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김정호, <하얀 나비> 중에서
1.
딸아이가 조금 더 어릴 때, 실에 비즈를 하나씩 꿰어 목걸이와 팔지를 만들곤 했다. 비즈 한 알이 실에 쏙 들어가면 아이는 신이 나지만 조심스레 알이 빠지지 않도록 신중하게 하나를 넣고, 또 넣었다. 그렇게 공을 들여 묶을 정도의 실을 남겨놓고 엄마 묶어줘 하며 들고 오다가 놓치면 바닥에 와르르 쏟아지던 알맹이들. 한 번에 쏟아지는 비즈 소리보다 아이의 놀란 목소리가 더 컸다. 눈물을 흘리는 아이를 달래며 다시 만들자고 하면 이제 안 해라고 억울한 목소리를 냈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집중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김형수 님의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를 읽는 도중이었다. 작고 단단하지 못한 그 손은 첫 문장을 망설이며 다음 문장을 기다리는 나의 조바심 나는 성미와도 같았다.
뜸을 들여야 한다는데, 섣부르게 내뱉고 쓰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데,
묵히고 또 묵혀서 스스로 터져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데,
2.
이창동 감독의 "시"의 주인공 미자 할머니는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많은 감정의 변화를 겪는다. 영화가 끝날 즈음, 미자 할머니는 자신이 완성한 시 '아녜스의 노래'를 제출하고는 사라져 버린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좋아하는 일이 손자 종욱의 입에 먹는 거 들어가는 일이었던 할머니는 어른(부모)이 부재해 온 종욱의 삶에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일은 미자를 고통스럽게 했지만,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괴로워도 정면돌파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3.
장르는 다르지만, 심은경의 노래 때문에 감동이 배가 된 영화 "수상한 그녀"가 있다. "시"에서는 '아녜스의 노래'의 시구절이 뭉클함을 안겨준다면 김정호 '하얀 나비'를 리메이크한 심은경의 목소리 때문에 마음이 주저앉는다. 남편이 죽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장면과 말순이 노래를 하는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절절함을 안겨준다.
이때, '하얀 나비'는 말순의 인생을 표현한 시와 같다.
꽃이 피니 즐겁고 꽃이 지니 서럽지만
이미 지난 일은 떠올리지 않기로 해요
살아가야 하니까요.
말순은 아들 붙들이(현철)에게 말한다.
다시 이 삶이 주어진 대도, 난 똑같은 선택을 할 거야. 그래야 널 다시 내 아들로 만날 수 있을 테니까.
4.
삶이 시가 되는 과정 속에는 즐거운 날도 괴로운 날도 모두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