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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은율 Jun 25. 2024

[시] 자화상

종결될 수 없는 이야기가 여기 있네


자화상

-종결될 수 없는 이야기가 여기 있네




1

  저기요 우리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죄송해요 제가 바빠서 시간이 없네요 바쁘시더라도 저와 조금만 얘기해요 그쪽을 돕고 싶어서 그래요 근심이 많아 보여요 우리 그걸 함께 나눠요 정말 죄송해요 지금은 너무 바쁘니까 다음에 얘기해요 그럼 연락처라도 주고받을 수 있을까요, 아니요 혹 길을 가다 인연 닿는다면 만나지겠지요 그럼 그 인연을 앞세워 우리 툭 까놓고 얘기하기로 해요 그렇군요 그쪽이 그렇게 원하신다면 그러기로 해요

  내 스물 두 해의 흔적이 어떠하길래 그는 관상을 볼 줄 안다는 눈빛으로 나의 눈을 꿰는 걸까, 거리에는 마음을 꿰듯 비 내리고 있다.



2.

  엘 오르뗄라노의 캔버스에 담긴, 손길처럼 뻗어가는 나무와 그 곁을 감싸고 있는 가시덤불은 지상에서 최대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나무의 밑동을 갉는 사투 속의 송충이, 나무는 휘청댄다. 나를 옭아매려거든 차라리 숨을 쉬지 않게 해다오, 가파른 유혹이 찾아든다. 우리는 당신에게 해가 되려는 게 아닙니다 당신 안의 당신이고 싶을 뿐이에요. 함께 뒤엉켜 자라나는 뿌리 깊은 나무. 나는 순간 나부가 되어 우주를 내려다본다.



3

  겹겹으로 쌓아둔 집이 있어

시시때때로 들어앉아 문을 걸어두고 떠나려 했다.

영혼의 실이 문밖의 세계와 만나 팽팽한 줄다리기를 할 때, 육체의 실은 문고리와 하나로 묶여 저도 모르는 사이 꾸벅꾸벅 졸았다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원 위에서의 달리기









스물 두 살때, '자화상'이란 소재로 쓴 시입니다.

두 가지의 이미지를 가져왔어요.

사이비 종교 전파자와의 만남, 또 하나는 미술관에서 본 그림.


그 당시의 저는 팽팽한 싸움을 벌이고,

일방적으로 패배하곤 했어요.

자꾸만 넘어졌어요.


넘어지면 그냥 일어서면 된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요?

아프면 아픈 채로, 뚝이면 쩔뚝거린 채로 일어나서 걸어도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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