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medy Dec 11. 2016

일기 – 그림

Amanda Cass

일기 – 그림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이나 그림 쪽으로의 재능은 거의 없다시피 했었다. 지금 하는 비올라도 어렸을 때부터 어거지로 하다 보니 어쩌다가 는 것이다. 나의 미술 실력은 마치 초등학생의 그림을 옆에 두면 피카소가 그린 것 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가졌다고나 할까. 여담으로 내 동생은 나에게 “오빠는 졸라맨도 못 그려?” 라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그랬기에 나에게 콘서트 라던지 미술관 관람 이라던지 하는 곳 들은 너무나도 지루하고 심심할 뿐이다. 미술관에서 나는 주로 가장 비싼 그림과 가장 싼 그림을 찾아 다니곤 하고 아름다운 클라시클 뮤직 콘서트를 볼 때는 각 사람들이 내는 소리를 알아내는 일종의 이어트레이닝을 한다. 박물관도 마찬가지 인데, 딱히 내가 관심이 가는 것도 없고, 과학 박물관은 학교에서 질리도록 가봐서 대충 다 아는 것들이라 새로울 것도 없었기도 하고 사람들과 발걸음을 맞추는 것을 잘 못했던 옛날에는 혼자서 빠르게 여기저기 둘러 다니는 것에 익숙하다 보니 선생님보다 훨씬 앞서서 가다가 혼나고 해서 좋지 않은 프레임이 생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에게도 정말 취향 저격인 그림들을 그리는 화가가 몇 있다. 최근 “끝난 사랑”과 “희망”이라는 주제로 이것 저것 찾아볼 기회가 생겼고, 그것들을 찾고 파일링을 하다가 찾은 아만다 카스의 그림들은 나의 톡 쏘는 외로움 이라는 정서에 딱 맞는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었다. 


나는 그림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녀의 그림은 대략 두 가지로 나뉜다. 우울한 회색 배경의 그림과 귀엽고 애틋한 초록 배경의 그림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회색이 좋아서 우울한 배경의 것들이 더 마음에 드는 듯 하다. 나는 단 한번도 그림을 소장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한적이 없는데, 카스의 그림들을 보니 그 중 몇 개는 내가 나중에 집을 사면 내 방에 걸어두고 싶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할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그림들은 다른 그림들과는 다르게 제목과 정확하게 부합하기 보다는 제목 말고도 다른 의미로 해석 될 여지를 다분히 준다. 예를 들어 그녀의 그림 “Mates for Life”는 상반신은 인간이지만 하반신은 해마인 남녀가 서로를 부둥켜 안고 있는 그림인데, 나에게는 이 둘이 비슷해서 잘 맞는 다는 해석 보다는 인간도 아니고 해마도 아니기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생각 했던 사람 둘이 만나 서로에게 속해지는 그 어떤 과정을 보았기에 마음에 들었다. 또 다른 그림인 “Dilemma”는 어떤 여성이 나무 높이 매달려 있는 누군가의 심장을 가지고 싶지만 그것을 막아서는 새들이 두려워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는 그림이다. 내가 이 그림을 마음에 들어 하는 이유는 언제나 마음보다 두려움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공감이 되어서도 있지만 이 여인의 눈이 새들에게 가있는 것인지 하트에 가있는 것인지 정확하게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마 더 크고 더 소중하고 자신에게 더 임팩트 있는 것을 보고 있지 않을까? 아마 저 그림의 여성이 나였다면 나는 나무를 올라가 사랑을 취하는 방법을 생각하기 보다는 새들의 쪼임이 얼마나 아플까 계산하고 있지 않을까. 


“Love in Abundance”라는 작품도 정말 좋다. 많은 사랑에 매달려 있는 여자아이는 검은색 배경과 붉은 꽃들의 조화인지는 몰라도 슬프고 지쳐 보인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위해서 조종당하는 퍼펫의 모습을 그리려고 한지도 모른다. 많은 사랑은 힘든 것이라고, 적당히 원해야 한다고 경고해 주는 것일까? 또 작품의 꽃들이 누워있는 방향과 아이의 머리칼이 날리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보아 다른 사람의 사랑이 미치는 곳의 방향과 미치지 않는 발끝의 바람의 방향이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녀가 가고 싶어하는 곳과 이끌려 지는 곳이 다른 곳은 아닐까. 


“Words from the Heart”은 생각을 좀 하게 만드는 그런 그림이다. 커다란 책에 있는 “사랑”, “꿈”, “희망”, “자유”, “행복”, “소중함” 등이 써져 있지만 정작 그 글을 쓴 여자아이는 축 처진 앙상한 몸으로 마치 죽은 듯이 앉아있다. 그래, 사랑이니 꿈이니 희망이니 하는 것들을 말하기는 하지만 마음까지 그런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 축 처진 나의 모습은 보지 말고 이 커다란 책을 봐 주었으면, 좋은 것과 행복한 것, 즐겁고 발랄한 무언가만 봐주기를 커다란 책 뒤에 숨은 아이는 바라고 있지 않을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 작품은 그녀의 “A Place to Dream”과 “My Mind May Wonder but My Heart Stays in Place”이다. A Place to Dream은 그녀가 자주 쓰는 빨간 꽃과 그 아름다운 색을 잃어버린 꽃 가운데에 앉아있는 소녀의 모습을 그렸다. 부와 지혜를 상징하는 부엉이, 그리고 창살에 갇힌 사랑 역시 그 두 색의 경계점에 소녀와 있다는 것을 보고 소녀는 어쩌면 사랑을 부와 지혜 때문에 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교묘하게 그녀의 상체는 빨간 꽃에, 그녀의 하체는 회색 꽃에 놓이게 한 것을 보면 이 아이는 지금 결정을 두려워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자신은 결정하지 않고 그녀 머리칼에 매달린 두 까마귀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는 듯이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은 내가 결정하지 못할 때의 모습과도 매우 흡사해서, 또 그럴 때 저런 분위기가 있는 곳들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무언가 공감이 된다 랄까. 마지막으로 Mind May Wonder but My Heart Stays in Place는 유일하게 사랑이 아닌 뇌가 밖으로 나와있는 그림이다. 이상하게도 여기에서의 소녀는 마음이, 사랑이 밖으로 나와있을 때 보다 더 행복해 보인다. 이성 따위는 하늘로 날려보내고 마음을 따라라 라는 메시지는, 제목이 알려주듯이, 카스양이 원하시는 해독은 아니겠지만 나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경외심과 욕망은 이 그림을 보고 “부럽다” 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생각을 하지 않고 마음이 따르는 대로. 나에게 이것은 무식하고 저돌적인 것이겠지만 가끔은 이렇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아만다 카스의 그림을 좋아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그녀의 작품에서 항상 나오는 여자아이는 배경이 슬프던 행복하던 무섭던 기괴하던 항상 무표정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표정이 무표정이기에 그녀의 감정과 배경은 수 만 가지의 의미를 가질 수 있고, 자신만의 색을 가질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그림들은 회색과 빨간 색을 같이 쓴다. 사람이 겪게 되는 복합적인 희로애락을 잘 표현 한 것 같기도 하고, 이것들이 모여서 신기하게도 기분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하게 되는 신비로운 작품을 만든 것 같다. 


 하여튼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림에 대해서 써 봤다. 이렇게 나름 진지하게 화가와 그림에 대해서 생각하고 느끼고 부러워 한 건 처음이다. 나중에 집에 쭉 나열해 놓을까? 하다가 대부분 우울한 감정을 지닌 그림들이라…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또 다른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