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에 치중하고 있나...
이것은 의도했던 것이 아니라 저절로 흘러갔으며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된 일이다.
농담하세요? 제가 믿는 건 열정이에요. 그 이외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사랑하세요...》 작품해설, p.154
프랑수아즈 사강은 사랑을 믿느냐는 질문에 사랑이 아닌 열정을 믿는다고 했는데, 이 문장을 곱씹어보며 내가 믿는 것은 무엇인지 떠올려 보았다.
사랑을 믿는다, 믿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믿는 쪽이지만, 적당하게 나이를 먹고 보니 사랑을 거창하게 논할 시기는 한참 지나버린 것만 같다. 다만 지난 삶 속에서 내가 찾은 단어는 세 가지 -열정, 모험, 평온-로 압축할 수 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열정인 줄 모르고 뛰어들었는데 내가 다시는 그렇게 될 수 없겠다는 것을 알게 된 시점이 왔을 때 비로소 인정할 수 있었다. 무모하고 앞 뒤 재지 않고 푹 빠져버리는 것. 이십 대 전반부의 내게 문학은 전부였다.
결혼, 출산, 육아, 여행
이 네 가지는 미지이자 모험의 영역이었다.
가족, 친척, 친구 혹은 주변에서 보거나 들은 이야기를 통해 막연하게나마 알 수는 있겠지만 내가 발을 들여놓는 세계는 보편적이면서도 독자적인 영역이었다. 누군가의 조언이 도움이 될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모두 자신의 상식과 경험치에서 나올 수 있는 생각이었으므로 결국은 스스로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의존적이고 나약한 사람이었는가를 한계에 부딪쳐 가며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평영 혹은 접영을 할 때 힘을 빼고 몸이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순간이 있다.
바닥에 가라앉는 시기가 오면 그때는 힘을 빼고 기다려야만 한다. 살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꼬여만 가는 것이다. 더 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을 때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몸은 비로소 자유롭게 호흡을 할 수가 있다.
앞으로 어떤 곳이 나올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여행이다. 결혼과 육아의 영역도 그랬다. 특히, 육아의 영역은 '카오스'였다.
현재의 내가 지나가고 있는 구간은 '평온'이다. 이 안정감은 하루의 기복 있는 감정과는 별개로, 전체적이고 보편적으로 정의 내릴 수 있는 단어다. 가족 구성원이 각자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으며 서로를 의지하고 격려하고 때론 조언도 해줄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모험을 원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뛰어들 에너지가 많지 않지만, 일정한 루틴을 계속 지켜나가면서 하루의 균형을 도모한다.
때론 밋밋하고 조용하기만 한 나날이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이 삶을 사랑하고, 아끼고 있다.
내 개인적인 삶의 영역의 성공 여부를 묻는다면 (사실 따져보고 싶지도 않지만), 나의 꿈은 너무도 소박하고 작아서 그것을 거창하게 만들면 실패로 치부되겠지만 한없이 작고 작게 줄이다 보면 모두 성공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모두가 잘날 수는 없는데, 잘나지 못한 채,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거니까. 적어도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나의 바람이 있다면 가족 모두가 무탈한 것이다. 그리고 두 아이가 바르게 잘 크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나머지 부차적인 일들은 모두 괄호 속에 넣어버릴 것이다. (괄호의 영역은 언제든 생략 가능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