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책 좀 읽으면 안 될까?

by 서은율


연애할 때 남편은 내가 조용하고 책 읽는 모습이 좋다고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좀 싫어하는 것 같다. (물론 이건 나의 느낌이라 정확한 사실은 아닐 수 있다.)


스무 살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린 다른 종족(?)이란 사실을 분명히 인지했고, 그래서 꽤나 거리감을 두며 지냈다. 남편은 사람을 만나는 일을 좋아했다면, 나는 극소수의 사람들과 매일 같이 어울려 다녔다. 용돈을 좀 벌기 위해 대학 시절 내내 알바를 하며 보냈는데, 한 번은 '천지개벽'이라는 대학가의 술집에서 일할 때였다. 남편은 군에 가기 두 달 전이었고 나는 학교 수업을 마친 이후, 6시부터 11시까지 일을 했다. 남편은 휴학을 하고 군에 가기 전까지 매일 내가 일하는 곳에 찾아왔는데 올 때마다 다른 사람을 데리고 왔다. 그리고 내가 일하는 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나는 궁금했다.


술값은 대체 어디서 나온담?


내가 일하던 술집은 점점 손님이 줄어들어 하루에 겨우 몇 테이블 올까 말까 했고, 가끔 단체 손님이 올 경우를 제외하곤 바쁜 일이 없었다. 나는 앞치마를 하고, 하루 종일 돌아가는 최신가요를 들으며 사장님의 시무룩한 표정을 살피곤 했다. 아직도 가수 이승철의 노래 <말리꽃>의 가사가 귀에 익숙하다. 또, 그 당시 유행했던 드라마 <가을동화>도 떠오른다. 여주인은 드라마를 보며 매번 눈물을 흘렸다.


남편이 군에 들어가고 제대하기까지 나는 도서관에서 책과 친한 시간을 보냈다. 그 이후, 남편이 복학하고 내가 대학원에 입학하고 우리가 사귀는 동안에도 늘 책 속에 파묻혀 살았다. 하지만 연애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밀접했고, 책보다도 더 가까운 사이였다.


결혼을 하고 책과 멀어졌고, 아이가 커가면서 책과 다시 가까워졌다.


남편의 성향을 잘 알고 있었기에 책을 같이 읽자고 권유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아이 교육상 생각이 크게 바뀐 나는 남편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거실의 서재화

가족이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문화.


아이들에게 이런 가정의 분위기를 느끼며 자라게 해주고 싶어.


남편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쉬고 싶지 책을 읽고 싶지 않다고 했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즐겁고 하고 싶은 일이 얼마든지 있다는 거였다. 나의 주장이 꺾일 때마다 상심이 컸다.


집에만 있고 싶어 하는 나에게 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나라고 하는 남편과 자꾸 사람을 만나거나 골프를 치러 가겠다는 남편에게 집에서 제발 책 좀 읽으라는 내가 뭐가 다를까 싶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같은 문제로 얘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기린이랑 사자가 못 만나는 이유는 기린이 사자를 위해서 정성스레 최선을 다해서 육식이 아닌 초식 스타일로 밥을 차려줘서 그런 거야."


애초에 기린과 사자는 함께 살아서는 안 되는 거였나?


이런 위험한 물음이 떠오를 때면 고개를 젓곤 한다.


그냥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는 방법도 있는 거니깐.


나는 책을 좋아하지만, 누군가는 책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 강요할 수는 없겠지.

나도 남편과 비슷한 성향이거나 다른 유년기를 거쳤다면 책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살았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책을 좋아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이 든다.


남편은 남편대로 책에 파묻히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이 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엄마 혹시 또 숨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