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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피아노 연습하기

by 서은율



비가 내리는 봄날 밤이다. 낮에 산책로를 지나다 보니, 벚꽃이 거의 다 졌던데 내일 아침이면 그나마 남아 있던 꽃잎도 다 떨어지고 없을 것만 같다. 그래도 아쉽지 않은 걸 보니 지난 주말에 꽃구경을 제대로 했구나 싶다.


4월 들어 피아노 수업 중 한 타임을 토요일 오전으로 바꾼 뒤부터 토요일이 좋아졌다. 두 시간 동안 피아노 선생님과 시간을 보내고 오면 하루 종일 행복의 기운이 잔잔하게 물결친다. 선생님은 손가락으로 우아하게 건반을 누르는 방법을 알려주신다. 나는 매번 건반을 손가락 전체로 때려서 치는데, 그럴 때마다 지긋하게 눌러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복습할 때면 온몸에 힘을 빼고 손가락 끝을 힘주어 치려고 노력한다. 애정을 담은 손길로 피아노를 쓰다듬듯이 말이다.


피아노 연주곡을 듣다가 알게 된 연주가가 있다. 프란체스코 파리노(Francesco Parrino)의 "It must have been love"는 특히 감정을 요동치게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팝송 중 하나인데, 피아노 연주에서 가사가 들리고, 가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누워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기만 하다가, 직접 그가 연주하는 장면을 화면으로 지켜봤다.


그의 유연한 손놀림과 손가락 끝을 눌러내리는 것이 정확히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과 일치한다. 나는 홀린 듯 그의 손가락을 바라본다. 오버하자면, 그의 손가락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갖고 싶고 동경하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손끝.


어떻게든 그가 연주하는 악보를 소유한다면 나도 연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에 부풀지만, 손에 넣은 악보와 나의 연주 사이에는 도저히 메울 수 없는 심연이 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 3악장에 홀리는 바람에 그것을 두 달째 연습하고 있지만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좋아하는 마음과 할 수 있는 건 다른 문제 같아요. 그렇지만 그래도 계속해볼래요."


선생님이 웃으신다.


피아노를 치면서 희로애락과 인생을 배운다.


또 틈이 많았던 일상에 촘촘하고 꼼꼼한 이음새를 덧대는 것만 같다.


"꼼꼼해져야 합니다. 독기를 품어야 해요. 미스터치가 없어야 해요. 악보에 지시된 것을 지키면서요."


'선생님을 좀 더 일찍 만났어야 했나 봐요.'


나는 늘 선생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돌아올 때면 이런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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