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나는 초등시절 (그때는 국민학교였다), 특별히 잘하는 게 없었다.
공부보다 노는 걸 더 좋아했고, 책 읽기도 중학교 되어서 푹 빠졌다.
유일하게 배우고 싶었던 게 피아노였다. 하지만 아무리 졸라도 부모님은 피아노 학원에 보내주지 않으셨다. 자라면서 나는 피아노를 배우지 못한게 한스러웠고, 성인이 되어서 기회가 될 때마다 피아노를 배우러 다녔다.
그런 내가 반 아이들 앞에서 칭찬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5학년 하교 시간,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 앞에서 읽어주고 싶은 일기가 있다고 하셨다. 그러곤 내 일기를 읽어주셨다. 너무 잘 썼다는 칭찬과 함께. 그때 나는 부끄러우면서도 마음속에서 간지러운 느낌이 자라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내 꿈이 싹튼 것이리라. 그때 일기의 주제는 '행복'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에 대해 적은 글이었다. 어떻게 적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꽤나 성숙한 생각을 지녔던 것 같다. (오히려 지금은 어려진 것 같지만...)
대학에 와서 첫 소설을 썼고, 대학 신문 기자로 있던 친구가 대학신문에 소설을 응모해 보라고 해서 그냥 냈는데, 아주 쉽게 당선이 됐다. (물론 응모자가 몇 명 없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신문에 내 사진과 소설이 실리고 당선소감이 실렸다. 스무살, 기분이 붕 떴고 뭐라도 된 것 같은 생각이 줄곧 들곤 했다. 하지만 나보다 한 해 위 선배의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나는 아주 쉽게 무너졌다. 너는 소설을 왜 쓰냐, 이것도 소설이냐? 라는 말을 들으며 깊은 상처를 받았다.
대학교 2학년, 시창작 수업을 들으며 시인 선생님께 주목을 받았고, 칭찬을 받았고, 다른 선배로부터 소설 말고 시를 써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내가 쓴 시를 보며 좋다고, 참 잘 썼다고 말해준 사람들. 나는 그들의 말을 들으며 행복했고, 나의 대학시절을 아주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었다.
그후로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다. 줄곧, 나는 생각했다.
고교시절, 나를 평온하게 이끌어온 읽기와 쓰기가 자존감과 자긍심의 근원이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20여년간 아무렇게나 내버려두었던 나 자신의 조각을 조금씩 되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시집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편안하고 좋다는 것을.
비록 지금은 그때처럼 많이 쓰지 않는다 해도,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는 것을.
나는 이해받고, 이해하고, 공명하고, 공감하고, 또 그리워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