을 옹호 하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좋은 답변은 그 사람은 사랑하되 그 사람이 가진 죄는 미워하라 이다. 이런 답변이 가능한 이유는, 기독교에서는 죄와 사람을 구분 짓기 때문이다. 우리가 짓는 다수의, 혹은 전부의 죄는 사단의 유혹과 그 유혹에 넘어가는 우리들, 그리고 그것이 죄가 되게 하는 원죄 때문인 것이다. 즉, 죄를 미워 하라는 것은, 원죄를 미워하고, 사단을 미워하고, 유혹에 넘어가는 나약한 자신을 미워하라는 말이 된다. 물론 이것이 다른 사람이라면 미워하면서 사랑할 수는 없기에, 또한 사랑하라는 가장 높은 계명이기에 그 사람을 미워하는 일은 할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은 왜 예수님이 죽어야만 했는지에 대하여 많은 의문점을 가진다. 하지만, 이런 의문점은 몇 가지를 가정을 한다면 쉽게 풀어질 수 있다. 첫 번째는, 여러 번 얘기했지만 이 세계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룰을 ,언제나 옳으시기에, 반하는 일을 하시지 않는 다라는 것이다. 최초에 사람으로써 죄 사함을 받는 것은 동물들에게 자신의, 혹은 청중의 죄를 옮겨서 그 동물을 죽임으로써 죄 사함을 받았다. 이 제물들은 죄의 크기에 따라서 달라졌는데, 작은 죄면 새를, 큰 죄면 양을 죽임으로써 사함을 받았다. 자, 생각해보자. 먹이사슬 위로 올라갈수록 더 많은 죄를 사할 수 있다면, 맨 꼭대기에는 인간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먹지 않으신다. 아마. ) 하지만, 죄를 이미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는 남을 위하여 죽어줄 수가 없다. 이것은 이미 종신형을 받은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해 또 다른 종신형을 받는다는 것과 같이 말이 참으로 안된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깨끗한 인간이 있다면 그 인간이 받고 사할 수 있는 죄는 굉장히 커진다. 사람들이 하는 실수는 예수님의 죽음을 사람의 죽음이 아닌 신의 죽음으로 치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죽지 않으시고 영의 몸으로 다시 나타나셨다. (신의 죽는 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지 않는가.) 즉, 깨끗한, 그리고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죽음으로써 사람들의 죄를 다 가져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하나님은 인류를 위한 계획이 있으시다. 일단 그것은 심판이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며,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이다. 그 일에 우리가 동참하겠다 라고 정한다면, 우리는 사람들을 바꿀 수 있는 하나님의 연장이 되게 된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계획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 들던 안 들던, 우리는 우리 창조 때부터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해져 있다. 물론 거기까지 어떻게 도착하느냐는 우리의 마음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용서해주시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죄를 회게 하고 뉘우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왜 사탄을 정죄 하셨는가. 만약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이유 없이 사하여 주신다면 사탄은 정죄 받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탄은 죄를 뉘우치지 않았다.

물론이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 하나님은 온갖 옳고 좋은 것이 모아놓은 것이기에 “죄악” 이라는 것은 하나님 안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죄 라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에 반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고 있는 죄악이다

종교를 바꾸는 것이 죄가 될 수 있다. 아닌 경우는, 종교를 “바꾼다” 하더라도 실재로 마음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종교를 바꾸는 것이 죄가 되는 경우는, 그들이 하는 종교 의식을 따라 한다거나, 그들의 의식에 참여하여 음식을 먹는다거나, 하나님이 유일신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마치 자기가 엄청 잘난 사람으로 생각 한단 말이다. 물론 다른 사람에 비교를 한다면 그럴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랑 비교한다면? 아마 개미랑 블랙홀의 싸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준비한 계획이 있으시다면, 그것은 이루어 진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의사나 다른 것이 되려고 했는데 하나님의 이끄심으로 인해 목자가 된 경우가 많다. 내가 뭘 정하던, 당신이 뭘 정하던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에 반한다면 그것은 이루어 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 또한 많이 받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도가 왜 필요한지와 믿음을 보이는 것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의 소통 수단이다. 내가 때를 쓸 수도 있고, 대화를 할 수도 있듯이 기도는 단순한 소통 수단 이기에 기도로써 믿음을 보여줄 수는 없다. 또한, 누구한테 믿음을 보여야 하는가.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믿음 레벨을 알고 계시고, 신앙은 다른 사람들과는 별개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필요로 하시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을 도와준다는 것은, 네 살짜리 꼬맹이가 공사판에 가서 아빠를 도와주겠다고 옆에서 에너지 파를 쏘는 것과 같다. 세상에 넘치는 게 사람이고 하나님을 따를 자는 줄을 서있다. 내가 특별할 게 무엇이 있는가. 만약 내가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난 하나님과 예수님을 따르기로 했고, 그분의 연장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겠다. 아주 잘나가는 치과가 있다. 모든 것이 무인이고, 아주 멋진, 그런 치과이다. 이런 사람이 필요 없는 곳에 불경기 때 취직서를 내는 것이랑 같다. 적은 돈이라도 받으면서 일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은혜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은혜이기에 취직한 사람은 더욱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언제든지 잘릴 수 있으니까.

