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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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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medy Oct 31. 2019

마지막 편지.

일기

오랜만에 글을 써보아요. 너는 조금 쉬어도 된다는 말에 나 아닌 나에게, 수면 아래의 것들에게 멍하니 신경을 뺏겨버렸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글을 써보아요. 


요즘은 아무래도 예전보다는 조금 더 행복하다는 생각을 가끔 해요. 여전히 속앓이는 혼자서 해야 할 때가 많고 쳇바퀴 같은 삶, 망가져라도 버리던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새로운 향기, 새로운 바람, 새로운 낙엽이 내 머리에 사뿐히 내려앉아 주어서 내 귀에 울리는 찬양 만큼이나 감미로운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하루의 절반을 보내니까요. 늘 같은 향기에 취해 있어 나를 애도하지 못했던, 그런 때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충분히 아파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내가 조금 다른 이유로 아프기를 바랬던 것 같다고 이야기 해주고 싶었어요.  


삶을 게워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어요. 내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내 입 밖으로 나와버리면 비로소 그때서야 편안해 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눈을 감으면 달려드는 허여멀건 손들에게 붙들려 온몸을 뒤틀며 괴로워해도 결국 내가 있었던 곳은, 그곳, 머물러 있었던 곳도 그곳이였기에 나는 변화하기에 너무 어렸던 것 아닐까요. 나를 봉사하지 않으면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해 주어서 참 고마웠어요. 늘 악독하고 악랄하다고 나를 생각하곤 했는데, 그가 헛된 죽음을 한 것이라고 비웃곤 했는데 당신은 그걸 공감해 줄 뿐 바꿔주지는 못했었죠.  


높은 전봇대요, 넓은 산이요, 광활한 대지 같이 보이던 내가 이제는 깨질 것 같은 유리와도 같이 보인대요. 나는 별로 바뀐게 없는데 게워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하나에 이렇게 밑천이 드러나 버리네요.  

다들 같은 패턴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야 예상이 가능하다, 라는 말은 참 비수같이 아픈 것 같아요. 난 그들과 다를거야 라는 말이 정작 그들에게는 얼마나 큰 희망과 상처를 주었을까요? 내가 받은 것 만큼 그들도 아파했을까요? 그래서 증명해 내고 싶었어요. 나는 정말로 다르다고. 그런데 결국 나는 내가 예상한 것 그대로, 그대 또한 내가 예상한 그대로. 결국 하나도 다르지 않아 다르지 못한 순간에 이르게 되더라구요. 그때, 내가 깨달았던 그때, 필연이라 생각했던 그 선택을 선택이라 생각 할 수 있었더라면, 나는 지금쯤 신을 모르고 있지 않았을까요?  

처음이 제일 어렵고 그 다음에는 무엇이던지 점점 더 쉬워진다는데, 왜 이건 점점 더 어려워지는지 모르겠어요. 분명 더 쉬워지는데, 되려 쉽기에 어렵네요. 많은 걸 알아도 앎에 감당하려면 내가 조금 더 강인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겠죠? 내가, 나만 조금 더 버티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그래서 나를 묶고 있는 것들에게 당당히 뫼산을 외칠 수 있게 된다면, 그래서 그들에게 날아오는 모든 화살을 커다란 방패로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당당히 서있을 수 있을 그때, 그때가 오긴 할까요?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결국에는 현실로 일어날거에요. 물론 나만 상상하기 싫은 일일테지만. 그러니 편안하게, 이제 본인을 놓아줘요. 나는 언제나 여기 머물러 있을 수 있지만 그대는 결국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그게 옳아요.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니 그대의 옳음을 위해, 성장을 위해, 내가 게워내지 않고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그 모든 것들을 고이 품어 마음 한쪽 구석에 담아둘 수 있게 해줘요.  


처음으로 모든 걸 지울거에요.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분명, 분명 후회할테지만 만일 내가 만날 사람이 다시금 그대라면 나의 모든 추억들은 그대의 것이 겠지만 아니라면 나는 다른 사람의 것이 되어야 하니까요. 그대에겐 지키지 못한 예의를 이제는 지켜보려구요.  


아마 어디 가서든 빛날거에요. 어디서든 사랑받고 또 그만큼 상처도 받고. 하지만 난 그런 당신을 이끌어 갈 하나님을 믿으니까. 나와 안고 울게 하신 하나님을 믿으니까. 혹시라도, 아마 안볼수도 있겠지만, 그냥 단순한 답장을 할거면 그냥 하지 마요. 서로에게 쓸데없는 생각 가지게 할 여건도 주지 말아요. 진지한게 아니면, 반복되지 않을 자신이 있으면, 그때 한번 확인해 보는 걸로. 다만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으니 이게 마지막 편지에요. 내가 당신의 세계에서 온전히 벗어나 누군가의 세계에 정착할 때 까지 얼마나 걸릴까, 조금 무서워요. 그래도, 당신은 무엇을 하던 빛날거에요. 빛나서 또 누군가에게 환희가 되겠죠. 온전한 그 모습 그대로.  


마지막, 마지막 편지에요. 다음에 볼 때 까지 다음은 없는거에요. 뭐, 나만 있었다고 생각했던 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만나서 참 행복했어요.  


무운을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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