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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medy Sep 20. 2016

또 다른 일기

설교&이사

설교&이사 


Hospitality


나는 나름 최근에 토론토로 이사를 왔다. 이사에 대한 글은 여러 개쓰기 시작했으나 지우고 다시 쓰고 약10번 정도 해봐도 대부분 징징거림이나 투덜거림으로 끝나서 딱히올리고 싶지가 않아서 올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정말 고맙게도, N 교회를간 후에 무언가 쓸 여유가 생겼다. 


N교회는 매우 큰 교회이다. 내가이전에 다니던 그 어떤 교회보다 복잡한 내부 구조와 큰 빌딩과 다수의 주차장을 보유 하고 있다. 수련회장소도 하나 지어서 보유하고 있기도 한 이 거대한 교회는 나의 토론토 적응기 중에 나름의 용기를 내어 나아간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청년부 영어 예배를 갔다. 커다란 예배실에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내심 한 명이라도 나한테 말을 걸어주겠지 하는 헛된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내가 새로 왔다는 것 조차도 모르지 않나 싶다. 청년부가 약 450명이라고하는데 그 중에 존재감 없는 사람 하나가 왔으니 뭐 티라도 나겠는가. 예배실이 거의 꽉 찰 때가지 기다린후에 찬양팀이 나왔다. 


찬양팀은 가히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보컬4명, 일렉1명, 베이스1명, 드럼1명, 키보드 2명에 기타 2명이라는 무슨 인해전술 같은 숫자와 번쩍이는 악기들, 그리고 마치샤먼에 의해 좀비가 되어버린 사람 마냥 서있는 찬양팀은 숫자는 적었지만 늘 생기있고 리드를 잘하는 우리 교회 형 누나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그래, 생기가 뭐가 중요하나 라는 생각으로 노래를 부를 준비를 했는데, 아이고, 450명이 있는 예배실 치고 사람들의 노래소리가 너무 작은것 아닌가. 사실 450명 이상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게, 450명의 청년과 약 100명 가량의 부모들도 함께하는 합동예배였기때문이다. 그러나 이 550명의 소리는 50명의 사람들의 노래 소리보다 작았다. 마치 리치에게 모든 생명력을빨려버린 것 처럼, 디멘터에게 모든 행복한 기억을 빼앗긴 듯한 분위기는 정나미가 떨어지는 느낌 이였다. 나의 목소리는 언제나 소리 크기로 치자면 톱5위 안에는 들곤 했는데이 교회에서는 1위는 쉽게 차지할 것 같은 개미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니 안 그래도 목소리에 자신이 없는나는 눈치를 더 보고 작게 노래 부르거나 조용히 하거나 해야 했다. 


연주를 할 때 박자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청중을 휘어잡는연주(라고 쓰고 찬양이라고 읽는)는 같은 박자로 메트로놈처럼딱딱 지킬 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빨라지고 느려지고하면서 청중의 감정과 고조감을 높혔다 낮췄다 하며 군중의 감정과 느낌을 리더의 느낌과 감정과 동화되게 해야 하는데, 이 찬양팀의 찬양은 그냥 톡톡톡톡 하는 死/死박자 메트로놈 같았다.물론 그들이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내 취향이 아니라는 것 뿐이기는 하다. 


목사님의 설교는 Hospitality에 대한 것과 약간의 교회 자랑이섞인 무언가 였다. Hospitality란 모르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이고,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이 자신이 벗었고 배고프고 목말랐을 때 나를 입히고 먹여주고 했다 라는 본문에 Hospitality가, 또 사도 바울이 보낸 편지에도 Hospitality를 숙지해라 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하시고, 그 외의설교는 자신이 속해있는 이 N교회가 얼마나 대단하고 멋있는 곳인지에 대해 설명하셨다. 


450명의 청년중에 80% 가량이일종의 봉사활동에 참여 하고 있고, 그 중에 50명 이상은3개 이상의 봉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또 자신이 속해 있는 교회는새로운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게 Hospitality를 잘 실천하는 곳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이 말을 들은 나는 헛웃음만 나왔다. Hospitality라는 것은아는 사람에게 잘 해주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정 가운데에 앉았기에 처음 보는이상한 사람이 왔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을 테고,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낮은 알토 목소리를 들었을 것 이 뻔함에도 불구하고 그450명 중 단 한 명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내 교회에서는 그렇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450명 중에는 50명의 사람들보다 나은 사람이, 적어도 Hospitality의 면에서는, 없는 셈이다. 


Hospitality는 어떤 사람을 자신이 편안하게 느끼는 영역 밖으로갈 것을 요구한다. 모르는 사람, 배고픈 사람에게 도움을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시간과 돈과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간과돈과 용기 안에서만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예수님이 가라고 하신 사람들에게 Hospitality를 베풀수 없는 경우가 많다. 


내가 과연 내가 원하는 교회를 찾을 수 있을지에 관한 의문이든다. 물론 A교회의 영어,한국어 예배와 N교회의 청년1,2부를 가보고이야기를 해야 하지만, 큰 교회는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일종의 고정관념이 바뀔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

Hospitality는 한국어로 “접대”이다. 물론 ity로 끝나는말들은 일종의 상태나 어떠한 형질을 이야기 하기 때문에 더 정확한 의미는 “접대하는 마음” 일 것이다. 접대는 대접과는 의미가 다르다. 접대는 “손님을 맞아서 시중을 드는 것”이고 대접은 “사람을 맞이할 때 합당한 대우를 하는 것”으로, 접대를 한다는 표현은 주인이 손님보다 낮아짐을 의미하지만 대접은손님과 주인의 동일한 위치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더욱 정확한 뜻은 “손님을맞아서 시중을 들려 하는 마음”이 된다. Hospitability 라는단어는 성경에 수많이 나온다. 마태복음 25장 34절은 아마 이 주제에서 가장 많이 쓰여진 구절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나는 오늘 매년 반복해서 듣는 설교가 아닌 다른 것에 대해서 쓰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접대하는 마음이 중요한 이유 이다. 


창세기 18절에는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맞이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그런데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바로, 아브라함과 사라가 여호와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창 18:1)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창 18: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창 18:3)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창 18: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창 18: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아브라함은 분명 “사람 셋”을보았다. 그들은 불타는 모습도, 천사의 모습도 아닌 평범한인간의 모습이였다. 나그네 셋도 아니고 돈 많은 사람 셋도 아닌, 그냥평범한 사람 셋인데 아브라함은 달려나와 자신을 종이라 칭하고 그들을 “접대” 하기를 원한다. 


에서 끝나는 설교는 깊이도 느낌도 없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저렇게간단하게 요약 가능한 설교를 1시간 반 동안 듣다 보면 분명 영어 설교임에도 불구하고 졸음이 오는 것을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다. 


좋은 설교를, 마음으로 하는 설교를,마음으로 노래 부르는 교회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곳이라면 내가 열심히 이야기하고 배울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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