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신의 삶에서 운명성을 발견한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어떤 종류의 인간이든 간에 일관성 있게 운명을 꿰뚫은 사람은 지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의 길에 들어선 것을 아는 자는 두려움이 없다. 무엇을 이루었거나 이루지 못했거나, 몇 걸음을 나아갔거나 굳이 셀 필요가 없는 일이다. 갈 만큼 가는 것뿐. -전경린 산문집 <<붉은 리본>>, p.40"
오래전, 나는 하고 싶은 게 분명히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걸 아는 것과 행하는 것과는 꽤나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나를 따라다니는 고질병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회피'였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삶의 방식을 꽤나 오래도록 고수해 왔는데, 바닥을 쳤던 어느 날 내면에서 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살다 죽을래? 눈 감기 직전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그 무렵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글을 써보려고 애썼을 때다. 강한 내면의 목소리를 들은 지 오 년의 시간이 흘렀다. 어떤 식으로든 결과가 주어져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 길이 맞는지 알 수 있도록 결과나 성과를 꼭 얻어야만 한다고 했던 생각들은 다른 모양새로 바뀌었다.
잘 읽든 못 읽든 매일 책을 읽고, 잘 쓰든 못 쓰든 매일 쓰고 있는 이 삶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핑계를 대지 않으리라, 손을 놓지 않으리라.
또 인정을 받지 못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생겼다. 나는 늘 인정 욕구에 시달렸다. 누군가 나를 보아주기를, 이해해 주기를, 또 칭찬해 주기를 바라왔다. 하지만 이제 그 마음은 많이 사라졌다.
올해 재출간된 전경린의 장편소설 <<자기만의 집>>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호은아, 사람이 진짜 어른이 되면 말이야. 타인에게서 사랑을 바라지 않게 된단다. 사랑은 바라지 않아도 늘 있어."
그래. 사랑은 바라지 않아도 늘 있어.
늘 곁에 있으니까, 애쓰지 않아도 돼.
대신, 곁에 있다는 걸 잊지만 않으면 돼.
포근한 문장으로 위안을 받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있다. 그걸 글로 전할 수 있어서 기쁘다. 이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믿고 싶고, 눈 감을 때 결국 모든 길은 하나로 이어졌다고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