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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에 대한 변명

by 서은율

열두 살 아이는 요즘 명작을 읽는 즐거움에 빠져 있다. <<빨강 머리 앤>>을 시작으로 해서 <<피터 팬>>, <<피노키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어린 왕자>>, <<오즈의 마법사>>를 읽었고 이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고 있다. 문제는 꼼꼼하게 읽지 않는 데 있다. 그래서 읽은 걸 바탕으로 줄거리를 쓰거나 자기 생각을 써보라고 유도하곤 하는데, 아이가 쓴 <<오즈의 마법사>> 줄거리를 읽자마자, 조금 전 지성적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읽었던 신형철 평론가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의 서문에 대해 말하고 싶어졌다.





명작은 너무나 유명해서 줄거리나 주요 인물 정도는 대부분 알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사실은 놓치곤 한다. 읽지 않았기에 모르고 넘어가는 것인데, 대략적인 줄거리를 알기 때문에 그 책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도 그랬다. 나는 <<오즈의 마법사>>를 성인이 되어서야 제대로 읽었는데, '오즈'가 '사기꾼'이란 사실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아이가 줄거리를 정성스레 적는 동안 놓치게 된, 주요 인물들이 결핍이라고 여겼던 것을 극복하고 성장하게 되는 과정을 떠올려본다. 다시 읽으면 보이게 될 것들이다. 하지만 아이는 자기가 보고 싶은 거 위주로 읽고 썼다.


비단 아이뿐 아니라 나 역시 그렇다는 걸 인정한다.


"정확한 사랑"(<책머리에>)이란 표현 속에서 잠시 방황했다. 저자가 말하듯, '섬세하게', '정확하게' 읽어내는 노력을 기울이는 일.


신형철 평론가의 태도와 글 속에서 지적인 아름다움과 감수성을 만나고 매력을 느낀다. 그것은 '인식의 깊이'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아이를 보면서 느끼듯, 내가 볼 수 없는 것을 누군가는 볼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깊이 읽어야겠군. 더 생각을 해 봐."


하지만 이런 말은 나나 아이에게 소용없을 줄로 안다. 이것은 공들인 시간에 비례하는 것이고, 충분한 시간 속에서 앓아야만 하는 것이므로.


다만, 가닿지 못할 것 같은 글을 만날 때면 두 가지 마음이 든다.


아름답고, 초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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