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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다는 것은,

by 서은율



지난 시절의 내게 여행은 비상구와 같았다.


참기 힘든 일로부터 잠시나마 시공간적인 격차를 두는 일이었다. 비록 문제는 달라진 게 없더라도 그걸 바라보는 관점이나 마음결이 달라져서 돌아왔다. 좀 대담하게 받아들이는 쪽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었다. 그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외부에서 오는 일은 내가 마음을 바꾸지 않는 이상 달라질 수가 없었다.


블로그에서 8년 전의 오늘을 보여주었다. 필리핀 세부에 있는 샹그릴라 리조트에 다녀와서 쓴 기록물이었다. 이 때의 아이는 15개월 차에 접어들었고, 아장아장 걷고 예쁘게 말하고 온갖 세상에 호기심이 가득해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내 세상이 아이로 채워질수록 나의 존재는 지워져갔다. 늘어난 면티에 흐물흐물한 냉장고 원단의 바지를 입고, 썬크림도 겨우 바를까 말까 한 채 아이를 매달고 다녔다. 운동화나 백팩이 아니라 구두를 신고 핸드백을 들고 싶었다. 아이가 다칠까봐 귀걸이, 목걸이, 팔찌를 모두 빼고 다녀서 액세서리를 착용하는 방법도 잊어버렸다.


나의 세상속에는 미싱방에 들어가서 매일 아이옷을 만들거나, 아이를 돌보는 일이 전부였다. 그래서 자주 숨이 막혔다.


지금은 어떠한가?


아이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내리는 선택의 대부분은 아이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큰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채울 수 있는 부분을 채운다.


나와 긴밀하게 관계하는 사람들 속에 있으면 내가 보인다.


아이들과 있으면 나라는 사람이 보인다.


여행을 다니며 나를 찾아 헤맸는데 나는 이곳에 있었다.


나의 배회는 끝이 났다.


내 인생의 2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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