그 사람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것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일 가능성이 많다. 사람은, 어떤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이 생긴다면, 그것을 위해, 또 그 사람을 위해 여러 가지를 한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 함으로써 거짓말을 그쳤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해서 부정을 저지르는 등 죄를 지을 수도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즉,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기에, 그 분을 존경하고 사랑한다면, 그분이 내 삶에 정점에 있는 존재라면, 악한 행동을 하지 않거나, 않으려고, 고치려고 다분히 노력 하는 모습이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죄에 대한 컨트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죄를 짓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생각도 안 하면 좋지만, 인간은 죄의 동물이기에 성적인 생각이나 소유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다. 이럴 경우, 죄에 대한 컨트롤 이 있다는 것은, 욕망은 있지만, 어느 경우에서도 내가 그 욕망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가 나를 갑자기 덮칠 경우, 내가 그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되 죄악을 행하지 않는 선을 딱 그을 수 있다면, 그것은 가히 성적 욕구를 제어 할 수 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유투브에 나와서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따르며 이런 저런 악행을 저지르므로 예수님도 악하다 라는 것은 기독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기반된 오해인 것이다.

내가 어떤 것을 잘 모르면서 그것에 대한 판단을 한다면, 그것 만큼 바보 같은 짓도 없을 것이다. 내가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기독교를 판단하기 전에 성경을 십 분의 일만 읽어 보라는 것이다. 창세기던, 욥기던, 성경에 십 분의 일만 읽어도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나 같이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도 성경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성령을 믿게 되고, 이미 육체적으로 죽은 지 오래 된 예수님을 믿고, 어떻게 생겼는지 조차 보여주시지 않은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었다. 어떠한 종교를 그 종교의 신자들로 판단한다라는 생각이 성립되는 종교는 아마 기독교밖에는 없을 것이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네가 예수를 따른다면 그와 비슷하게 변할 것이다” 라는 부분은, 많은 죄 짓는 교인들을 예수님처럼 생각 하게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잊으면 안 되는 것은, 예수님은 죄를 짓게 돕는 원죄가 존재 하지 않은 분 이시라는 것이다. 즉, 우리 죄 많은 인간과는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그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것, 또 그것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절대로 우리는 깨끗하고 너희는 더럽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과 무교인의 다른 점은, 기독교인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무교는 죄인 이여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진다는 점이다.

부모의 역할은 여러 가지가 있다. 마치 주변에 있는 그 어느 사람처럼 정해진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는 아이의 신앙을 위한 보호막과 신앙을 지도하는 선생님이 될 수도 있고, 우리에게 경각심을 주거나 혼을 내는 가디언 역할, 아니면 우리에게 시련을 주는, 그러나 시련을 통해서 우리를 자라게 해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사실 기독교 부모라면 아이를 이끌어 주고 아이의 신앙심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사실 그 부모가 어떠한 역할을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아마 종교에서 멀어졌으니 세상에 것을 추구하는 아이로 만들려고 할지도 모른다.

