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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

by 서은율


내가 사랑받았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있다. 그건 그것을 잃었을 때다. 가장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물속에서 헤엄을 치는 중에, 갑자기 떠오른 얼굴이 하나 있다.


그 아이는 나보다 한 살이 어렸다.


여고 시절, 문학동아리에 들어온 후배였다. 그 아이의 이름은 이제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동그랗고 하얀 얼굴에 동그란 안경을 낀 것만은 기억이 난다. 그 아이는 유독 나를 따랐다. 조용하면서도 강단이 있는 아이였다. 쉬는 시간에도 선배의 교실을 찾아와 선물을 주고 가던 아이였다.


대학도 같은 곳을 갔다. 어느 날 동아리 후배를 모집하는 중에, 캠퍼스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는 공대 여대생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 당시에 문학학회와 민중가요 동아리에서 활동 중이었는데, 같은 과 한 해 선배가 민중가요를 부르는 모습이 멋있어서 그 동아리에 들어간 것이었다. (정작 그 선배는 그 동아리에 잘 나오지 않았지만)


그 아이를 다시 만난 게 반가워 인사를 주고받다가 그 아이를 동아리 방에 데리고 갔다. 함께 이야기 나누고 인적사항도 적고, 다시 보자는 말과 함께 헤어졌다.


그 후로 그 아이는 나를 피했다. 나를 마주쳐도 못 본 척 지나갔다.


사실 나는 그 동아리의 사람과 노래가 좋아서 나갔던 것이지 운동권 자체에 뜻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또 2000년대 이후의 운동권 동아리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하지만 그 아이는 달랐던 모양이다. 주위 선배들이나 친구들에게 어떤 말을 들었던 게 분명하다. 물들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아이의 반응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 아이의 뜻을 존중했고, 그 아이가 나를 피하고 싶어 하는 걸 눈치챈 이후로 나도 함께 피했다. 그때는 조금 서운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 앳된 그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남아 있는 감정은 여고 시절 나를 보던 눈빛이다. 그 아이는 나를 참 좋아해 주었구나. 그 시절에 진심이었구나. 이런 생각들.


잃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나도 그렇긴 하다. 누군가를 좋아했지만 어느 순간 멀어지기도 하고, 아무런 관계도 없었지만 좋은 사이가 되기도 한다.


그냥 타이밍이었던 것 같다. 시절인연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관계에 영원한 것이 있나. 불변하기를 바라고, 그것에 집착하는 순간 삶이 피로해진다.


사람은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는 것이다.


옷과 옷 사이에 바람이 통해야 습기가 마르듯이, 집안에 바람이 들어야 생기가 도는 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틈이 있어야 좋은 사이가 유지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 아이뿐 아니라 나를 좋아해 주었던 사람들, 또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


그들중 일부를 빼고 나머지 사람들과는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다. 그것이 슬픈가? 그렇지만은 않다. 다만, 좋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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