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운명론자>
너는 마흔 넷에 시인이 될 거야, 그러니 지금 아무리 고민하고 발버둥쳐도 소용이 없어 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현실쪽으로 기우는 삶을 택했고, 그것이 이십 년을 공허한 것에 집착하며 살도록 했거든. 만약 네게 이 사실을 알려준다면 너는 믿을 텐가? 결혼은 해도 아이는 낳지 않겠다던 네가 아이가 생가지 않자 우울증에 빠지고, 하나만 낳겠다고 해놓곤 둘이나 낳은 사실에 대해서. 앞을 알고 뻔한 길을 걸어왔다면 난 지루하고 권태로워 미쳐버렸을 지도 몰라. 그러니 나의 쉰 살이, 예순 살이 어떻게 다가올지 지금 당장 알고 싶지 않아. 나는 1분 뒤의 시간만 알면 돼. 오늘만 잘 알고 있어도 돼. 그러니 예언 같은 건 필요 없어. 나는 지독한 운명론자였지만, 그것은 살짝 살짝 빗나가서 예상한 것에 적중하지 못했지. 그러니 나의 결말도 빗나갈 거야. 예정된 궤도를 따라 흐르지 않을 거야. 얼마나 다행이야? 스무 살에 시인이 되든, 마흔 넷에 시인이 되든, 일흔에 시인이 되든, 아니면 죽을 때야 비로소 시인으로 죽든,
내가 걸어가는 길이 이름이 되어 줄 거야.