내가 하나님을 따르는 자인지 아닌지를 아는 방법은 크게 세가지가 있다. 나에게 물어보는 방법, 남에게 물어보는 방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 & 예수님 & 성령님께 물어보는 것이다. 먼저 나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나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 하는 대답에 “나는 믿지 않는다.” 라고 대답했다면, 다른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은 사실상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은 나의 가짜 모습이라는 답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 다음은 주변의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성경에는, 너희가 만약 예수님처럼 행한다면 그것이 세상 사람들의 행동과는 다를 것이기에 그들이 신기하게 여기고 호기심을 가질 것이라고 나와있다. 만약에 내가 기독교인 이라고 하지만 다른 사람이 난 가짜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과연 기독교인이라고 말만 하고 행동으로 따르지 않는 자인지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이제 만약에 나도 내가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고 남들도 나를 좋은 기독교인이라고 생각 한다면, 예수님께, 또 하나님께 물어볼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제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그리고 “저는 천국에 가게 될 것입니까” 이다. 아마 기독교를 조금 아는 사람들은 이 두 가지를 같은 질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도 천국에 가지 못하게 될 수 있다. 내가 자살을 한다거나 등등 반드시 지옥을 갈 수 밖에 없는 일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 네가 나의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킬 지라도 네가 심판 받을 때에 너를 모른 척 하리라” 라는 말씀이 있다. 즉, 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 능력이 아니라, 기적을 행하고 그것이 나와 내 주변사람은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 라는 증명으로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내 마음의 중심이 예수님이 아니라면, 우리의 육이 죽어 영이 심판을 받을 때에 예수님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나의 믿음을 알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종류의 존재에게 물어봐야 한다. 나 자신, 내 주변사람, 그리고 영적인 존재이다.

최근에 이성애자, 양성애자, 동성애자, 성 소수자 (?) 등등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아서 약간의 개인적 사고가 들어간 답변을 쓰려고 한다. 먼저 기본부터 다지도록 하자. 사랑에는 세가지 종류가 있다. 에로스, 플라토닉, 그리고 아가페이다. 에로스적 사랑은 섹스, 혹은 성적인 사랑이다. 어떤 여자가 좋은 이유가 가슴이나 특정 성적인 부위가 좋아서라면, 이것은 그가 여자를 에로스 적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플라토닉적 사랑은 육체적이 아는, 온전히 정신적인 의존과 사귐을 의미한다. 완전한 친구 관계가 그것이다. 아가페는 사실 조금 복잡하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영적인 사랑이라고,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배 푸는 사랑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뜻은 인간은 아가페 적인 사랑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저자의 생각은 약간 다르다. 아가페 사랑은 남을 이유 없이 신경 써주고, 받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을 도와주고 생각하는 마음, 즉 순수한 헌신적인, 자기희생적인 사랑이다. 문제는, 사람들은 많은 문제들을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 대중적인 것만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보통, 동성애자라고 하면 가장 먼저, 혹은 나중에라도 떠오르는 이미지가 “성관계” 이다. 성적으로 매우 타락한 이 세대에서는, __애자라고만 하면 사실 성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 양의 동성애자들은 서로를 에로스적인 관계를 배제한 나머지 두 개의 사랑으로 서로를 챙겨준다. 이것은 과연 죄인가? 모든 사람은 양성애자 라는 것에 반대를 하는 기독교인들이 있다. __애자라는 것은 그 사람에게 성적인 관심만을 준다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고 했고, 세상에 성별은 단 두 가지 밖에 없으니 모든 사람이 양성애자 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 동성애 커플이 서로를 사랑하는 이유가 성적이지 않다면, 이것이 죄가 될 이유가 없다. 여기서 말하는 성적은, 성적인 행위 뿐만이 아니라 생각을, 마음을 말한다. 예를 들어, 내가 아주 친한, 나의 모든 것인 동성 친구가 있고, 그 친구도 나를 같게 생각하여 우리 자신을 “동성애자” 라 칭한다면, “동성애자”가 되는 그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즉, 우리의 죄스러운 마음, 성적인 마음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배우자를 배프 라고 칭하는 이성애자처럼, 동성애자도 자신의 베프를 쌍방의 동의 하에 배우자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커뮤니케이션 문제일 가능성이 있다. 인간에게 원죄는 존재한다. 사실 하나님을 직접 만나서 죄 사함을 받지 않은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전부 지옥으로 갔을 것이라고 생각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모든 율법을 지켜 범죄 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피에 남아있는 “원죄”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원죄를 사함 받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 갈수 없다. 원죄는 가히 가장 강한 죄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원죄는 어떤 선행을 함으로도 그 선행에 해당되는 것이 없기에 원죄는 인간의 힘으로 사함을 받을 수 없다. 예수님이 하신 것은 죽음으로써 원죄를 사라지게 하신 것이 아니라 원죄가 정죄됨을 없애신 것이다. 즉, 원죄는 남아있으나, 그것이 더 이상 인간과 하나님을 떨어뜨리는 “죄” 가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죄의 속성인 죄 부추김은 그대로 있기에 우리는 원죄에 부가적인, 회개 전에는 사함 받지 못하는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한 줄 요약을 하자면, 원죄는 그대로 존재하나 원죄로 인하여 정죄 받는 일이 없어진 것이다.

