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인도에서 잠시나마 탈출시켜 주고 싶다는 생각에 인도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 경유지를 방콕으로 정했고, 예전처럼 인도 국내여행을 하는 대신 남편과 함께 하는 방콕 여행을 택했다. 하지만 방콕은 너무 지겨웠고, 남편은 후아힌을 추천했다. 왕실 휴양지라는 것과 방콕에서 차를 타고 3~4시간을 가야 한다는 것 말고는 정보가 없었다. 남편은 워터파크를 끼고 있는 숙소를 예약했고, 우리는 3일 내내 워터파크를 갔다. (셋째 날은 나 혼자 숙소에서 쉬었다.)
해가 질 무렵, 남편이 야시장이 있다고 숙소에서 기찻길만 건너면 나온다고 했다. 남편은 덥다고 징징거리는 둘째를 달래 가며 길을 안내했다. 야시장이라고 하면 여기저기 몇 번 가본 적이 있다. 하지만 별다른 감흥이 없어서 딱히 기억에 남는 곳이 없다. 파타야 야시장도 그저 그랬다.
그런데 길을 건너 타마린 마켓 안에 들어서자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일단, 우리가 외국에 와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을 만큼의 많은 서양인들이 자리에 앉아 있거나 돌아다녔고, 흥겨운 음악이 몸을 들썩이게 했다. 간이 테이블과 의자를 중심으로 해서 주변은 모두 먹거리 점포로 원을 싸듯이 둘러싸여 있었는데, 하나같이 허전한 위를 자극해서 침을 꼴깍꼴깍 삼키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옆의 남편은 환호에 가까운 감탄사를 내뱉는 것이었다.
남편은 길가의 음식에 눈을 떼지 못하고 보는 것마다 맛있겠다며 흥겨운 노래를 불렀다.
나는 지갑에서 1000밧을 꺼내 주면서 각자 먹고 싶은 걸 사서 애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만나자고 했다.
딸은 아이스크림, 아들은 망고를 골랐기에 먹으라고 주고, 나도 음식 탐방에 나섰다.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음식을 바로 요리해서 주기 때문에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침이 고였다.
'어서 먹고 싶다, 맛있겠다.'
우리는 각자 사 온 음식을 모아놓고 함께 나눠 먹었다.
남편은 초밥과 고기 종류의 음식을 사 왔다. 이후 남편이 먹는 음식은 모두 고기류였다. (치킨 제외). 남편이 고기를 갈망하는 이유를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나 또한 일주일간 남편과 함께 지내면서 먹는 즐거움이 사라졌다. 왜냐하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누릴 수 없는 것을 꿈꿀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타마린 마켓에서 각종 요리는 꿈과 희망이 아닌 현실 그 자체였다.
나는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며 돼지고기 꼬지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남편의 눈빛을 보아하니 뭔가 더 먹고 싶은 눈치다. 어서 더 사 오라고 부추겼더니 냉큼 일어선다. 그는 4개월 만에 만찬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바로 옆에는 시카다 마켓이 있다. 이곳은 먹거리도 팔지만, 옷과 다양한 물건을 판매한다.
그렇게 싸지는 않다. 하지만 구경하는 즐거움이 있고, 현지에서 물건을 구매하면서 느낄 수 있는 재미도 크다. 나도 분위기에 취해서 현란한 색의 원피스를 세 개 샀다. 그중, 두 개는 언제 다시 입을지 모르겠다.
다음 날도 야시장에 갔다.
또 각자 먹고 싶은 걸 잔뜩 먹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 즐거웠다.
먹는 여행을 기대해 본 적이 없다. 내게 여행에서 먹는 것은 늘 후순위였다. ('배만 고프지 않으면 되지'란 주의였다.) 하지만 이번 후아힌 여행은 먹는 게 전부였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