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medy Dec 22. 2016

나는 어째서 최선을…– 기도

기도 같지 않은 기도

나는 어째서 최선을…– 기도


나는 어째서 더 해야 하는가. 이 상태에서 머무르고, 이 상태에서 더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는가. 왜 나는 더 희생해야 하고 더 생각해야 하고 더 배우고 더 착해지고 더 쉬지 않고 더 성실해야 하며 더 사랑해야 하고 더 믿어야 하며 더, 더 살아야 하는가.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여전히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몸이 부셔질 정도로 운동한 것도 예전이고, 몸과 마음을 다해 기도한 것도 옛말이며, 성경에 목맨 것도, 그들에게 따뜻한 마음이 든 것도, 참을성이 많았던 것도, 전부 오래 전 이야기이다. 공부는 바닥에 믿음은 아는 것도 없이 설치는 딱 그 수준, 언행은 거칠고 눈은 흐리멍텅하며 심지어 없던 뱃살까지. 한동안 따듯했던 마음은 차갑고 무뎌지고 또 날카롭게 변하고, 이걸 원하지 않는 나는 여전히 신을 외면하고 있다. 


나는 기도한다. 주여, 어째서 저에게 이것을 하라고 하십니까, 그 누구도 제가 이것을 감당해 낼 것이라고 생각치 않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저는 나약하고 한없이 구린 존재이며, 배우지 못하는 반푼이고 말라 비틀어진 병신이며 머리는 빈 양철통에 동전 하나 들어있듯 큰 소리만 낼 줄 압니다. 노래도 못하고 비올라도 비트박스도, 그 어떤 것도 저는 잘하지 못합니다. 저는 게으릅니다. 저에게는 이것을 감당할 만한 그 어떤 재주도 없습니다. 아는 것이 많아 보이는 제 겉면은 추악하고 추잡한 생각을 가리는 겉면 뿐 입니다. 어찌 감히 제가 그들과 말을 나누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며 같은 자리에 설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는 어부였지만 믿음이 강했고 안드레아스는 묵묵히 당신을 따랐고, 요한은 당신의 힘을 쓸 줄 알았으며, 마태와 바울은 자신이 살던 삶을 버리고 죄에서 눈을 돌린채 평생을 살아갔습니다. 저는 이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입니다. 그냥, 안 되는 놈 입니다. 머리도 가슴도 한없이 작고 낮아 내려가는 것만 아는 죄 많은 사람일 뿐입니다. 저는 못합니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대었다. 내가 그들과 같이 되지 못하는 이유, 내가 지식을 습득하지 못하고 약한 믿음으로, 고작 그 정도 에서 멈춰야 하는 이유는 언제나 같았다. “그들은 그들이기에 가능한 것 입니다”. 도망치고 싶었다. 최선을 다해 도망쳤다. 마치 벌거벗은 자신을 들킨 초대 인간부부 처럼, 아니 그보다 더 멀리, 더 빠르게, 멈추지 않고 도망을 갔다. 도망가지 않고 따라가면 맞서야 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고, 도망을 간 만큼 따라잡아야 하기에,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나는 죽을 힘을 다해 도망을 갔다. 


도망을 가면서 나는 수많은 것들을 잃었지만 이미 합리화에 빠진 나의 머리와 믿음은 내가 좋은 기독교인 이라고,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래, 나는 내 주변 또래보다 성경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은 것 같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 나는 내 주변 또래보다 비트박스도, 비올라도, 바랭도, 말도 잘한다. 그럼 된 것 아닌가? 나름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을 하고, 나름 봉사도 하고, 나름 가르쳐도 보고, 그냥 주변의 사람들 보다 조금 더 나은 기독교인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이렇게 항상 도망치던 나는 수만번 채이고 넘어지고 구르고 나서야 후회를 했다. 그리고, 후회하기에는 시간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꽤나 절실한 마음이 들었다. 시간도 힘도 능력도 돈도 믿음도 나는 그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기도를 하니 두렵습니다, 나약합니다, 무섭습니다,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밖에 나오지를 않았다. 그리고, 응답을 드디어 받게 되었다.


