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드가 아무리 인생을 닮아간다 해도 끝내 닮지 못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 인생의 불가해함과 예측 불가능성이다. 머드는 누구나 며칠만 해보면 그 룰을 다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게임 제작사는 문을 닫아야 한다. 이해하는 데 십여 년이 걸리는 게임을 누가 프로그램 하겠는가? 우리 인생에는 평생이 걸려도 납득하지 못할 부조리가 널려 있으며 또한 열 번의 생을 거듭해도 이해하지 못할 신비로움이 숨어 있다." (김영하, p.120), 김형수 지음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유일하게 오래도록 전권을 소장 중인 만화책이 있다. 신일숙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다. 이 만화책에는 아주 유명한 문구가 하나 나온다. "삶은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지닌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동경이 여행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을 이끌고 온 것일까. 이 한 문장을 꽤나 오래도록 가슴속에 담아두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찾아오는 것은 꽤나 두려웠다.
왜 중년이 되면 안정을 추구하는지, 나에게 이 안정감이란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는 순간이 왔다. 안정은 '경제력'을 기반으로 해서 '규칙'과 '반복'이 쌓아 올린 튼튼한 구조물과도 같다. 하지만 나름 튼튼하게 지었다고 생각한 건물이 휘청거리거나 무너지거나 할 수 있다는 것을 언제나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자리를 파고든 문학은 꽤나 힘이 세다.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를 읽는 동안 잠자고 있던 용암이 들끓어 오르는 것만 같았다. 평생이 걸려도 납득할 수 없는 '부조리'가 널려 있고, 열 번의 생을 거듭해도 이해하지 못할 신비로움이 있는 우리네 삶을 파편적으로, 혹은 입체적으로, 깊이 있게 바라보도록 해주는 것이 문학이다. 문학 속에서 쌓아온 이 감정은 '신뢰감'이다.
어려움에 빠진 나, 혹은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고, 그것이 실제로 현실화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의 문학은 단순한 개념과 지식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일상이 된다.
문학은 지식에 그치지 않는 '삶'이라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