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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넘어 열정으로!

by 서은율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는 귀에 감기는 음악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이고, 하나는 정훈희의 '안개'이다. 영화를 본 이후, 말러의 교향곡을 꾸준히 듣고 있다. 이 곡을 들을 때면 가슴이 저리는 슬픔을 느끼곤 한다. 주로 아침에 일기를 쓸 때 듣는데, 하중이 아래로 향하는 기분을 느끼며 일기를 쓰다가 멈추고 의식이 어딘가로 향하게 되어서 시간이 꽤나 흐르곤 한다. 그래서 나에게 '정지'가 필요할 때면 듣는 음악 중 하나로 손꼽을 수가 있다.


박준 시인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읽다가 말러 교향곡의 느낌을 주는 글을 만났다.




"슬퍼서 전화했다. 가장 슬픈 일은 장소가 없어지는 일이다. 그러면 어디에 가도 그곳을 찾을 수 없다. 너는 어디 가지 말아라. 어디 가지 말고 종로 청진옥으로 와라. 지금 와라. <박준, 새벽에 걸려온 전화-이문재 시인>"



이 짧은 글에서는 이문재 시인의 슬픔과 그 슬픔을 공유하고 해소하고 싶은 다급함과 함께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 박준 시인의 마음이 함께 드러난다. 나는 이 글을 읽자마자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것을 구매하고 빌린 책을 덮었다.


새벽에 전화를 걸어 슬픔을 말하고, 대뜸 어디 가지 말고 곁에 있어 달라니.

누군가 이렇게 말을 해온다면 이렇게 답해주고 싶을 것이다.

나는 어디에 가지 않고 곁에 있어줄게.

설령 훗날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될지라도 이 마음만은 진심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어디 가지 말고 곁에 있어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인가, 되물어본다.

그 말이 하고 싶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일기장을 채우고 있는 것이 아닌지.


아이가 뒤늦게 박현숙 작가의 수상한 시리즈 책을 접했는데, 자기 직전까지 눈뜨고 나서도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빌려온 걸 다 읽었다고 다른 걸 빌리러 도서관에 가야 한단다. 얼마나 재미있길래 그러나 싶어서 박현숙 작가에 대해 찾아보았다. 작가는 오전 여섯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글에 매진한다고 했다. 작가의 열정과 습관에 내 마음이 반응한다. 그것은 질투심이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지만, 지금은 멀게만 느껴지기에, 또 나에겐 그만큼의 열정이 보이지 않아서다. 이것이 쌓이면 슬픔이 되고 체념이 된다.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는 조금만 듣는 게 좋겠다. 슬픔에 함몰되어 있기보다, 열정적이고 진취적으로 나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 3악장을 연습한다. 유연하게 펼쳐지지 않는 손가락으로 더듬더듬 나아간다.

슬픔은 내 글이 시작된 근원이긴 하지만, 열정의 지류들이 흘러 내 인생의 결을 다르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들로 가득하다. 그 변화를 위해 억지로 몸을 일으킨다. 내가 내딛는 발걸음은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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