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날은 유독 길었다는 생각이 든다.
5박 6일간의 친정집 방문을 끝내고 돌아와 애들 저녁을 주고, 짐을 풀고, 빨래를 돌리고, 씻고, 내 서재에 들어와 앉으니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짐을 쌀 때와 풀 때, 교통수단을 탈 때면 몸과 마음 전체를 관통하는 긴장감이 있다. 그렇게나 많은 짐을 싸고 풀었는데도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이다. 초초하고 불안해지는데 옆에서 소란을 피우는 녀석들 탓에 긴장감의 박자가 미뤄지기도 한다. 하지만 날카롭게 서 있는 신경의 끄트머리는 어떻게 해도 사라지지 않고, 이런 마음을 품고 다른 세상을 오간다는 걸 아는 이는 나뿐일 것이다.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며 마음이 불편하면 이런다고 엄마한테 넌지시 말한다. 엄마는 딸이 이런 말을 하는 걸 처음 들으셨다. 5박 6일 하루 세끼 내내 밥을 차려낸다는 일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이를 낳고 난 이후부터 알게 됐다. 버스에 오르기 전, 엄마 진짜 우리 때문에 고생 많았다고 안아주는데 거리를 두고 서 있는 아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나 새까맣고 풍성한 머리숱을 유지했던 아빠의 뒤통수가 빈약하다는 것을 친정집에 오던 날 발견하곤 내심 놀랐었다. 아빠에게도 비껴가지 않은 세월이 있었다. 나는 아빠에게 성큼 다가가 아빠를 꼭 끌어안았다.
"보고 싶을 거예요."
살면서 이런 낯간지러운 말이 아무렇지 않게 툭 튀어나올 줄 몰랐다.
동생 가족이 오고 다 같이 막걸리를 마시는 중이었다.
"누나는 우리 집에서 가장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이야."
"뭐라구? 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오히려 반대였다. 나는 딸이라서 아들인 동생과 늘 차별대우를 받으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동생은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를 하나하나 대었고, 동생의 말은 놀랍게도 사실이었다. 어쩌면 나는 잘못된 기억회로를 작동시키며 나 좋을 대로 합리화해 온 것이 아닐까. 웃으며 아빠한테 물었다.
"아빠, 솔직히 우리 차별대우 했죠?"
아빠는 똑같이 대했다고 하셨고, 나와 동생은 서로 차별대우를 받았다고 우기다가 그냥 웃고 말았다. 이것은 진짜 우열을 가리기 위함이 아니라, 한 번씩 주고받는 유년 시절의 추억이다.
"과거는 돌아볼 필요 없어."
아빠는 이 말을 자주 내뱉곤 하셨다. 하지만 정작 과거에 사로잡혀 사는 건 우리가 아니라 아빠라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버스에 오르기 직전, 나도 모르게 아빠를 꼭 안아준 것이다.
"아빠, 전 요즘이 제 인생의 최고 시절 같아요. 이제 전 마음이 편해졌어요."
전날 밤, 아빠와 둘이 맥주를 마시며 나눴던 말의 일부이다.
딸의 이 말이 아빠에게도 평안을 가져다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