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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medy May 01. 2018

분노와 슬픔 - 교회를 가야 하는 이유

일기

여러 달 동안 일기를 쓰며 끝맺음을 하지 못한 것들을 읽어보니 대부분 한탄, 생각, 답답함이 쌓인 이야기 없는 무언가들 이였다. 이런 글 들에는 나의 분노가 고스란이 담겨져 있었고 예전 일기와 비교했을 때 매우 공격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교회가 끔찍하게도 싫었다. 교회 집사들의 이중적인 면모는 나의 비웃음을 사기에 충분했고 한국의 장유유서 문화를 이용해 나의 맡은 바를 자기 멋대로 판단한 형 누나들은 나의 믿음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이해를 명목으로 소문을 퍼트리던 여자 집사님들은 교회 불신과 교회를 나가지 않게 되는 사람들과 함께하게 했다. "왜 이럴까"라고 묻기보다 "그건 틀린거야" 라는 지극히도 율법주의 적인 모습을 보인 전도사나 목사도 있었고 나에 대한 안 좋은 소식을 일파만파 퍼뜨려버린 누군가도 큰 몫을 했다. 


나에게 교회는 모순 그 자체였고 쓸모없는 단체의 대명사였다. 어른들, 소위 리더들은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금방 무너지고 흔들리기 쉬운 율법적인 것들을 주입 시켰고, 이에 신물이 난 청년들은 교회를 떠나갔다. 

나는 싸웠다. 알게 모르게 분노하고 안타까웠다. 이혼한 여성을, 나이차가 많이 나는 커플을, 혼전순결을 지키지 않은 남녀를, 마약 중독자를, 가난하고 냄새나는 사람을, 마음과 정신이 불안한 사람들을 판단하고 무시하고 버리는 그 반 기독교적인 사람들이 목사의 기도에 아멘거리고 마치 자신은 예수만큼이나 홀리한 존재인듯양 찬양을 하며 우는 모습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가식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했고 이들의 삶이 예수 머리카락 한올도 재연해 내지 못하는 그 현실을 자신이 인간이라서, 부족해서라고 합리화 하는 사람들이 그저 한심하게만 보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믿음을 지키려면 이정도는 해야해", "이게 가장 신을 영광케 하는 일이야". 

답답함은 쌓여만 갔다. 니들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본인 스스로의 믿음 지키기에 평생을 바치느라 정작 신이 하라고 한 일, 많은 사람들을 본인과 함께 예수 안에서 살아가라고 한 그 말은 지키지 못하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이기적이며 배타적인지 모르는 그들이 정말 한심했다. 얼마나 많은 안티 크리스천들이 교회에서 배척당한 사람들인지 교회 리더들은 알고 있을까? 모든 사람들 품어줘야만 하는 교회가 예수님이 다가가라고 한 사람들을 밀쳐낸다는 것을 그들은 자각하고 있을까? 


이런 답답함은 결국 작년에 펑 하고 터져버렸다. 사건은 내가 어느 페이스북 기독교 토론 페이지에 여성 발론티어가 보통 청소와 부엌으로 발령이 되고 남성 발론티어는 무거운 것을 들거나 테크니컬한 쪽으로 가게 되는 것의 문제점을 바쁜 와중 효율을 올리기 위해서 이면 괜찮지 않냐고, 적어도 교회 내의 모든 일에는 귀천이 없지 않냐고 질문을 한 데에서 시작이 되었다. 나의 질문은 기독교 적인 철학이나 실질적인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수시간 내에 나를 여성혐오자로 몰아가는 사람들의 글로 꽉 차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나는 몇몇 지인들과 함께 이들과 이성적인 대화를 시도해 보았으나 이루어 지지 않았고, 몇몇 목사들은 나의 글을 쉐어 해 나를 기독교인이라 부르기도 부끄러운 놈으로 소개를 했다. 