응답은 간단하다. “나는 너의 최선을 원한다”. 이 간단하고도 두려운 진리는 나를 오랜 시간 생각하게 만들었다. 최선. 최선이라. 


하나님은 반쪽을 원하시지 않는 다는 것을 나는 오래 전부터 귀가 뚫리도록 들은 터라 잘 알고 있었다. 반은 세상에, 반은 그에게 놓는 것은 아무것도 놓지 않은 것과 같다. 그래서 조심스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고 그에게 순종을 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사탄은 내가 잽과 어퍼컷을 미친듯이 날려댔다. 하도 많이 맞아본 터라 참았지만, 이번 건 질이 너무나도 달랐다. 오랜 기간 참아오고 마치 압력 밥솥처럼 눌려있던 무언가를 펑 하고 터뜨려 버린 것이다. 나는 그리고 2일 동안, 난생 처음으로, 미친 듯이 물똥을 쌌다. 사람이 화가 나고 낙심하면 토하고 설사한다는 걸 나는 비웃었는데, 막상 그 당사자가 되고 나니 글쎄… 이제는 비웃 수 없겠구나, 웃을 수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내가 느낀 것과 얻은 것을 말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나의 기도와 믿음은 핑계일 뿐이다. 조금만 말해도 나는 잘난척을 하는 애고, 어쩌다가 성경공부 하면 순장질에 미친놈 이랜다. 내 말은 일절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내가 어떻게 낸 용기인데, 내가 왜 지킴에서 봉사를 하고 왜 순장을 하는지, 이게 얼마나 나에게 미친 짓이며, 힘든 결정에 무섭고 두렵고 도망치고 싶은 건지 알아주지 않는다. 


풋 하고 웃음이 날 뿐이다. 거 봐요, 달라지지 않잖아요. 


응답이 왔다. “달라지는 건 너다. 넌 최선을 다했니?”


하지만 왜 저만 달라져야 해요? 저들은요? 저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에게 그만 좀 던지고 옆에서 위로해주고 받쳐주라고 해주시면 안돼요? 왜 제가 가장 의지하고 믿어야 할 사람들을 제가 껄끄럽고 덜 친한 사람들 보다 두려워 해야 해요? 왜 저들은 돌을 던지고 저는 참아야 해요? 


“네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라는 응답이 들려왔다. 


하나님은, 예수님은 내가 변하시기를 원하시는 구나. 저들이 바뀌는 것은 내 소관이 아니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바뀌는 일 뿐이구나. 내가 나아가고 믿기를 원하시는 구나. 


내가 최선을 다하시기를 원하시는 구나. 


다시 한번 같은 변명을 되풀이 했다. 전 쓰레기라니까요. 전 못해요. 대가리가 병신이에요. 체력도 정신력도 부족해요. 등등 수만번은 했던 변명에 살을 붙여 고도비만을 만든다. 


그러나 저런 변명을 하는 중에 무언가가 느껴진다. 아… 상관이 없구나. 그저 나의 최선이면 되는 거구나. 못나고 못나고 못난 나의 최선이면 되는 구나. 못할 수가 없구나. 부모의 최선도 목사의 최선도 순장의 최선도 대통령의 최선도 아닌, 그저 나의 최선이여야 하는구나. 


못한다는 건 핑계였구나.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여전히 사탄은 잽 훅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폭행을 가한다. 반격도 못하는 어린 아이를, 태어난지 4년 밖에 되지 않는 아이를 그는 미친 듯이 후드려 팬다. 나는 비록 쉴지라도 다음 걸음을 준비하고 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하는 순간 훅 떠밀려 지금까지 나아온 만큼 되 밀리기도 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최선을 다하지 않은 발걸음은 쓸모가 없다는 듯이. 


그렇게 난, 날리고, 떠밀리고, 맞으며 온몸의 근육을 사용하여 한 걸음씩 나아가는 삶을 선택하고 싶다. 

다시는 떠밀리지 않도록. 

J+


매거진의 이전글 일기 – 그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