기독교적 믿음뿐만이 아니라 많은 종교의 믿음을 지성적, 영적, 그리고 심적인 부분으로 나뉠 수 있다. 지성적 믿음이란 앎으로써 믿는 것, 영적이란 인도하심으로 믿는 것, 그리고 심적이란 의존하고 믿어야 할 것 같은 느낌에, 그리고 깨끗한 느낌에 믿는 것이다. 이 세가지 중 하나라도 빠지게 된다면 진정한 기독교인이라고 할수 없을 뿐더러, 각각 이 세가지가 서로 다른 방법으로 믿음에 영향을 미치기에 빠진다면 그 영역에 사탄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많은 사람들은 지적인 대화를 좋아 하지 않는다. 물론 내 주변에는 나와 기꺼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어줄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이 나와의 대화를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는 다는 것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적인 대화를 시작 하려 하면 이러한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아마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취존” 때문일 것이다. 즉 상대방에게 “네가 말하고 믿고 싶은 것을 해라. 난 내 것을 믿겠다” 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사실상 상대방의 말을 들어는 주되 닫힌 마음으로 듣게 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심지어 내가 있는 모 교회의 반 선생님 중 한 분은 내가 무언가 말을 하면 태클 걸기를 바삐 하시고 내가 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고려하지 않으시며 심지어 내가 성경에서 옳은 대답을 가져온다고 해도 내가 어려서인지 나의 말을 도통 믿으려고 하지 않으신다.

지적인 믿음은 나의 믿음을 지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지식만 있으면 되겠지만,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지식이 필요하다. 이 세상은 비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 보다 많은 세상이다. 그들이 물어보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여 나 자신의 믿음이 멀어진다면 어쩔 것인가? 남을 불구덩이에서 꺼내기 전에 내가 먼저 나와야 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기독교 교리이다. 내가 희생을 해서 지옥가면 누가 알아주고 누가 도와주겠는가. 동성, 이성, 양성애 문제 때문에 자신을 기독교인 될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며, 자살해서 천국 가겠다고 시도를 한 내 주변인이 한둘이 아니다. 교회 선생님 들은 도대체 존재하는 이유가 뭔가?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는 것이 틀렸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으며 시험을 하나님께서 주시매 자신이, 혹은 주변사람의 안 좋은 일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지를 않나, 성경에도 빤히 나오는 구절을 세상과 맞지 않다고 틀렸다고 하는 모태 신앙들은 도대체 수년간 교회에서 무엇을 들었단 말인가? 사람들이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하고 옳은 말을 하는 것이 기독교인 된 마음가짐이라고 늘 생각을 하지만, 가끔씩 “빨리 저리가” 라는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 에게 지성을 갈구하는 마음이 절대 오지 않게 저주 하고 싶고픈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지식으로 나의 믿음을 지키라.

영성은 사실 내 전문은 아니다. 나는 기도의 위력과, 정확히 말하면 예수 이름의 힘이지만, 나를 인도하시는 성령이라는 존재가 실제 한다고 믿는다. 실제로 여러 이상한 일이 일어난 적도 있고, 또 영성의 반대(?) 라고 할 수 있는 마성도 느껴보았기에 영적으로도 믿음이 가는 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심령사진을 장난으로만 취급하는 세상에서, 아키아나와 콜튼의 꿈 이야기를 단순한 우연으로 생각하는 세상에서 영성을 따진 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영성은 나의 믿음 보다는 나의 생각과 행동을 지킨다고 한다면 좀더 말이 될 것 이다. 영성을 받는 순간 죽었던 양심이 생겨나고, 나의 말과 행동이 저절로 바뀌게 되게 된다.

심성은 내가 주를 사랑하며 의지 하는 것이다. 나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이기도 하다. 심성의 중요성은 행함이다. 행함으로써 무엇을 얻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은 내가 나 보다 더 아끼고 좋아하는 것이 존재해야만 한다. 공부던, 이 미천한 글쓰기던, 나는 나를 위해서, 내가 칭찬받기 위해서, 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하여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음으로 주를 믿는 다는 것은 모든 것을 그에게 준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신부” 의 역할을 한다는 것과 동일시 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질답 34

질문: 천국과 지옥에 관하여.

많은 사람들은 지옥을 “불구덩이” 혹은 “영원한 고통”이 있는 곳으로 생각을 한다. 또 천국을 “낙원” “고통 없는 곳”, 혹은 “언제나 행복한 곳”으로 표현한다. 나는 사실 이것이 틀린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천국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천국에도 슬퍼할 일이 있다. 성경에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거지 나사로는 분명히 슬퍼했다. 즉, 천국에는 슬픔이 없다가 아닌 천국에는 자신을 향한 슬픔, 걱정, 근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옥에 있는 자들이나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을 걱정하고, 슬퍼하고, 근심한다는 것, 즉 천국도 슬픔, 걱정, 그리고 근심이 존재 한다는 것이다.