나는 허탈했다. 나는 그저 부엌일을 하는 여성과 목사의 위치는 기독교적으로 동일하며 본인들 스스로 부엌일을 깍아내리는 것과는 별개로 어떤 일이던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기에 동일하게 중요하지 않냐고 이야기 했지만 이미 나는 여성혐오자요 사회악이니 씨알도 먹힐리가 없었다. 


이 모든 상황에서 제일 충격을 먹은 것은 나 일 것이다. 교회에는 논증을 제대로 받아치거나 문제를 깊게 파고드는 사람이 매우 적었던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본인의 믿음과 그 믿음에 대한 탐구의 욕망은 일치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은 내가 어느 교회를 가던 어느 공동체에 있던 항상 일어났었고 이는 나를 분노케 했다. 나의 분노는 바로 "니들 같은 사람들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잖아!" 였던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 패러다임 깨기 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서로를 판단하는 모든 "기독교적" 기준과 패러다임을 산산조각 내고 싶었다. 신은 우리에게 타인을 판단할 자격을 단 한번도 준적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저 품어줘야 한다는 그 간단한 사실을 혼자만 살면 된다는 마인드의, 내 사람들만 챙기면 된다는 사람들의 생각을 장도리로 못을 뽑듯 뽑아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 광기에 가까운 분노로 나는 첫번째 기독교 패러다임 깨기 프로젝트를 올렸었다. 한달동안 미친놈처럼 토론을 하고 까고 부셔버릴 준비를 했고 그 인간들의 알량한 믿음을 짓밟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신은 그런 나를 한사코 말렸다. 


신은 나에게 세가지 질문을 던져주고 침묵했다. 그는 나에게 "네가 새가족팀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물었고 "네가 밀알 선교단에서 봉사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고 묻고서는 나지막하게 "네가 글을 쓰려는 이유가 이들과 같으냐" 고 물어보셨다. 


울지는 않았다.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혔을 망정, 오른쪽 눈에서 나온 눈물이, 배고 있던 인형이 따가워서 나온 눈물이 구름에 살포시 눌러앉는 기분이 들었어도 나는 울지는 않았다. 


신은 내가 슬픔으로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었다. 나의 분노가 아닌 그의 슬픔을 온전하게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내가 새가족팀을 하는 이유는 처음 와서 당황하는 새가족들이 너무 눈에 띄고 그들이 풀이 죽어 하루 종일 있다가 그 다음주에 오지 않았을 때의 슬픔을 순장을 했을 때 겪어봤기 때문이다. 내가 몇번 만나보지 못했지만 아끼게 된 형제자매들이, 나이가 많건 적건 한주 한주 오지 않는 것을 보는 건 마치 내가 슬퍼할 것을 이미 알았던 신이 "봐봐 네가 좀 더 챙겨줬으면 좋았잖아" 라고 슬픔어린 눈으로 이야기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밀알 선교단이 섬기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이 아이들이 해맑은 얼굴로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을 때 받는 눈초리를 아이들이 두려워 해야 하는 그 상황, 부모님들이 프로도 아닌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이야기 하는 그 상황이 너무나도 슬펐다. 이 글에 담기에는 조금 개인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과 부모들에게도 난 그저 슬펐다. 슬프고 답답하고 먹먹했다. 이들의 가시는 트라우마의 표출이기에 나는 감히, 감히 얼마나 많은 고통이 있었을 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슬펐다. 


신은 나에게 내가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것이다. 나는 판단하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있었다. 판단하고 배척하는 것이 죄 임을 앎에도 지식의 속삭임과 감정의 꾀임에 넘어가 나의 아픔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노를 신의 슬픔으로 승화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여전히 교회 자체를 사랑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의 모양에는 이유가 있음을 다시금 깨닫고 특정 가시를, 폭탄을, 구덩이들을 혐오가 아닌 슬픔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분노하는 어린 나를 보며 그들의 아픔에 대한 슬픔으로 관점을 바꾸는 법을 신은 깨닫게 해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교회에 간다. 나의 분노는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하는 데에 쓰일 수 있으니까, 내 아픔과 같은 것을 누구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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