물론 천국은 분명 좋은 곳임에는 틀림이 없다. 내가 더 이상 나 자신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기에 남을 향해 아낌없이 베풀고 교제를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며, 세상에서는 절대로 먹지 못할 생명의 물이나 생명나무 의 열매 등등을 먹을 수 있을 것이며, 색다른 음식을 경험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천국의 정확한 뜻은 낙원이 아니다. 낙원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떠한 사람에게는 여자가 많고 자신의 체력이 지치지 않는 곳이 낙원 일 것이고, 누구에게는 먹는 것이 풍부한 곳, 단것이 많은 곳, 자신의 가족이 있는 곳, 등등 낙원이라는 말은 너무나도 광범위 한 말이고, 낙원에서 행하는 일은 죄일 수도 있다. 천국의 정확한 뜻은 “신의 존재” 이다. 절대 선의 존재에 살아 있기에 천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선”할 수 밖에 없다. 좀 더 쉽게 이야기 하자면, 선하지 않은 모든 존재를 없애버리시는 절대 선의 임재에서 사라지지 않고 존재 한다는 것은 나, 혹은 거기에 있는 모든 영혼들이 완벽하게 선하다는 이야기다. 말 그대로 어쩌면 유토피아 일 것이다. 서로를 위하고 모든 것이 주어진 그런 유토피아.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보다 남을 생각 할 것이기 때문에 아이러니 하게도 나에게 오는 사랑과 관심은 내가 나 혼자만을 챙겼을 때보다 더 많을 것이다.

천국이 만약 “신의 존재”가 있는 곳이라면 지옥은 “신의 부재” 를 의미하며, 그것은 결국 “선”의 부재를 의미한다. 또한 “선”의 부재는 “악”의 임재를 뜻하며 지옥에서는 “악”한 것이 옳은 것이 됨을 의미한다. 만일 “선”과 “악”을 어떠한 법에 따르고 따르지 않는 것이라고 정한다면, 지옥에서는 “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되는 셈이다. 일단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인간의 삼대 욕망이다. 성욕, 물욕, 식욕인데, 이 세가지가 모두 굉장히 활성화 될 것이다. 이 세가지를 마음껏 해소 할 수 있을 것이며, 약육강식이 성립이 될 것이고, 성욕, 물욕 식욕을 채우는 쪽은 언제나 고위 악마, 혹은 사탄 자신의 몫일 것이다. 내가 만일 지옥에 간다면, 영원토록 강간을 당하고 갈취를 당하며, 영적인 살점이 뜯겨 나갈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야 불구덩이에서 영원이 타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이야기 하겠지만, 현재로써는 그것보다 더 극심한 고통을, 또 재미까지 보는 방법이 많다. 사람이 만일 절대로 죽지 않는 다고 가정을 할 때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사람의 피부는 세가지 겹이 있다. 그 중에서 첫 번째 겹만 벗겨낸 후, 사람을 통째로 아주 짠 소금과 아주 매운 고춧가루를 탄 물에 넣는다. 그 후에 몸에 있는 100여 개의 통점을 하나 하나 베어낸 후에 다시 한번 그 위에 고춧가루를 뿌린다. 그렇게 된다면 영원히, 온몸의 통점에 지속적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한 다음에 무차별 적으로 팬다. 이미 짓물러지고 터진 살인데, 지속적인 구타를 견딜 리는 없다. 그러나 정신은 말짱하고 죽을 수도 없다. 강간을 그 상태에서 당할 것이며 온몸의 장기가 뒤집어 질 만한 고통을 느낄 것이고, 그것이 끝난 후에 불구덩이에서 잠시간의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위 존재들의 사리사욕을 위하여 노동을 갈취 당할 것이고, 쉴 틈이라는 것은 존재 하지 않을 것이다.

위 이야기는 그저 상상에 불과 한다. 절대 악이 지배하는 세상은 내가 만일 강자라면 굉장히 즐거울 것이나 내가 약자라면 절대 가고 싶지 않은 곳일 것이다.

그냥 간단하게 생각하자. 천국은 절대 선이 지배하는 곳이며 자신에 대한 걱정과 근심이 없는 곳, 지옥은 절대 악이 지배하는 곳이며 내가 약자고 갈취 당하고 고통 받는 곳이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